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어도 전기를 못 보내는 이유…송전망 투자와 출력제어가 기업 실적을 가르는 방식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세웠는데도 전기를 제때 보내지 못하는 문제는 발전설비 부족보다 전력망 병목에서 더 자주 생긴다. 한국의 전력계통은 발전소 건설 속도에 비해 송전선로·변전소·계통안정화 설비 확충이 늦었고, 그 사이 사업자는 계통접속 대기와 출력제어를 함께 떠안게 됐다.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단순하지 않다. 전력망을 깔아야 하는 한국전력은 대규모 선투자 부담을 지고, 전력기기 업체는 그 투자 확대의 수혜를 받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같은 제도 변화가 매출 인식 시점과 실제 이용률을 흔드는 변수로 작동한다.
접속 허가가 나도 곧바로 송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발전소 인허가와 계통 수용능력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공개된 ‘전력계통 신뢰도 및 전기품질 유지기준’은 전력거래소와 송·배전사업자가 계통 안정성 유지를 위해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선접속 후제어를 조건으로 한 계약에서도 사업자가 이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접속 자체가 곧 무제한 송전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전은 2024년부터 제주·호남·동해안 지역 변전소를 계통관리 대상으로 묶고 전력망이 보강되기 전까지 신규 설비의 송배전망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대신 2024년 5월부터는 출력제어를 전제로 추가 접속을 허용하는 유연 접속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접속 대기 물량을 일부 풀어주는 장치이지만,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접속 지연 위험이 출력제어 위험으로 바뀐 것에 가깝다. 발전소를 연결하더라도 전기를 모두 팔 수 있다는 보장은 여전히 없는 셈이다.
출력제어가 실제로 얼마나 발생하는지도 지역과 제도에 따라 다르다. 전력거래소의 ‘2024년 연간 제주지역 전력계통 운영실적’에 따르면 제주의 2024년 풍력 출력제어 횟수는 51회, 태양광은 32회였다. 2023년의 풍력 117회, 태양광 64회와 비교하면 줄었지만, 출력제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곧바로 동일한 비율의 제어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ESS 보강, 시장제도 개편, 기상조건, 지역별 계통 차이가 실제 결과를 바꾸기 때문이다.
한전은 CAPEX를 앞당겨야 하지만, 수익은 곧바로 따라오지 않는다
전력망 병목의 1차 부담은 한국전력이 진다. 한전은 2025년 2월 공개한 자료에서 2024년에 제주·호남·동해안 지역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했다고 설명하면서, 2023년 5월 수립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서 345kV 이상 신규 사업이 57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병목이 확인된 뒤에야 대규모 보강 사업이 뒤따르는 구조라는 뜻이다.
문제는 투자 필요성과 재무 여력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전은 2024년 공개 자료에서 2023년 별도 기준 6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자료에서 재정건전화 확대 계획 규모를 18조1000억원으로 제시했는데, 적자를 줄여야 하는 시기에 송전망 투자까지 늘려야 하는 이중 과제가 생긴 것이다. 송전망은 지어야 하지만, 건설 지연과 민원, 요금 규제, 투자회수 시차가 겹치면 CAPEX 확대가 곧바로 이익 증가로 이어지기 어렵다.
다만 한전이 투자를 미루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2024년 9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6개 변전소에 총 978MW 규모의 ESS 건설을 완료했고, 소룡·논공·나주·선산·신영주변전소 등 5개 변전소에 300MW ESS를 2028년까지 추가로 추진할 계획이다. 출력제어를 줄이기 위한 대응이 단순 송전선 증설만이 아니라 ESS와 계통안정화 설비 확충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런 투자는 대부분 선집행 성격이 강해 단기 실적보다는 중장기 계통 안정과 접속 여력 확대에 더 가깝다.
