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격차는 내수 업종을 똑같이 때리지 않았다…분위별 소비가 갈라놓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부의 불평등이 내수 시장에 남기는 흔적은 단순히 “소비가 줄었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2025년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저소득층은 소득보다 지출 압박이 더 크고, 고소득층은 소비를 줄이기보다 저축과 선택소비의 폭을 넓히는 쪽에 가깝다. 같은 내수 업종이라도 어느 소득층을 주 고객으로 두는지, 필수재를 파는지 선택재를 파는지에 따라 실적의 방향이 달라진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소득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35만8천원, 5분위는 520만4천원이었다. 금액 격차는 컸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소비 여력의 차이다. 1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은 147.6%로 처분가능소득을 넘어섰고, 5분위는 56.7%였다. 2분기에도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1분위 평균소비성향은 128.1%, 5분위는 59.8%였다. 소비지출 격차는 1분기와 2분기 모두 5분위가 1분위의 약 3.8배 수준이었지만, 소득 격차는 약 9배에서 10배를 넘었다. 저소득층은 필수지출 비중이 높아 소득 차이만큼 소비를 줄이기 어렵고, 고소득층은 같은 소득 증가가 더 큰 흑자와 자산 축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라는 뜻이다.
지출의 내용도 달랐다. 1분위 소비에서 비중이 큰 항목은 주거·수도·광열, 식료품, 보건이었다. 반면 5분위는 음식·숙박, 교통·운송, 교육, 오락·문화 같은 선택적 소비 항목의 절대 지출 규모가 훨씬 컸다. 다만 이것이 상위층의 전방위 소비 확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2025년 2분기 5분위 지출은 의류·신발이 전년 동기보다 7.2% 줄고 음식·숙박은 0.1% 감소하는 등 항목별 선별이 뚜렷했다. 자산 여력이 있는 계층도 아무 품목에나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재, 서비스, 건강, 프리미엄 소비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백화점은 왜 버텼나…상위소득층 소비의 방어력
이 구조는 백화점 실적에서 먼저 읽힌다. 신세계는 2025년 연결 기준 총매출액 12조77억원, 영업이익 4천8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매출은 늘었고 영업이익도 큰 폭의 후퇴 없이 유지됐다. 별도 기준으로 봐도 총매출액은 5조4천81억원으로 전년 5조2천842억원보다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천388억원으로 전년 2천434억원보다 소폭 줄었다. 외형은 유지됐지만 비용과 상품 믹스 변화가 수익성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이 회사는 2024년 말 기준 백화점 9개 점포를 운영하고, 주주총회 소집공고에서 상위 3사 기준 백화점 시장점유율을 36%로 추정했다. 이 구조는 실적 해석에도 중요하다. 상위소득층 비중이 높은 백화점은 저가 대중소비가 흔들릴 때도 타격을 그대로 받지 않는다. 실제로 5분위 가구는 2025년 1분기 교육비로 월 58만7천원, 오락·문화에 39만8천원, 음식·숙박에 74만8천원을 썼고, 2분기에도 보건 35만7천원, 기타상품·서비스 48만9천원, 음식·숙박 77만1천원 등 절대 지출 규모가 컸다. 백화점의 매출 기반이 단순 필수재보다 외식, 패션, 화장품, 프리미엄 서비스와 더 맞물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산을 보유한 소비층의 방어력이 매출 하방을 지탱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다만 백화점도 무풍지대는 아니다. 2025년 2분기 5분위의 의류·신발 지출이 감소했고, 교통·운송도 제자리걸음에 가까웠다. 신세계 별도 영업이익이 매출 증가에도 소폭 줄어든 점은 고가 소비가 유지돼도 판촉비, 인건비, 점포 운영비 같은 비용 압박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백화점이 무조건 좋아진다는 식의 단순화는 맞지 않는다. 상위층 소비가 매출은 받쳐주지만, 이익은 비용 구조와 상품 구성이 좌우한다.
대형마트의 반례…모두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포맷이 갈렸다
반대편에는 이마트가 있다. 이마트의 2025년 연결 매출은 28조9천704억원으로 전년 29조209억원보다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3천225억원으로 전년 471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업태별 차이가 더 뚜렷했다. 할인점 매출은 2024년 11조6천665억원에서 2025년 11조6천494억원으로 사실상 제자리였고, 영업이익은 적자 199억원에서 흑자 872억원으로 돌아섰다. 반면 트레이더스는 매출이 3조5천495억원에서 3조8천520억원으로 늘었고 영업이익도 924억원에서 1천293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수치는 자산 격차가 커질수록 대중 소비 업종이 일괄적으로 무너진다는 통념의 반례다. 저소득층은 식료품과 주거비 비중이 높아 소비를 아예 끊기 어렵고, 중간소득층은 같은 생활비를 더 효율적으로 쓰는 채널을 찾는다. 대형마트 전통 점포가 정체되는 사이 창고형 할인점이 커진 것은 이런 이동의 결과로 읽힌다. 값싼 소분 구매보다 대용량, 계획구매, 자체상표 상품 중심 소비가 확산될수록 포맷 경쟁력이 실적 차이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수 부진”보다 “내수의 재편”이다. 1분위와 2분위 지출은 식료품, 주거, 보건 같은 비탄력 항목에 묶여 있고, 5분위는 서비스와 프리미엄 항목으로 이동한다. 그 사이의 중간층은 가격 민감도가 높아져 할인점보다 더 싼 채널, 혹은 한 번에 많이 사서 단가를 낮추는 채널로 움직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한 총소비 증가율보다 고객층의 소득구성, 구매 빈도, 객단가, 상품 믹스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불평등은 해결 가능한가보다, 어떤 업종에 어떤 방식으로 번지는가가 먼저다
부의 불평등을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별개로, 기업 실적에는 이미 분명한 흔적이 남고 있다. 저소득층의 소비는 축소라기보다 필수지출 고정화에 가깝고, 고소득층의 소비는 전반 확대가 아니라 선택적 프리미엄화에 가깝다. 그래서 백화점은 상위층 지갑의 방어력 덕분에 매출을 버티고, 대형마트는 창고형 할인점처럼 가격 효율을 앞세운 포맷이 상대적으로 강해진다.
정책과 기업 전략도 이 지점에서 갈린다. 저소득층 지원은 총소비 진작보다 필수지출 부담 완화 효과가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유통기업의 투자 판단은 경기 일반론보다 어느 소득층의 어떤 품목을 잡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불평등의 해법을 한 번에 내놓기 어렵더라도, 소비시장에서 벌어지는 계층별 분화는 이미 기업 매출 구조와 업태 경쟁력의 차이로 확인되고 있다.
자료: 통계청, 2025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2025.5.29); 통계청, 2025년 2/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2025.8.28); 국가데이터처·금융감독원·한국은행,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2025.12.4); 신세계, 재무정보 및 2025년 사업보고서(2026.3.16 열람 기준); 이마트, 영업현황 및 재무비율(2026.10.22 열람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