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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술집을 떠난 20대의 밤,러닝크루·독서모임·보드게임·어드민 나이트까지…밤문화의 중심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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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밤문화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c]미래다뷰

한때 20대의 밤은 술자리로 설명됐다. 수업이 끝나면 대학가 주점으로, 퇴근 뒤에는 회사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친해지는 방식도 대개 비슷했다. 일단 마시고, 오래 앉아 있고, 다음 날 숙취를 감수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의 밤은 조금 다르다. “한잔할래?”보다 “같이 뛸래?”, “책 읽으러 갈래?”, “밀린 일 같이 처리할래?”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술을 중심으로 관계를 만드는 시대에서, 취향과 건강, 생산성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지역생활 커뮤니티 당근이 올해 1분기 20대 이용자의 모임 활동을 분석한 결과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러닝, 보드게임, 독서 등 취향 중심 활동이 상위권을 차지했고, 전체 모임의 약 60%는 10명 이하로 운영됐다. 그중 2~5명이 모이는 초소형 모임도 4건 중 1건 수준이었다. 대부분 평일 저녁 6시부터 10시 사이에 열리고, 2~3시간 안에 마무리되는 방식이다. 예전의 밤문화가 ‘길고 진한 술자리’였다면, 지금의 밤문화는 ‘짧고 선명한 목적형 만남’에 가깝다.

이 변화는 단순히 술을 덜 마시는 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 20대가 관계를 맺고, 시간을 쓰고, 돈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는 흡연·음주·신체활동 등 건강행태를 매년 조사해 국가 보건지표로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 청년층의 음주 행태 변화는 건강·여가·소비 트렌드와 함께 읽히고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도 2026년 들어 주류 시장 변화와 최신 주류 소비 행태, Z세대 웰니스 관련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 젊은 세대의 음주와 건강관리 방식이 중요한 소비 이슈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술자리의 대체재가 아니라, 새로운 ‘밤의 인프라’

20대가 술자리를 떠난 자리에 가장 빠르게 들어온 것은 운동이다. 러닝크루, 풋살, 클라이밍, 요가, 필라테스, 자전거 모임은 더 이상 주말 취미가 아니다. 평일 저녁 7시, 한강이나 동네 공원, 학교 운동장에 모여 30분에서 1시간가량 몸을 움직이고 흩어지는 방식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 모임들의 특징은 부담이 낮다는 점이다. 술자리처럼 긴 시간을 비워둘 필요도, 과한 지출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운동복과 운동화만 있으면 되고, 대화가 어색해도 함께 뛰거나 움직이는 행위 자체가 관계의 매개가 된다.

독서와 보드게임, 스터디 모임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들 모임은 ‘친목’보다 ‘활동’을 앞세운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책 한 권, 게임 한 판, 공부 목표 하나를 공유하면 대화가 시작된다. 관계의 깊이보다 접속의 가벼움이 중요해진 세대에게 이런 방식은 효율적이다. 친해지고 싶지만 과하게 얽히고 싶지는 않고, 혼자 있고 싶지만 완전히 고립되고 싶지도 않은 심리가 맞물린 결과다.

이 점에서 최근 등장한 ‘어드민 나이트’는 매우 상징적이다. 어드민 나이트는 친구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각자 미뤄둔 일을 처리하는 모임이다. 이메일 답장, 일정 정리, 공과금 납부, 서류 작성, 가계부 정리처럼 혼자 하면 귀찮고 미루기 쉬운 일을 함께 해치운다. 해외에서는 틱톡을 중심으로 확산됐고, 여러 매체가 이를 Z세대의 새로운 생산성 기반 사교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임이 ‘놀기’와 ‘일하기’의 경계를 흐린다는 것이다. 과거의 밤문화가 스트레스를 잊기 위한 소비였다면, 어드민 나이트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함께 처리하는 방식이다. 술에 취해 내일을 유예하는 대신, 친구와 함께 내일을 정리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불안정한 노동, 높은 생활비, 과잉 정보, 자기관리 압박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선택한 현실적 사교 방식에 가깝다.

