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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CDMO 수익성, 생산능력 숫자보다 가동률과 원액·완제 계약 구성이 먼저다

경제

백신 위탁생산의 수익성을 한 줄로 가르는 지표는 단순한 생산능력 총량이 아니라 실제 가동률과 계약이 어느 공정까지 포함하느냐다. 2026년 10월 23일 기준 공시와 기업 자료를 대조하면, 같은 백신 생산기업이라도 어떤 곳은 원액 기준 배치 수로, 어떤 곳은 완제품 기준 금액과 시간으로 생산능력과 가동률을 적는다. 이 때문에 기업별 생산능력을 그대로 옆에 놓고 우열을 가리면 오히려 실상을 놓치기 쉽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GC녹십자의 공시 방식 차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안동 L하우스의 생산능력과 가동률을 원액 기준으로 공시했다. 2024년 연간 생산능력은 572배치, 생산실적은 215배치, 가동률은 37.6%였고 2025년 1분기는 53배치 중 16배치를 생산해 가동률 30.2%를 기록했다. 반면 GC녹십자는 화순공장의 백신제제 생산을 완제품 생산기준의 가동률로 적었다. 2024년 화순공장 생산실적은 946억4500만원, 평균가동률은 76%였다. 두 회사 모두 백신 생산시설을 보유했지만, 한쪽은 원액 배치 중심이고 다른 한쪽은 완제품 기준이어서 숫자만으로는 같은 의미의 비교가 성립하지 않는다.


같은 백신 CDMO라도 계약 범위가 다르다


계약 범위의 차이는 더 직접적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5년 1분기 보고서와 2024년 사업보고서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원액과 완제 위탁생산 계약, 노바백스 백신은 위탁개발생산 계약과 기술도입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같은 코로나19 백신 수요 국면에서도 단순 생산대행, 공정개발이 포함된 CDMO, 판권과 로열티가 얽힌 라이선스 계약은 매출 인식 구조와 수익성의 위험 분포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SK바이오사이언스가 공시한 노바백스 관련 CDMO 계약은 2024년 사업보고서 기준 계약 종료 상태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원액과 완제를 분리해 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반례다. 이 회사는 2024년 5월 자사 보도자료에서 춘천 2공장의 콜레라 백신 원액 시설이 WHO 사전적격성평가를 통과해 원액 생산량을 전년보다 60% 이상 늘릴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자료에서 자사 완제 제조시설의 캐파를 넘는 물량은 GC녹십자에 위탁 제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원액 설비가 늘어도 완제 병목이 남아 있으면 전체 매출과 이익이 같은 속도로 커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가동률이 낮으면 고정비 부담이 먼저 커진다


백신 공장은 멸균, 품질관리, 밸리데이션, 냉장·냉동 보관, 규제 대응 인력 같은 고정비 비중이 높다. 그래서 수주가 끊기거나 특정 백신 계약이 종료된 뒤 설비가 비면 생산능력 자체보다 가동률 하락이 손익에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경우 2025년 1분기 연결 매출 1545억5800만원, 영업손실 151억2600만원을 기록했는데, 같은 분기 안동 L하우스 원액 가동률은 30.2%였다. 이 수치만으로 가동률 하락이 손실의 직접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형 백신 설비에서 낮은 가동률이 수익성 판단의 핵심 변수라는 점은 공시만으로도 확인된다.

반대로 가동률 수치가 높다고 바로 고수익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GC녹십자의 화순공장은 2024년 완제품 기준 평균가동률이 76%였지만, 이 수치는 독감백신과 기타 백신제제를 합산한 완제품 생산 기준이다. 특정 위탁생산 계약의 채산성을 따지려면 원액 생산을 외부에서 받는지, 충전·포장만 수행하는지, 계절성이 큰 독감백신 비중이 얼마인지까지 더 봐야 한다. 완제 위주의 충전·포장 계약은 공정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 있지만 고객사 원액 공급 일정과 품목별 전환 비용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숫자보다 기준이다


결국 백신 CDMO를 비교할 때는 생산능력이 몇 배치인지, 몇 도즈인지보다 먼저 세 가지를 봐야 한다. 첫째, 공시 수치가 원액 기준인지 완제품 기준인지다. 둘째, 계약이 단순 CMO인지 공정개발이 포함된 CDMO인지, 또는 라이선스와 판권이 결합된 구조인지다. 셋째, 가동률 산식에 예방정비 기간, 품목 전환 기간, 대표품목 기준이 어떻게 반영됐는지다. 이 기준이 서로 다르면 생산능력 숫자는 커 보여도 실제 수익성이나 공급 안정성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기초 의약품 부족 문제를 따질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생산 병목은 공장 전체가 아니라 원액, 완제, 포장, 규제 승인 중 한 단계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백신 CDMO의 수익성과 공급능력을 함께 보려면 설비 총량보다 어느 공정이 비어 있고 어느 공정이 막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자료: SK바이오사이언스, 분기보고서(2025.03), 사업보고서(2024.12); GC녹십자, 사업보고서(2024.12); 유바이오로직스, 보도자료 ‘유바이오로직스, WHO로부터 제2공장도 콜레라 백신 제조 승인'(2024.05.17); 유바이오로직스, 주주총회소집공고(2025.12) 경영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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