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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HBM4 증설에 장비 주문이 움직였다…AI 호황, 이제 후공정으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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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호황의 온기가 메모리 대형주를 넘어 장비업체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4 양산 확대에 속도를 내면서 웨이퍼 테스트, 번인, 핸들러, TC본더 등 후공정 장비 발주가 연쇄적으로 늘고 있고, 특히 그동안 일본 업체 의존도가 높았던 검사장비 공급망에서는 국내 업체의 수주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HBM4 투자가 실제 설비 주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장비업계의 수주는 메모리 업체들의 투자계획보다 한 단계 더 구체적인 신호에 가깝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검사장비다. 업계에 따르면 디지털프론티어와 유니테스트가 올해 SK하이닉스로부터 확보한 HBM4 웨이퍼 테스트 관련 수주액은 합계 2839억4000만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디지털프론티어 수주액은 2321억원, 유니테스트는 518억4000만원으로 집계됐다. 과거 HBM 웨이퍼 테스트 장비는 일본 어드반테스트 중심의 공급 구조가 강했지만, HBM4 전환 과정에서 국내 업체들이 신규 공급처로 들어오면서 공급망이 다변화되는 양상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국산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HBM은 D램 여러 장을 수직으로 쌓아 만드는 구조여서 적층 수와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한 단계의 불량이 최종 제품 전체의 수율을 훼손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공정 중간중간에서 불량을 걸러내는 검사 정확도와 속도가 중요해진다. HBM4는 이전 세대보다 신호 처리와 패키징 복잡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에 테스트 공정의 비중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메모리 업체가 웨이퍼 테스트 장비를 여러 공급사에서 추가로 확보하는 것은 생산량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수율 안정화와 공급망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HBM4 투자 사이클의 선행지표는 ‘장비 발주’다


반도체 업황을 볼 때 투자자들은 메모리 가격이나 고객사 주문량,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출하 전망을 먼저 확인하지만, 실제 생산능력 확대 여부를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는 장비 발주다. 반도체 기업이 증설 계획을 발표하더라도 수요 전망이 달라지면 투자 시점을 조정할 수 있지만, 장비 계약이 체결되고 납품 일정이 잡히기 시작하면 생산라인 투자가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는 의미가 강해진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4 생산 확대를 위해 TC본더와 웨이퍼 테스트 장비 주문을 잇달아 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한미반도체와 442억원 규모의 HBM4용 ‘TC 본더 4.5 그리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장비 한 대 가격을 약 30억원 수준으로 가정하면 15대 안팎이 공급되는 규모로 추정되며, 해당 장비는 HBM 생산에서 D램 다이를 수직으로 정밀하게 쌓는 핵심 공정에 사용된다.

8월 들어서는 검사장비 주문이 다시 이어졌다. 디지털프론티어는 8월 6일 SK하이닉스와 361억원 규모의 HBM4 웨이퍼 테스터 등 검사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 기간은 연말까지다. 앞서 3월에도 962억5000만원 규모의 HBM4 웨이퍼 테스터 계약을 확보한 바 있다. 한 업체에서 연중 반복적으로 장비 주문이 발생한다는 것은 HBM4 라인이 일회성 구축이 아니라 지속적인 증설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이 때문에 장비업계 수주는 메모리 업체의 실적보다 시차를 두고 움직이는 후행지표가 아니라, 향후 생산량 확대를 미리 보여주는 선행지표에 가깝다. 장비를 먼저 들여놓아야 양산 능력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HBM은 적층이 늘수록 장비업체 몫도 커진다


HBM의 구조적 특징은 일반 D램보다 후공정 비중이 훨씬 높다는 데 있다. 일반 메모리는 웨이퍼에서 칩을 만든 뒤 패키징하는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HBM은 여러 개의 D램 다이를 얇게 가공해 수직으로 쌓고 서로 연결해야 한다.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본딩 정밀도와 검사 횟수, 열 관리, 이송 정확도까지 요구 수준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HBM4 생산 확대는 웨이퍼 투입량 증가만 의미하지 않는다. 동일한 생산량에서도 필요한 후공정 장비와 검사 장비가 늘어날 수 있고, 고성능 장비로의 교체 수요까지 동시에 발생한다.

TC본더가 대표적이다. 각 D램 다이를 정확한 위치에 쌓지 못하면 전체 패키지 수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세한 열과 압력을 제어하는 정밀도가 핵심 경쟁력이 된다. 웨이퍼 테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적층 전에 불량 다이를 최대한 걸러내야 최종 HBM 패키지의 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초기 검사 단계의 경제적 가치가 커진다.