해외도 비슷하다…‘덜 마시되 더 연결되는’ 세대

이 흐름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도 젊은 세대의 밤문화는 술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완전한 금주자가 아니더라도 술을 마시는 이유와 빈도를 의식적으로 조절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타임은 젊은 세대의 음주율이 장기적으로 낮아지는 배경으로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 사회적 태도 변화, 대면 사교 방식의 변화 등을 짚었다.

미국 이벤트 플랫폼 이벤트브라이트는 Z세대의 새로운 밤문화를 ‘소프트 클러빙’으로 설명한다. 술에 취해 새벽까지 노는 대신 커피 레이브, 웰니스 파티, 콜드 플런지와 DJ 세션처럼 에너지와 건강을 해치지 않는 방식의 모임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벤트브라이트는 Z세대가 더 나은 수면, 정신건강, 신체 건강을 위해 술을 줄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영국에서는 완전한 금주보다 ‘저도수’와 ‘절제’가 주목받고 있다. 더타임스는 영국 젊은층 사이에서 중간 도수 주류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는 술자리의 의례와 분위기는 유지하되 숙취 부담을 줄이려는 선택이라고 보도했다. 즉 젊은 세대는 술을 전면 거부한다기보다, 술이 관계와 시간을 지배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관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아시아 Z세대가 비용 부담, 건강 우려, 사교 습관 변화 등을 이유로 금주 또는 절주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류업계와 바들이 사업 모델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20대가 러닝크루와 취향 모임으로 옮겨가는 흐름은 세계적 변화의 한국식 버전인 셈이다.

술집의 위축, 취향 공간의 부상

국내 상권에도 변화의 흔적은 나타난다. 기사에 제시된 국세통계포털 기준에 따르면 간이주점과 호프집 매장 수는 2021년 2월 4만 개를 넘었지만, 올해 2월 기준 2만8443개로 약 30% 감소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단순 폐업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 약화, 배달·홈술 확산, 고물가, 인건비 부담, 청년층의 소비 변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반대로 살아나는 공간도 있다. 보드게임 카페, 러닝 편집숍, 독립서점, 공유오피스형 스터디 공간, 원데이 클래스 공방, 요가·필라테스 스튜디오, 무알코올 바, 디저트 카페 등이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술을 팔지 않거나 술이 중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경험, 인증, 취향, 자기관리, 가벼운 소속감을 판다.

해외에서는 무알코올 바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디자인·호스피털리티 전문 매체는 Z세대와 웰니스 흐름을 배경으로 뉴욕 등 대도시에서 세련된 무알코올 바가 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예전의 무알코올 공간이 금주자나 회복 중인 사람을 위한 대안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분위기 있는 밤을 보내고 싶은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회식 뒤 2차로 향하던 호프집 대신, 퇴근 뒤 러닝을 하고 단백질 음료를 마시거나, 보드게임 카페에서 두 시간 놀고, 독립서점에서 북토크를 듣는 소비가 늘어나는 식이다. 밤 9시 이후의 소비가 반드시 술과 안주여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왜 20대는 밤을 바꿨나

첫 번째 이유는 건강이다. 20대에게 건강은 더 이상 중장년의 관심사가 아니다. 수면, 멘탈 관리, 체력, 피부, 체형, 운동 루틴은 일상적 자기관리의 일부가 됐다. 술자리는 당장의 즐거움을 주지만 다음 날 컨디션을 망친다. 반면 러닝이나 요가, 독서모임은 밤 시간을 쓰면서도 다음 날을 해치지 않는다. 젊은 세대가 ‘오늘의 재미’와 ‘내일의 생산성’을 동시에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비용이다. 고물가 시대에 술자리는 비싸다. 1차 식사, 2차 술집, 택시비까지 더하면 하루 저녁에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반면 동네 러닝, 독서모임, 스터디, 어드민 나이트는 비용 부담이 작다. 돈을 쓰더라도 술값보다 취미 장비, 운동복, 클래스 수강료, 책, 자기계발 콘텐츠에 쓰는 쪽을 선호한다. 소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적이 바뀐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관계 피로감이다. 20대는 연결돼 있지만 피곤하다. 메신저와 SNS로 늘 타인과 접속해 있지만, 깊고 무거운 관계에는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가볍게 만나고, 목적을 공유하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모임이 인기를 얻는다. 술자리는 종종 관계의 속도를 강제로 높인다. 반면 취향 모임은 관계의 밀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네 번째 이유는 정체성 소비다. 술자리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취향 모임은 자신을 설명한다. 러닝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 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 공예를 배우는 사람, 생산적인 밤을 보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생긴다. 20대에게 여가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자신을 보여주는 언어가 됐다.

