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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임금체불, 법보다 먼저 막히는 건 현금흐름…상장 건설사 실적이 보여준 갈림길

경제

건설업 임금체불은 현장에서 사업주 의지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위에서 공사대금이 늦어지거나 미수금이 불어나면 아래에서는 하도급 대금, 자재비, 장비대금, 임금이 순차적으로 압박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025년 연간 임금체불액은 2조679억원이었고 이 가운데 건설업은 4166억원으로 제조업 다음으로 컸다. 2024년 건설업 체불액 4780억원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체불이 건설업의 구조적 비용 문제로 남아 있다는 뜻에 가깝다.

이 사안을 기업 실적의 언어로 바꾸면 핵심은 매출이 아니라 현금화 속도다. 공사대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원청과 시행사, 하청, 노동자 사이의 연쇄가 꼬이고, 상장사 재무제표에는 계약자산, 매출채권, 운전자본 부담, 영업현금흐름 악화로 흔적이 남는다. 반대로 같은 업황에서도 청구와 회수 관리가 되는 회사는 현금흐름을 지키며 협력사 지급을 앞당길 여지를 만든다.


법은 있는데 왜 체불이 반복되나


현행 제도는 빈칸이 없는 편이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건설위탁에서 원사업자의 하도급대금 지급기한을 정하고, 일정한 경우 계약체결일부터 30일 이내 대금지급 보증도 요구한다. 별도로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발주하는 일정 규모 이상 건설공사에서 임금비용을 다른 공사비와 구분해 지급하고, 전월 임금 지급내역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체불이 법 조문이 비어 있어서만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설계변경 정산, 기성 인정 지연, 시행사 자금조달 차질, 분양 부진, 프로젝트파이낸싱 경색, 공사원가 급등이 한꺼번에 얽힌다. 임금은 가장 후순위로 밀리기 쉬운 항목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말단에서 즉시 충격을 받는 항목에 가깝다. 위 단계에서 자금이 막히면 아래 단계의 임금은 법적 보호 장치가 있어도 사후 구제 성격이 강해진다.

정부도 이런 구조를 인정해 2025년 9월 2일 범정부 임금체불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고, 2026년 3월 12일에는 임금비용 구분지급과 체불범죄 법정형 상향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다만 제도 강화는 체불 발생 뒤 처벌을 높이는 효과와 함께, 자금이 아래로 새지 않도록 결제 경로를 더 촘촘하게 만드는 효과를 노린 것이지 민간 현장의 미수금 자체를 곧바로 없애는 장치는 아니다.


DL이앤씨 사례, 미청구·채권을 줄이면 현금흐름이 바뀐다


상장 건설사 공시를 보면 공사대금 회수 관리가 실적의 질을 얼마나 바꾸는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DL이앤씨의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은 7조4024억원으로 2024년보다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709억원에서 3870억원으로 늘었다. 외형보다 수익성과 현금회수의 질이 개선됐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재무제표를 보면 더 구체적이다. DL이앤씨의 연결 계약자산은 2024년 말 8861억원에서 2025년 말 6286억원으로 줄었고, 매출채권 및 기타채권도 1조7399억원에서 1조6214억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 1402억원에서 플러스 1791억원으로 돌아섰다. 공사를 했지만 아직 돈으로 못 받은 몫과 받아야 할 채권이 줄자, 손익계산서보다 더 중요한 현금흐름이 회복된 셈이다.

이 흐름은 건설업 체불 문제를 바라보는 데 중요한 단서를 준다. 원청 입장에서 공사대금 회수 속도가 빨라지면 차입 부담을 덜고 협력업체 지급도 안정시킬 수 있다. 반대로 매출이 유지돼도 계약자산과 채권이 커지면, 숫자상 실적과 현장 체감 사이 간극이 벌어지기 쉽다. 임금체불은 그 간극이 하단으로 전가될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신호 중 하나다.


현대건설 사례, 흑자 전환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렵다


반대로 대형사라도 손익 개선이 곧바로 현금 여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현대건설의 2025년 연결 매출은 31조630억원, 영업이익은 6530억원으로 2024년 영업손실 1조2630억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수익성 지표도 2024년 마이너스 3.9%였던 영업이익률이 2025년 2.1%로 회복됐다.