전력기기 업체에는 수주 기회, 재생사업자에는 가동률 변수
같은 병목이 다른 기업에는 수주 기회가 되기도 한다. LS ELECTRIC의 2025년 2분기 실적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2분기 매출은 1조5770억원, 영업이익은 1785억원, 수주잔고는 약 7조원이었다. 회사는 초고압 변압기 수요 확대에 대응해 부산 공장 증설에 1010억원을 투입하고, LS파워솔루션 지분 51% 인수에도 600억원을 집행했다. 또 2025년에는 GE 버노바와 초고압직류송전 변환밸브 현지화 협력을 발표했다. 국내외 전력망 보강 수요가 전력기기 업체의 외형 성장과 설비 증설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를 곧바로 ‘국내 재생에너지 병목의 직접 수혜’로만 보기는 어렵다. LS ELECTRIC의 최근 실적 설명에는 데이터센터와 북미 배전 인프라, 초고압 변압기 같은 해외·민간 수요가 함께 반영돼 있다. 국내 송전망 투자 확대가 긍정적 변수인 것은 맞지만, 실적 전체를 설명하는 단일 요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전력망 테마가 강하다고 해서 모든 이익 증가를 국내 계통접속 문제의 결과로 연결하는 해석은 과장에 가깝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운영·개발 사업자는 접속과 제어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는다. SK이터닉스는 회사 사업소개와 2025년 실적자료에서 390MW 신안 우이 해상풍력, 240MW 굴업도 해상풍력, 99MW 의성 황학산 풍력, 75MW 풍백 풍력 등 대형 파이프라인을 제시했다. 동시에 태양광 40MW 직접 PPA는 2026년 1월부터 30년간 최소 1945억원, 다른 40MW 직접 PPA는 2028년 6월부터 25년간 최소 2031억원, 100MW 직접 PPA는 2026년 상반기부터 25년간 최소 5023억원, 75MW 풍력 PPA는 2026년 2월부터 25년간 최소 4068억원의 전력공급 조건을 제시했다.
이 숫자만 보면 장기 매출 가시성이 높아 보이지만, 실제 현금창출은 상업운전 개시 시점과 계통연계, 제어 빈도에 따라 달라진다. 접속이 늦어지면 매출 인식이 뒤로 밀리고, 접속이 되더라도 출력제어가 잦으면 이용률과 정산량이 흔들린다. 그래서 발전사업자들은 단순 발전설비 보유보다 ESS, 발전량 예측, 전력중개, PPA 구조화 능력을 함께 키우고 있다. SK이터닉스가 제주 가시리 BESS 상업운전 목표를 제시하고 전력중개·VPP 역량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 영향의 본질은 ‘누가 병목 비용을 떠안느냐’에 있다
정리하면 송전망 CAPEX와 출력제어는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에 같은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전에는 선투자 부담과 회수 시차를 키우고, 전력기기 업체에는 수주와 증설 기회를 만든다.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는 발전량보다 계통연계와 제어조건, ESS 연계 여부가 사업성의 핵심 변수가 된다.
반례도 분명하다. 출력제어가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곧바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고, 송전망 투자 확대가 곧바로 한전의 실적 개선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2024년 제주 제어 횟수가 전년보다 줄어든 것처럼 운영제도와 보조설비 확충이 일부 완충 역할을 할 수 있고, 장기 PPA를 가진 사업자는 현물시장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일 수도 있다. 결국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어도 전기를 못 보내는 문제의 본질은 설비 부족이 아니라, 병목 비용과 제어 리스크를 가치사슬 어느 지점의 기업이 얼마나 떠안느냐에 있다.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전력계통 신뢰도 및 전기품질 유지기준(현행); 한국전력 및 전력그룹사,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4; 한국전력, 2025년 2월 공개자료; 한국전력, 2024년 9월 공개자료 ‘총 규모 978MW ESS 건설사업 마침표!’; 전력거래소, 2024년 연간 제주지역 전력계통 운영실적(2025년 2월); LS ELECTRIC, 2025년 2분기 실적자료; LS ELECTRIC, 2025년 7월 24일 보도자료; SK이터닉스, 2025 실적자료; SK이터닉스, 사업소개 및 2024년 11월 19일 보도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