결국 HBM 세대가 진화할수록 메모리 업체의 설비투자가 전공정에만 집중되지 않고 검사와 패키징, 본딩 장비로 더 넓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디아이는 이미 ‘수주’가 ‘실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장비 주문이 실제 실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디아이는 자회사 디지털프론티어의 HBM4 웨이퍼 테스터 매출이 늘면서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1686억원, 영업이익 39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1.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23.2% 늘어 수익성 개선폭이 훨씬 컸다.

장비산업에서는 매출 증가율보다 영업이익 증가율이 더 빠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개발비와 인력비 등 고정비 부담이 일정 수준 이상 매출에서 분산되고, 고부가 장비 비중이 높아지면서 영업 레버리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HBM4 전용 검사장비가 일반 메모리 장비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인정받는다면 매출 증가가 이익 증가로 더 크게 연결될 수 있다.

다만 상반기 실적만 보고 성장세가 자동으로 이어질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존 SK하이닉스향 주문이 순차적으로 납품을 마치면 하반기부터는 추가 수주와 삼성전자향 장비 매출이 얼마나 빨리 붙는지가 중요해진다. 실제 디아이는 삼성전자향 1300억원대 계약의 매출 인식 속도와 SK하이닉스의 추가 발주 여부가 다음 실적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장비업체의 기업가치를 볼 때 현재 수주잔고보다 다음 주문의 연속성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하는 이유다.


일본 중심 검사장비 공급망에 균열이 생겼다


이번 HBM4 투자 사이클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급망 변화다. 고성능 메모리 테스트 장비 시장은 오랫동안 일본 업체의 기술력과 점유율이 높았고, HBM에서도 어드반테스트 같은 글로벌 업체의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디지털프론티어와 유니테스트 등 국내 업체의 장비 채택을 늘리면서 공급선이 다변화되고 있다.

메모리 업체 입장에서 공급사 다변화는 가격 협상력뿐 아니라 생산 안정성과도 연결된다. 특정 업체에 장비 공급을 지나치게 의존하면 생산능력 확대 시 장비 조달 일정이 병목으로 작용할 수 있고, 기술 지원이나 부품 공급 문제도 리스크가 된다. HBM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한 곳의 장비업체가 감당할 수 있는 생산능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급사를 늘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국내 장비업체에는 중요한 기회다. 기존 D램과 낸드 검사장비에서 쌓은 경험을 HBM4로 확장하고, 실제 양산라인에서 검증된 레퍼런스를 확보하면 향후 삼성전자나 해외 메모리 업체로 고객을 넓힐 가능성도 생긴다.

다만 공급망에 들어가는 것과 장기적으로 핵심 공급사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반도체 장비는 고객사의 공정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수율과 처리속도, 유지보수 성능이 조금만 뒤처져도 다음 세대에서 공급사가 바뀔 수 있다. HBM4 수주는 출발점이지 경쟁의 끝은 아니다.


TC본더 시장도 ‘독점’보다 경쟁 구도로 움직인다


적층 장비 시장에서도 경쟁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 HBM 공급망에서 오랫동안 TC본더의 핵심 공급사 역할을 해왔고, 올해도 HBM4용 장비를 추가 수주했다. 그러나 HBM 수요가 커지면서 고객사 입장에서는 단일 공급사 의존도를 낮추려는 필요가 커지고 있고, 국내 다른 장비업체들도 본딩 시장 진입을 확대하고 있다.

이 변화는 장비업체 투자자에게 양면성을 갖는다.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지기 때문에 여러 업체가 동시에 성장할 수 있지만, 특정 장비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던 기업은 경쟁 심화로 단가와 마진이 압박받을 수 있다.

HBM 장비업체를 평가할 때 ‘HBM 시장이 성장하니 모두 수혜’라는 접근이 위험한 이유다. 고객사 수와 장비 채택 비율, 세대 전환에서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지, 신규 경쟁사 진입으로 가격이 얼마나 변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삼성전자까지 본격 증설하면 장비시장의 크기가 달라진다


현재 국내 장비업체의 수주 확대는 SK하이닉스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지만, 시장의 다음 변곡점은 삼성전자의 HBM4 생산 확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가 HBM4 양산량을 본격적으로 늘리면 검사와 본딩, 핸들러, 번인 장비까지 동시에 추가 투자가 필요하고, 공급망에 이미 들어가 있는 국내 업체들의 고객 다변화 가능성도 커진다.

