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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월급보다 부모 자산이 중요해졌다…한국의 ‘계층 사다리’가 바뀌고 있다

커버스토리

열심히 벌고 저축하면 언젠가는 집을 사고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믿음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경제 서사였다.

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면 자산을 축적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계층도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분석은 이 공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2026년 6월 발표한 이슈노트에서 한국 경제가 자산격차 심화와 소득격차 재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적인 양극화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특히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2025년 0.625로 상승했다. 수치가 높아질수록 자산이 특정 계층에 더 집중됐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고연령층의 자산 집중이 겹치면서 세대 간 자산 양극화가 구조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bok.or.kr)

문제는 자산격차가 단순히 ‘부자가 더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년층 내부에서도 소득을 모아 자산을 형성하는 사람과 부모 자산을 통해 일찍 주택이나 금융자산을 확보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 역시 청년층 가운데 소득 축적만으로 자산 형성 사다리에 올라가기 어려운 계층이 크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bok.or.kr)

계층을 가르는 기준이 ‘얼마를 버느냐’에서 ‘무엇을 이미 가지고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평균 자산 5억6678만원, 그러나 ‘평균’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6678만원이었다.

평균 부채는 9534만원, 평균 순자산은 4억7144만원이었다.

전년과 비교하면 자산은 4.9%, 부채는 4.4% 증가했다. 2024년 평균 가구소득은 7427만원으로 3.4% 늘었다. (kostat.go.kr)

표면적으로 보면 자산과 소득 모두 증가했다.

하지만 평균값만 보면 격차의 구조가 가려진다.

한국은행이 자산 지니계수 상승을 별도로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산이 많은 가구가 보유한 부동산과 금융자산 가격이 올라가면 평균 자산은 빠르게 상승한다.

반면 자산이 거의 없는 가구는 같은 상승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즉 평균 자산이 늘었다는 사실과 대부분의 가구가 자산 형성에 성공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왜 월급보다 자산이 더 빨리 벌어질까


소득과 자산은 증가하는 방식이 다르다.

월급은 대부분 매달 조금씩 늘어난다.

반면 집값이나 주가는 짧은 기간에도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

이미 10억원짜리 주택을 가진 가구가 집값 10% 상승을 경험하면 평가자산이 1억원 늘어난다.

반면 같은 기간 연봉이 5000만원인 사람이 월급 일부를 저축해 1억원을 모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자산가격이 소득 증가보다 빠르게 오르면 ‘보유 여부’ 자체가 격차를 키우는 장치가 된다.

한번 자산시장에 올라탄 사람과 아직 올라가지 못한 사람 사이의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특히 주택처럼 가격 단위가 큰 자산에서는 이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고령층에는 부동산, 청년층에는 월급이 있다


한국의 자산구조에서 세대 격차가 커지는 배경에는 부동산이 있다.

2025년 고령자 통계를 보면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가구의 2024년 순자산은 평균 4억6594만원이었다.

전체 가구 평균인 4억4894만원보다 1701만원 많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산의 구성이다.

65세 이상 가구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은 80.1%였다. 저축 비중은 14.2%에 그쳤다. (kostat.go.kr)

고령층 상당수의 부가 주택과 토지 같은 실물자산에 묶여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청년층은 상대적으로 금융자산과 전월세보증금 비중이 높고,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비중도 크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두 집단의 자산격차는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같은 경제성장률과 같은 임금상승률을 경험하더라도 자산을 보유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체감하는 경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청년 내부에서도 ‘부모 지원 여부’가 갈라놓는다


문제는 세대 간 격차만이 아니다.

같은 20대와 30대 안에서도 자산격차가 커질 수 있다.

부모에게 주택 구입 자금이나 전세보증금 일부를 지원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출발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연봉을 받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부모 지원으로 전세보증금이나 주택 계약금을 마련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같은 돈을 대출로 조달해야 한다.

첫 번째 사람은 이자비용을 줄이고 더 일찍 자산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두 번째 사람은 월급 상당 부분을 이자와 임대료로 지출해야 한다.

몇 년이 지나면 둘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초기 지원금보다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이 청년층 내에서 소득 축적만으로 자산 형성 사다리에 올라가지 못하는 계층이 증가했다고 본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bok.or.kr)


상속과 증여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


자산가격 상승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상속과 증여의 중요성도 커진다.

국세청은 2026년 5월 상속·증여세 안내자료를 내놓으면서 최근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 상승, 고령화에 따른 자산 이전 확대 때문에 상속·증여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nts.go.kr)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3%를 차지하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이 비중은 2036년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kostat.go.kr)

고령층이 상당한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대규모 자산 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자산이 모든 청년에게 동일하게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가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자녀의 주택 구입, 결혼, 투자, 창업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상속과 증여가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기회의 배분 문제가 되는 이유다.


