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약한데도 성장한 한국경제…반도체 설비투자와 서비스수출, 기업 실적을 어떻게 갈랐나
소비가 약하면 성장은 멈춘다는 통념은 2026년 한국 경제에 그대로 들어맞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2026년 7월 23일 발표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속보에 따르면 2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0.6%였다. 직전 1분기 1.8% 성장의 기저효과가 있었는데도 성장세가 이어졌고, 성장의 내용도 민간소비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웠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 연구개발과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지식재산생산물투자, 그리고 운송·관광·정보통신을 포함한 서비스업이 함께 버팀목이 됐다.
핵심은 성장의 기여도가 한쪽에만 쏠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2분기 성장 0.6% 가운데 내수와 순수출이 각각 0.3%포인트씩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발표에서 민간소비는 0.4%, 설비투자는 0.2%, 지식재산생산물투자는 3.3% 늘었다. 건설투자가 0.2% 줄었지만, 설비와 무형투자가 이를 일부 상쇄한 셈이다. 상반기 전체로 보면 민간소비 증가율은 2.6%, 설비투자는 5.4%로 2024~2025년의 1%대 중반보다 빨라졌다고 한국은행은 평가했다.
기업 실적은 같은 성장률 안에서도 다르게 반응했다
이 흐름이 기업에 미친 영향은 업종별로 뚜렷하게 갈렸다. 반도체 업종은 설비투자와 수출 확대의 수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았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7월 29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연결 기준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분기 대비 매출은 51%, 전년 동기 대비는 257% 늘었다. 회사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HBM 등 고부가 제품 판매 호조를 배경으로 들면서도, 중장기 투자 집행은 고객 수요와 투자 효율에 맞춰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성장 국면에서도 무차별 증설이 아니라 수요 확인 뒤 집행하는 방식이 자본시장에는 더 중요한 신호가 됐다.
같은 시기 서비스수출 성격이 강한 항공 업종은 매출 확대와 비용 압박이 동시에 나타났다. 대한항공은 2026년 7월 13일 2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별도 기준 매출 5조199억원으로 역대 2분기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여객 매출은 2조8479억원, 화물 매출은 1조5419억원으로 모두 전년 동기보다 늘었다. 방한 수요와 환승 수요, AI 관련 화물 수요가 매출을 밀어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유가 상승에 따른 연료비 부담으로 2618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보다 줄었다. 서비스수출이 성장에 기여해도 모든 기업의 이익률이 동시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서비스수출은 이제 보조 변수가 아니라 성장 항목이 됐다
서비스수출의 역할도 예전과 달라졌다. 한국은행은 2026년 8월 5일 이슈노트에서 2025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약 1894만명으로 2019년 기록을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2000년 이후 관광수출의 연평균 성장 기여도는 0.04%포인트였지만, 방한 수요가 본격 회복된 2022~2025년에는 0.15%포인트로 높아졌다. 여기에 2026년 6월 국제수지 설명자료에서는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서비스수지는 외국인 입국자 증가로 여행수지 적자 폭이 축소됐다고 밝혔다. 6월에는 상반기 기준 외국인 입국자가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었고, 여행수입도 상반기 기준 최대를 기록했다.
이 대목은 자본시장 독자에게 특히 중요하다. 서비스수출은 제조업처럼 대규모 공장 증설만으로 늘지 않는다. 체류기간, 객단가, 노선 운영, 브랜드 경쟁력, 디지털 예약·결제 시스템, 공항과 도심의 수용 능력, 콘텐츠와 의료·쇼핑 같은 고부가 서비스의 결합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한국은행도 관광정책의 성과를 방한객 수가 아니라 관광수출액과 국내 부가가치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서비스수출의 기업가치는 매출 총량보다 부가가치율과 비용 통제력에서 갈린다.
정부 역할은 소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와 생산성의 마찰을 줄이는 일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현재 제도상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민간 설비투자의 초기 부담을 낮추는 세제와 기반시설 지원이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 제24조는 통합투자세액공제를 규정하고 있으며, 2026년 9월 18일 시행 기준으로 국가전략기술 사업화시설은 2029년 12월 31일까지 투자할 경우 세액공제 대상이 된다. 반도체 분야 국가전략기술시설은 일반 기업 기준 20%의 기본공제율이 적용된다. 정부가 반도체 생태계에 저리대출과 인프라 지원을 병행해 온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성장 기여도가 큰 설비투자가 실제 집행으로 이어지려면 세제 혜택, 전력·용수·도로 같은 인프라, 인허가 속도가 맞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책의 한계도 분명하다. 세액공제는 투자 결정을 앞당길 수는 있어도 수요가 없는 업종의 수익성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서비스수출 역시 단순 방문객 숫자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체류일수와 1인당 지출, 고부가 서비스 비중이 함께 오르지 않으면 매출은 늘어도 국내 부가가치는 기대만큼 커지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2분기 지식재산생산물투자가 3.3% 증가했다고 밝힌 대목도 그래서 중요하다. 생산성은 단기 부양책보다 연구개발, 소프트웨어, 운영 효율, 인력 숙련이 쌓일 때 기업 이익으로 남는다.
결국 내수 부진 속 성장의 실체는 소비를 억지로 끌어올린 결과가 아니라, 일부 업종에서 확인된 설비투자와 서비스수출, 무형투자의 결합이었다. 반도체 기업에는 증설과 가격 상승이 실적 레버리지로 작동했고, 항공처럼 서비스수출 기업에는 외형 성장과 비용 부담이 동시에 나타났다. 투자자는 앞으로도 국내총생산 숫자 하나보다 성장의 항목별 기여도, 그중에서도 설비투자와 지식재산투자, 서비스수출이 어떤 기업의 매출과 마진으로 연결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정부 역시 소비 진작 자체보다 생산성 높은 투자와 수출 서비스가 실제 집행되도록 제도적 병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출 때, 성장률은 일회성이 아니라 기업 실적으로 번역될 가능성이 커진다.
자료: 한국은행, 2026년 2/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 기자설명회(2026.07.23); 한국은행, 2026년 6월 국제수지(잠정) 기자설명회(2026.08.07);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제2026-18호 서비스수출 관점에서 본 관광산업의 성장효과와 정책 방향(2026.08.05); SK하이닉스, 2026년 2분기 경영실적 발표(2026.07.29); 대한항공, 2026년 2분기 잠정실적 발표(2026.07.13);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조세특례제한법 제24조 통합투자세액공제(시행 2026.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