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다뷰

시장의 변화와 미래를 읽는 경제지, 미래다뷰

[커버스토리]신용점수보다 가게 매출 본다…은행이 자영업자를 평가하는 법이 바뀐다

커버스토리

카페를 연 지 1년 된 사장과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누가 더 유리할까.

가게 매출이 꾸준히 늘고 손님도 많더라도 금융거래 이력이 짧은 자영업자는 대출 심사에서 예상보다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은행이 지금까지 개인사업자의 신용을 평가할 때 기존 대출과 연체 여부, 신용점수, 담보처럼 과거 금융정보를 중요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8월 말부터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체계인 ‘SCB’를 은행권 사업자대출에 순차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 금융정보뿐 아니라 가게의 매출과 업종, 상권, 영업기간, 고객 수요 같은 비금융정보까지 분석해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7개 은행, 약 1조8000억원 규모로 계획됐지만 참여 은행이 늘면서 기업·신한·국민·우리·농협·하나·제주은행을 비롯해 인터넷은행과 지방은행 등 모두 16개 은행, 약 2조2000억원 규모의 사업자대출에 적용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은행이 사장님의 과거 빚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장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보기 시작한 셈이다.


신용점수에는 잘 잡히지 않는 ‘가게의 현재’


개인 신용평가는 금융거래 이력을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빚을 제때 갚았는지, 얼마나 많은 대출을 가지고 있는지, 연체가 있었는지를 보면 앞으로 돈을 갚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상황을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같은 신용점수를 가진 두 사장이라도 한 사람은 매출이 몇 달째 줄고 있고, 다른 사람은 매출과 고객 수가 꾸준히 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금융이력만 보면 이런 차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더 불리할 수 있다. 금융거래와 사업 실적이 쌓일 시간이 짧아 기존 평가체계에서는 미래 성장성을 보여줄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SCB는 이 빈자리를 사업 데이터로 채우려 한다.

평가에는 매출 규모와 흐름뿐 아니라 상권 분석, 사업 지속성, 업력, 근로자 수, 고객 인지도와 수요 등이 활용될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확인되는 방문·재방문, 북마크 같은 성장지표도 평가요소로 활용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가게가 어디에 있고 어떤 업종이며, 손님이 다시 찾아오는지까지 금융평가의 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매출이 좋으면 신용점수가 낮아도 무조건 대출될까


여기서 가장 쉽게 생길 수 있는 오해는 SCB가 기존 신용평가를 없앤다는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은행은 여전히 기존 대출 규모와 연체 여부, 상환능력 등 기본적인 금융정보를 확인한다. SCB는 이를 대체하기보다 기존 평가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던 사업의 현재 상태와 성장 가능성을 추가로 보는 도구에 가깝다.

따라서 매출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대출이 자동 승인되거나, 신용점수가 낮아도 모두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 평가에서는 금융이력이 부족해 좋은 조건을 받기 어려웠던 사업자가 매출과 상권, 성장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대출 한도나 금리에서 추가적인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금융당국은 SCB 상위등급을 받은 사업자에게 금리와 한도 등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은행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자영업자에게는 ‘지난 금융거래의 성적표’ 외에 ‘현재 장사의 성적표’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같은 카페라도 상권이 다르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새 평가체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상권정보다.

예를 들어 같은 매출을 올리는 카페 두 곳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곳은 유동인구가 빠르게 늘고 재방문 고객도 증가하는 지역에 있고, 다른 한 곳은 상권 자체의 매출과 유동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면 사업의 향후 전망을 똑같이 보기 어렵다.

은행은 이런 차이를 데이터로 반영할 수 있다.

업종별 매출 변화와 주변 상권의 성장세, 사업 지속기간 같은 정보를 함께 보면 단순히 ‘지난달 매출이 얼마였나’보다 사업이 앞으로 유지될 가능성을 더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배달이나 플랫폼 중심으로 영업하는 점포라면 오프라인 유동인구만으로 사업성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된다. 정부가 유통플랫폼의 방문과 재방문, 고객관심 지표 등을 평가정보로 검토하는 이유다.

사업자가 은행에 제출하는 재무제표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가게의 실제 움직임이 신용평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좋은 상권이 항상 사장님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데이터가 많아진다고 평가가 반드시 더 공정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권정보가 중요해질수록 입지가 좋지 않은 지역에서 성실하게 영업하는 사업자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신생 점포는 재방문과 장기 매출 데이터 자체가 부족할 수 있고, 현금 결제가 많은 업종은 카드매출 중심 데이터만으로 실제 영업상태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업종 특성에 따른 차이도 크다.

계절에 따라 매출이 크게 움직이는 가게와 매달 일정한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고, 매출액은 크지만 원가와 임대료 부담이 높은 업종은 실제 상환능력이 생각보다 낮을 수 있다.

AI가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더라도 어떤 데이터를 중요하게 볼 것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는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것보다 업종별 특성과 사업단계를 얼마나 정확하게 구분하는지가 중요하다.


은행은 왜 굳이 이런 평가를 도입할까


은행에도 이유가 있다.

기존 신용평가만으로는 괜찮은 사업자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이력이 짧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했지만 실제로는 매출과 고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가게라면 은행 입장에서도 잠재적인 우량고객을 잃는 셈이다.

반대로 과거 금융이력이 좋더라도 사업 매출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면 상환 위험을 더 빨리 발견할 필요가 있다.

사업 데이터를 활용하면 은행은 단순히 대출을 더 많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돈을 빌려줘도 되는가’를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이번 제도를 ‘담보와 과거 금융이력 중심’에서 ‘데이터와 미래 성장성 중심’으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인터넷은행·지방은행까지 참여한다


이번 시범사업이 눈에 띄는 이유는 참여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는 점이다.

당초 기업·신한·국민·우리·농협·하나·제주은행 등 7개 은행이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토스뱅크를 비롯해 수협·iM·부산·경남·광주·전북은행이 추가로 들어왔다.

금융당국은 8월 말부터 기존 7개 은행이 준비상황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을 시작하고, 추가 9개 은행도 올해 하반기 안에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적용 규모는 약 2조2000억원이다.

2026년 10월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인 개인사업자 전용 사잇돌대출에도 SCB를 활용할 예정이다. 기존 사잇돌대출보다 한도를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늘리고, 성장성이 높은 중신용 개인사업자에게 금리우대 등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2027년부터는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심사에도 상권정보 등 비금융정보를 확대 활용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으로 시작하지만 은행 대출에서 보증상품까지 평가방식 자체를 넓히려는 것이다.


장사가 잘된다는 사실도 ‘신용’이 되는 시대


자영업자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가장 답답했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실제 장사 상황과 금융평가가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였다.

가게에는 손님이 늘고 매출도 좋아지는데 사업기간이 짧거나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출 한도가 낮게 나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는 이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다.

물론 AI가 가게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검증해야 한다. 상권과 플랫폼 데이터가 커질수록 개인정보와 데이터 활용범위, 평가과정의 투명성 문제도 따라올 수 있다.

그래도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은행이 소상공인을 평가할 때 더 이상 ‘얼마나 빌렸고 얼마나 잘 갚았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얼마나 팔고 있고 손님이 다시 찾아오며 이 사업이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있는가’를 함께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장님의 가게 매출은 세금 신고와 경영을 위한 숫자였다. 이제 그 숫자가 대출 한도와 금리를 결정하는 신용정보의 일부가 되고 있다.

개인의 금융이력이 곧 신용이던 시대에서, 가게의 실제 경쟁력도 신용으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금융의 평가방식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