하지만 안정성 지표는 여전히 무겁다. 현대건설의 2025년 부채비율은 174.8%, 유동비율은 147.9%, 현금비율은 34.9%였다. 전년보다 일부 개선됐다고 보기 어려운 구간도 남아 있다. 대형 건설사가 회계상 이익을 회복해도, 운전자본과 유동성 관리가 빡빡하면 하도급 대금과 협력사 정산을 둘러싼 긴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독자가 봐야 할 것은 영업이익 자체보다 그 이익이 얼마나 빨리 현금으로 돌아오느냐다. 건설업에서는 준공 전후 정산, 발주처와의 공사비 협의, 해외 현장 클레임, 미분양과 PF 노출 같은 변수가 한 번에 작동한다. 그래서 같은 흑자라도 어떤 회사는 아래로 돈을 빨리 흘려보낼 수 있고, 어떤 회사는 장부상 이익과 현장 체감이 어긋날 수 있다.


반례도 있다…지급을 앞당기는 회사는 수주 경쟁력까지 얻는다


공사대금 지연이 항상 업계 전체의 동일한 운명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자체사업 비중, 분양 성과, 차입 여력, 현금 보유, 협력사 관리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IPARK현대산업개발은 2025년 매출 4조1470억원, 영업이익 2486억원을 기록했고, 회사는 같은 시기 협력사 금융지원과 조기지급 정책도 공개했다.

회사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IPARK현대산업개발은 800억원 규모의 상생펀드를 운용하고 무이자 대여금 및 선급금 지원을 병행했으며, 2025년 추석을 앞두고 협력사 558곳에 1878억원의 대금을 조기 지급했다. 이 조치는 단순한 상생 홍보라기보다 현금흐름 여력이 있는 회사가 공급망 불안을 줄이고, 향후 입찰과 수주에서 협력사 네트워크를 더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방식으로 읽힌다.

즉 반례의 핵심은 체불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돈을 제때 주는 회사가 비용을 더 쓴다는 단기 인식과 달리, 장기적으로는 공정 차질 감소, 협력사 이탈 방지, 금융비용 절감, 수주 경쟁력 강화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건설업에서 지급 질서는 복지나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 지속성과 원가 통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독자가 봐야 할 숫자는 매출보다 계약자산과 영업현금흐름


건설업 임금체불을 막지 못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임금체불은 현장 말단의 문제가 아니라 위 단계의 자금경색이 아래로 번진 결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법은 지급기한과 보증, 구분지급 의무를 강화하고 있지만, 시행사와 원청의 미수금이 쌓이는 순간 체불 위험은 다시 커진다. 그래서 기업 영향을 보려면 매출 성장보다 계약자산 증가 여부, 매출채권 회수 속도, 영업활동현금흐름, 부채비율과 현금비율, 협력사 조기지급 관행을 함께 봐야 한다.

정리하면, 공사대금 체불과 미수금은 건설사에 단순한 회수 지연이 아니라 수익성, 투자여력, 금융비용, 공급망 안정성까지 건드리는 변수다. 다만 모든 회사가 같은 충격을 받는 것은 아니다. DL이앤씨처럼 계약자산과 채권을 줄이며 현금흐름을 개선한 사례가 있는 반면, 현대건설처럼 이익 회복에도 안정성 지표를 계속 점검해야 하는 회사가 있다. 또 IPARK현대산업개발처럼 현금 여력을 바탕으로 협력사 지급을 앞당기며 반대로 경쟁력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체불을 막을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현실적 답은 결국, 그 의지를 뒷받침할 현금흐름을 어떻게 만들고 공개하느냐다.

자료: 고용노동부 노동포털, 임금체불 통계 현황(2026년 10월 확인); 국가법령정보센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2026년 10월 현행); DL이앤씨, 재무하이라이트(2026년 10월 확인), 제5기 정기주주총회 소집공고(2026.3.25), 2025년 실적 관련 회사소식(2026.2.6); 현대건설, 주요 경영실적·주요지표·주요 보고서(2026.3.18 및 2026년 10월 확인); IPARK현대산업개발, 회사 소식(2025.9.15), 한국거래소 KIND 공시(2026.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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