‘부의 대물림’은 집 한 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상속이라고 하면 흔히 수십억원대 자산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한국의 자산구조에서는 반드시 초고액 자산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구 자산의 상당 부분이 주택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오래 보유한 주택 한 채의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면 그 집을 물려받는 자녀는 상당한 자산을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부모가 임차로 거주하거나 노후생활을 위해 자산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가정에서는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자산이 거의 없을 수 있다.

이 차이는 소득으로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

부모가 가진 집 한 채가 자녀 세대의 자산 출발선을 가를 수 있다는 의미다.


부모 자산은 주택 구입 시점도 바꾼다


주택을 언제 처음 사느냐는 장기 자산 형성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자산가격이 장기간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일찍 시장에 진입한 사람이 더 큰 평가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부모 지원을 통해 30대 초반에 주택을 구입한 사람과 40대가 돼서야 자력으로 집을 산 사람은 같은 집값 상승률을 경험하더라도 누적된 자산 증가폭이 다를 수 있다.

주거비용에서도 차이가 생긴다.

주택 보유자는 대출 원리금을 갚으면서 동시에 자기 자산을 늘릴 수 있지만 임차인은 월세나 전세대출 이자를 지출하면서도 주택 가격 상승의 이익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차이가 반복되면 자산격차는 개인의 저축 습관보다 주택시장에 언제 진입했느냐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결혼과 출산까지 자산 격차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자산의 출발선은 주택 구입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과 출산,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주거비 부담이 적은 청년은 결혼이나 출산을 상대적으로 일찍 결정할 여지가 있다.

반면 높은 전세대출이나 월세를 부담해야 하는 청년은 같은 소득을 받더라도 미래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

창업이나 이직처럼 소득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는 선택도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산격차가 단순히 통장 잔액의 차이를 넘어 삶의 선택지 차이로 확장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 역시 가계 양극화가 소비와 생산성,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산이 특정 계층에 과도하게 집중되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자산 잠김’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bok.or.kr)


소득 불평등보다 자산 불평등이 더 오래 남는다


소득은 매년 달라질 수 있다.

취업과 승진, 이직, 사업 성공에 따라 개인의 소득 수준은 변한다.

반면 자산은 축적된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은 다음 세대로 이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산격차가 세대 간 이전과 결합하면 불평등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소득이 낮더라도 부모로부터 상당한 자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높은 소득을 벌어도 주거비와 대출을 감당하면서 자산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때 ‘연봉’만으로 경제적 계층을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상속세 논쟁도 세율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자산 이전이 커질수록 상속세와 증여세 논쟁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오래전 설정된 세율과 공제 기준이 현재 자산가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자산 대물림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상속세를 크게 완화하면 부의 세습이 더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두 주장 모두 경제적 근거가 있다.

하지만 논쟁이 세율 몇 퍼센트만을 놓고 진행되면 더 큰 문제를 놓칠 수 있다.

앞으로 핵심은 세금을 얼마나 걷느냐뿐 아니라 부모 자산에 따라 자녀의 경제적 출발점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있다.

주거와 교육, 금융 접근성 같은 영역에서 출발선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상속세 하나만으로 자산 양극화를 해결하기 어렵다.


월급의 시대가 정말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안정적인 소득은 여전히 자산 형성의 가장 기본적인 기반이다.

좋은 일자리와 높은 임금이 없다면 저축과 투자도 어렵다.

다만 소득이 자산 형성으로 연결되는 경로가 과거보다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주택가격이 소득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금융자산 역시 기존 보유자가 더 많은 수익을 얻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처음 자산을 만드는 사람의 난도가 높아진다.

결국 경제정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청년의 소득을 높이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주택과 금융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까지 함께 개선해야 하는지를 봐야 한다.


계층 이동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가장 강력한 계층 이동 수단은 교육과 취업이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얻어 높은 소득을 벌면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경제적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 공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산가격 상승과 고령층 자산 집중, 상속·증여 확대가 겹치면서 새로운 변수가 커지고 있다.

부모가 집을 가지고 있는지, 자녀에게 얼마를 지원할 수 있는지, 자산을 언제 이전할 수 있는지가 주택 구입과 투자, 결혼과 창업의 시점을 바꾸고 있다.

한국은행이 순자산 지니계수가 2017년 0.584에서 2025년 0.625로 상승했다고 지적한 것은 단순한 통계 변화가 아니다. (bok.or.kr)

자산이 세대 간 이동하는 시대에는 오늘의 불평등이 내일 다시 재생산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신호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질문 가운데 하나는 ‘누가 얼마나 버느냐’만이 아닐 것이다.

누가 어떤 자산을 가지고 경제생활을 시작하는지,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소득과 노력만으로 자산 형성의 사다리에 올라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월급이 의미를 잃는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월급만으로도 자산의 출발선 차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회인지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유지되느냐는 결국 그 질문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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