단, ‘금주 세대’로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이 흐름을 “20대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해외 자료에서도 해석은 엇갈린다. 일부 조사와 보도는 Z세대가 술을 덜 마신다고 분석하지만, 다른 시장조사에서는 성인이 된 Z세대의 음주 경험이 늘고 있다는 결과도 나온다. 뉴욕포스트와 가디언은 IWSR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일부 국가에서 Z세대의 음주가 다시 증가하는 흐름을 소개했다.

핵심은 ‘금주’가 아니라 ‘선택적 음주’다. 젊은 세대는 술을 완전히 끊는다기보다 언제, 누구와, 얼마나, 왜 마실지를 더 따진다. 분위기에 휩쓸려 마시는 술, 상명하복식 회식, 다음 날을 망치는 과음은 기피한다. 대신 특별한 날의 한두 잔, 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저도수 음료, 무알코올 칵테일, 가벼운 홈파티는 받아들인다. 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술이 관계의 기본값이 되는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기업과 상권이 읽어야 할 신호

이 변화는 주류업계와 외식업계, 플랫폼 기업, 지역 상권 모두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주류업계에는 저도수·무알코올·기능성 음료 시장의 확대 가능성이 있다. 술을 덜 마시는 세대도 맛있는 음료와 세련된 분위기, 사회적 경험은 원한다. 영국에서 저도수 주류가 주목받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취하지 않는 술자리’ 혹은 ‘가볍게 마시는 밤’은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외식업계에는 메뉴보다 체류 방식이 중요해진다. 오래 앉아 많이 마시게 하는 공간보다, 짧게 머물러도 만족도가 높은 공간이 경쟁력을 얻는다. 러닝 후 모이는 건강식당, 독서모임이 가능한 조용한 카페, 보드게임과 간단한 식사를 결합한 공간, 공방과 커뮤니티 기능을 합친 매장 등이 그 예다.

플랫폼 기업에는 ‘지역 기반 소모임’이 새로운 성장 축이 될 수 있다. 당근의 모임 활동 사례처럼, 20대는 멀리 이동해 대형 모임에 참여하기보다 생활권 안에서 작고 빠르게 연결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는 동네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 취미 매칭, 운동 모임, 클래스 예약, 공간 대여 플랫폼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당근은 최근 보도자료 페이지에서도 동네 생활과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기능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밤문화의 반전은 ‘건전해졌다’가 아니라 ‘정교해졌다’

20대의 밤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들이 갑자기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세대가 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더 실용적이고 계산적이며 자기중심적으로 변했다. 술자리에 돈과 시간을 쓰는 대신, 몸을 관리하고 취향을 쌓고 관계를 선별하고 밀린 일을 처리한다. 즐거움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의 기준을 바꾼 것이다.

과거의 밤문화가 일탈과 해방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밤문화는 회복과 연결에 가깝다. 취하는 밤에서 깨어 있는 밤으로, 무리 지어 마시는 밤에서 작게 모여 움직이는 밤으로, 소비하는 밤에서 자신을 정리하는 밤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술자리 문화를 다시 묻는다. 친해지려면 꼭 마셔야 하는가. 스트레스를 풀려면 꼭 취해야 하는가. 밤의 경제는 꼭 술집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20대의 대답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술이 없어도 만날 수 있고, 취하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으며, 밤에도 내일을 망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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