필수의약품 품절 막는 퇴장방지약가, 제약사엔 똑같이 작동하지 않았다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의약품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문제는 실제 제도 개편으로 이어질 만큼 큰 정책 현안이다. 다만 정부의 원가보전 방식은 기업 전체를 일괄 지원하는 구조가 아니라 품목 단위 약가를 조정하는 방식이어서, 같은 제도라도 회사마다 체감 효과는 크게 다르다. 필수약 공급 불안을 줄이기 위해 약가를 올려도 생산 비중이 큰 회사와 포트폴리오가 넓은 회사의 손익 영향은 같지 않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3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퇴장방지의약품 제도 개선안을 의결했고, 이어 7월 30일 고시를 개정해 8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개편안의 핵심은 지정기준 상향, 국가필수의약품 등에 대한 직권 지정 활성화, 원료 인상분의 즉시 반영, 시설투자와 초과근무를 반영하는 원가 산정 고도화, 저가의약품 대상 정책가산 신설이다. 정부 스스로도 기존 제도가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운영돼 현장의 비용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인정한 셈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4년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을 보면 퇴장방지의약품은 373개 성분, 628개 품목이었다. 전체 등재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였지만 연간 청구금액은 6874억원에 달했다. 숫자상 비중은 작아도 진료 현장에서는 대체가 쉽지 않은 품목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같은 약가 인상이어도 회사별 체감은 달랐다
정부가 공개한 실제 조정 사례를 보면 품목별 차이는 더 뚜렷하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12월 1일 시행 조치에서 신규 퇴장방지의약품 6품목과 기존 퇴장방지의약품 6품목의 상한금액을 조정했다. 이때 보령의 나프실린 주사제는 2197원에서 2502원으로 약 13.9% 올랐고, JW중외제약의 후루트만주는 500원에서 769원으로 약 53.8% 인상됐다. 반면 대한적십자사가 공급하는 타코실 7.5제곱센티미터 제품은 7만1752원에서 7만3245원으로 약 2.1% 오르는 데 그쳤다.
기존 지정 품목에서도 편차는 컸다. 제일제약의 염화칼륨 주사액은 182원에서 338원으로 약 85.7% 뛰었고, 멸균주사용수는 156원에서 211원으로 약 35.3% 올랐다. 대웅제약의 덱사메타손 정제는 105원에서 125원으로 조정됐다. 같은 퇴장방지의약품이라도 인상률이 두 자릿수 후반에서 2%대까지 벌어진 것은 원가구조와 품목 특성, 가격 수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기업 구조와 만나면 더 커진다. 수액과 영양수액 중심 회사인 JW생명과학은 2023년 기준 매출 구성에서 기초수액 41%, 특수수액 13%, 영양수액 9%, TPN 27%를 기록했다. 사실상 저단가 병원 필수약 생산 비중이 높은 구조다. 이런 회사는 원가보전 제도의 세부 기준 변화가 생산 유인과 설비 운영에 직접 닿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대로 포트폴리오가 넓은 상장 제약사는 같은 약가 조정이라도 회사 전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 보령의 2025년 연결 매출은 1조174억원, 부광약품의 2025년 매출은 2007억원이었다. 대웅제약의 2024년 연결 매출도 1조4227억원 수준이다. 이런 회사들에는 퇴장방지의약품 한두 품목의 원가보전이 공급 지속 판단에는 의미가 있어도, 기업 전체 손익을 좌우하는 변수로 보기는 어렵다.
원가보전이 만능은 아니었다
퇴장방지의약품 제도가 필수약 부족 문제의 유일한 해법도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같은 2023년 12월 조치에서 미분화부데소니드 흡입제 2품목의 약가를 별도로 인상하면서,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최소 2600만개 이상을 공급하는 조건을 붙였다. 이 품목들은 퇴장방지의약품 지정이 아니라 공급조건부 약가 인상 방식으로 지원됐다.
이 대목은 중요한 반례다. 필수약 공급 불안이 생겼다고 해서 모두 퇴장방지의약품 지정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는 수급 불안의 원인이 원료비 급등인지, 수요 급증인지, 생산설비 문제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수단을 쓰고 있다. 2024년에는 소아 중환자 면역결핍 치료에 필요한 면역글로불린 등 혈장분획제제 상한금액 인상도 별도로 추진했다.
결국 투자자와 독자가 봐야 할 것은 ‘약가가 올랐느냐’보다 ‘어느 품목이, 어떤 조건으로, 회사 매출 구조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느냐’다. 퇴장방지의약품 원가보전은 필수약 생산을 붙잡아두는 안전장치이지만, 그 효과는 기업 단위가 아니라 품목 단위에서 먼저 나타난다. 같은 제도라도 수액·주사제처럼 저가 필수약 비중이 큰 회사에는 생산 유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대형 다품목 제약사에는 제한적인 보완장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2026년 제도를 손본 배경도 여기에 가깝다. 기존 기준만으로는 현장의 비용 상승과 공급 위험을 제때 따라잡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품절 우려를 사후적으로 막는 데 그쳤다는 판단이다. 다만 이번 개편의 실제 효과는 앞으로 개별 품목의 지정 확대, 원가 재산정 결과, 그리고 기업들이 실제로 생산량을 늘렸는지로 가려질 문제다. 원가보전 제도가 약가표의 숫자 조정에서 끝나는지, 실제 공급 유지로 이어지는지는 이제부터 확인해야 한다.
자료: 보건복지부, 건정심, 국민건강보험 약가 조정 및 제도개선 의결(2026.3.26); 국가법령정보센터,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보건복지부고시 제2026-161호, 2026.7.30 시행 2026.8.1);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4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2025.6); 보건복지부, 필수약제 공급 지원을 위한 약가 인상 및 중증질환 치료제 보장성 강화(2023.11.23); JW생명과학, 영업현황·재무하이라이트; 보령, 재무정보 및 CEO Letter 2026; 부광약품, 재무정보; 대웅제약,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