장비업체 입장에서는 고객 한 곳에 의존하는 것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곳에 동시에 납품하는 것은 기업가치의 질이 다르다. 한 고객의 투자 일정이 늦어져도 다른 고객의 발주로 매출 변동성을 줄일 수 있고, 양산 검증을 두 곳에서 받으면 해외 고객을 확보할 때도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디아이 계열이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삼성전자 공급 기대가 함께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2분기 실적 개선이 확인된 이후 시장은 이미 상반기 수주보다는 삼성전자향 장비의 실제 매출 인식과 추가 물량 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장비주는 메모리주보다 실적 변동성이 더 크다


HBM 투자 확대가 장비업체에 직접적인 수혜를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장비업체의 실적 구조에는 메모리 제조사와 다른 위험이 있다. 메모리 업체는 생산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판매해 매출을 만드는 반면, 장비업체는 고객의 설비투자 시기에 매출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올해 대규모 주문을 받아 실적이 급증하더라도 내년 고객사의 증설 속도가 둔화하면 수주가 크게 줄 수 있다. 특히 특정 장비나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회사는 발주 일정이 몇 달만 늦어져도 분기 실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HBM 장비업체를 평가할 때는 당장의 매출 성장률보다 수주잔고의 질과 고객 다변화, 차세대 HBM5까지 장비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현재 HBM4에서 공급사로 채택됐더라도 다음 세대에서 공정 방식이 바뀌면 장비 수요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본딩 공정은 기술 변화 가능성이 크다. 적층 수가 늘고 칩 두께가 얇아지면서 기존 TC본더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하이브리드 본딩 등 새로운 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장비업체에는 현재 수주 규모 못지않게 다음 공정 전환에 대응할 연구개발 능력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HBM4 호황이 ‘장비 국산화’로 이어지려면 반복 수주가 필요하다


최근 검사장비 수주는 국내 반도체 장비산업에 긍정적인 변화다. 일본 업체 중심이던 고성능 테스트 장비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실제 HBM4 양산라인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수천억원 규모의 주문까지 확보했다는 점은 기술력이 일정 수준 이상 검증됐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진정한 국산화는 첫 주문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주문에서 결정된다.

초기에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일정 물량을 신규 업체에 배정할 수 있지만, 이후에도 고객사가 발주 비중을 늘린다면 장비 성능과 경제성이 실제 양산 환경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후속 주문이 줄어든다면 초기 진입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디지털프론티어와 유니테스트가 올해 확보한 2839억원 규모 HBM4 웨이퍼 테스트 장비 주문 이후 추가 물량이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투자 사이클의 확산 여부는 이제 장비업체 실적에서 확인된다


지금까지 AI 반도체 호황은 주로 엔비디아의 실적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HBM 판매 증가로 설명됐다. 그러나 산업의 투자 사이클이 실제로 넓어지고 있는지는 그 다음 단계인 장비와 소재업체의 실적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메모리 업체가 생산능력을 늘리면 장비 발주가 나오고, 장비가 설치되면 소재와 부품 사용량이 늘어난다. 이후 생산량 증가가 협력사의 매출로 이어지면서 AI 투자 효과가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된다.

최근 나타나는 웨이퍼 테스터와 TC본더 수주는 이 과정이 이미 시작됐다는 신호다.

다만 모든 장비업체가 같은 수혜를 받는 것은 아니다. HBM 공정에서 실제 병목이 발생하는 분야와 고객사가 가장 많은 투자를 집행하는 단계에 따라 업체별 수익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검사장비와 본딩장비의 주문이 먼저 늘고 있다는 것은 HBM4 생산에서 수율과 적층 정밀도가 현재 가장 중요한 투자 영역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SK하이닉스의 추가 발주가 하반기에도 이어지는지, 삼성전자의 HBM4 증설이 국내 장비업체의 실제 수주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신규 공급사가 기존 일본·글로벌 장비업체의 물량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대체하는지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확인된다면 최근의 장비 수주 증가는 한 세대의 특수에 그치지 않고 국내 반도체 후공정 산업의 구조적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HBM4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AI 반도체 호황을 확인하는 숫자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메모리 가격과 HBM 출하량만 볼 필요가 없다. 생산라인 가장 안쪽에서 어떤 장비가 몇 대 더 들어가고, 그 주문이 어느 업체로 향하는지가 다음 투자 사이클의 방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AI 호황의 첫 번째 수혜자가 GPU와 HBM 제조사였다면, 그 다음 차례는 이미 장비업체의 수주잔고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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