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다뷰

시장의 변화와 미래를 읽는 경제지, 미래다뷰

전기차 다음은 폐배터리다…이제 ‘물량의 시간’이 온다

산업

폐배터리는 몇 년 전부터 미래 산업으로 불렸다. 전기차가 빠르게 늘어나면 언젠가는 수명을 다한 배터리가 대량으로 나오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리튬과 니켈, 코발트 같은 핵심 광물을 다시 회수하는 시장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랐다.

하지만 기대만큼 시장이 빠르게 커지지는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전기차 판매량은 늘었지만 실제로 폐차되거나 배터리 교체가 필요한 차량은 많지 않았고, 재활용업체가 처리할 수 있는 사용후 배터리 물량도 제한적이었다. 여기에 리튬과 니켈 가격이 떨어지면서 배터리를 분해해 금속을 회수하는 사업의 경제성까지 낮아지자 “시장 규모는 크다는데 실제로 돈은 언제 버느냐”는 의문도 커졌다.

2026년 들어서는 조금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사용후 배터리의 거래와 이력을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기 시작했고, 재활용 원료로 인정되는 범위를 넓히는 제도 개선도 추진되고 있다. 전기차 보급 초기에 판매된 차량들이 점차 노후화하면서 앞으로 회수되는 배터리 물량 역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폐배터리 산업이 이제야 기대의 영역에서 실제 산업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전기차가 늘었다고 폐배터리가 바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폐배터리 시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전기차 판매와 폐배터리 발생 사이에 긴 시간차가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전기차를 새로 판매했다고 해서 배터리가 바로 재활용시장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당 기간 차량에서 사용된 뒤 사고나 성능 저하, 폐차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4년 사용후 배터리 산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내 전기차 보급이 당시 약 60만대 수준이었고, 2030년에는 사용후 배터리 배출량이 연간 10만개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적으로도 전기차 폐차 대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이 2030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전망을 뒤집어 보면 폐배터리 산업이 지금까지 왜 생각보다 작았는지도 설명된다. 시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직 차량에 장착돼 있는 배터리가 많았던 것이다.

결국 이 산업은 전기차 보급보다 몇 년 늦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재활용업체가 먼저 맞닥뜨린 것은 ‘원료 부족’이었다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은 설비만 만든다고 돌아가는 산업이 아니다. 계속해서 처리할 배터리가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 물량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배터리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량품과 스크랩, 해외에서 들여오는 블랙매스 같은 중간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폐배터리와 공정스크랩 등 재활용 가능 자원의 안정적인 수급을 중요한 정책 과제로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2026년부터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대상 전기·전자제품을 기존 50종에서 전 품목으로 확대해 폐제품 안에 들어 있는 배터리의 회수율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폐배터리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 부족보다 ‘재활용할 것이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었던 셈이다.


8월 들어 제도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6년 8월은 사용후 배터리 산업에서 제도 변화가 집중적으로 나타난 시기다.

산업통상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8월 7일 사용후 배터리 정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그동안 부처별로 나뉘어 있던 관리체계를 정비하기로 했다. 핵심은 배터리가 제조돼 차량에 장착된 뒤 회수되고 재사용·재제조·재활용되는 과정까지 정보를 연결하는 거래·이력 관리 플랫폼 구축이다.

배터리 산업에서는 이력 정보가 특히 중요하다. 같은 차종에서 나온 배터리라도 사용기간과 충전횟수, 사고 여부, 잔존성능이 다르면 이후 활용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능이 충분히 남아 있다면 에너지저장장치나 산업용 전원으로 재사용할 수 있고, 상태가 좋지 않다면 분해해 리튬과 니켈 등 금속을 회수하는 재활용 단계로 넘어간다.

결국 배터리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거래가격도 형성될 수 있다.


‘폐기물’에서 ‘원료’로 보는 기준도 넓어진다


8월 20일에는 폐이차전지 재활용 기준을 완화하는 제도 개선도 발표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재활용 과정에서 원료물질로 인정되는 범위를 확대하고, 폐배터리와 관련 원료의 운송·보관 기준도 개선하는 내용의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친환경자동차 핵심부품과 재생에너지 설비까지 거점수거센터가 취급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 변화의 의미는 단순한 규제 완화보다 크다.

폐배터리를 계속 ‘처리해야 할 폐기물’로만 관리하면 운송과 보관, 수출입, 가공 과정마다 규제가 붙는다. 반대로 일정한 품질과 기준을 충족한 물질을 산업용 원료로 인정하면 재활용업체가 보다 자유롭게 거래하고 사용할 수 있다.

폐배터리 산업이 본격적으로 커지려면 결국 배터리에서 나온 물질이 다시 양극재와 배터리 원료로 돌아가는 시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폐배터리를 갈면 바로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폐배터리 산업이 성장한다고 해서 모든 재활용업체의 수익성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를 재활용하려면 수거와 운송, 방전, 해체, 파쇄 과정을 거쳐 ‘블랙매스’라고 불리는 분말 형태의 중간재를 만든 뒤 여기서 리튬과 니켈, 코발트 등을 다시 추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상당한 설비투자와 에너지, 약품 비용이 들어간다.

사업성은 회수한 금속을 얼마에 팔 수 있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리튬이나 니켈 가격이 높을 때는 같은 양의 폐배터리를 처리해도 얻는 가치가 커지지만, 원료가격이 내려가면 수익성도 떨어진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리튬 가격이 과거 고점에서 크게 조정을 받으면서 재활용업체 입장에서는 값싼 신규 원료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이 때문에 앞으로 폐배터리 시장을 볼 때는 처리 물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만큼 회수율과 공정 원가, 핵심 광물 가격이 중요하다.


LFP 배터리가 많아질수록 재활용 공식도 달라진다


배터리 화학구조 변화도 변수다.

과거 국내 배터리 산업은 니켈·코발트·망간을 사용하는 삼원계 배터리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니켈과 코발트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기 때문에 재활용을 통해 회수할 경제적 유인이 컸다.

반면 최근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에서 빠르게 늘고 있는 LFP 배터리는 철과 인산을 사용하고 코발트와 니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원료가격만 놓고 보면 삼원계보다 재활용 가치가 낮을 수 있다.

정부가 올해 배터리 산업 전략에서 LFP 배터리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자동 해체와 블랙매스 생산, 탄산리튬·고순도 인산철 회수기술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변화와 관련이 있다.

앞으로 폐배터리 산업은 단순히 배터리를 많이 확보하는 경쟁이 아니라, 화학구조가 다른 배터리에서도 경제성 있게 원료를 뽑아낼 수 있는 기술 경쟁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재사용과 재활용은 같은 시장이 아니다


사용후 배터리가 모두 곧바로 분쇄되는 것도 아니다.

배터리 성능이 충분히 남아 있다면 자동차에서는 더 이상 쓰기 어렵더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저장장치나 농기계, 산업용 전원처럼 자동차보다 요구 성능이 낮은 분야에 다시 사용하는 방식이다.

정부 역시 사용후 배터리를 농기계나 ESS 등에 적용하는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재사용 배터리의 안전성 검사 비용을 낮추기 위해 소프트웨어 기반 검사기관을 1곳에서 6곳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방식 검사는 완전 충·방전 방식보다 검사 비용을 약 5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따라서 앞으로 시장이 커질수록 배터리는 ‘재사용할 것’과 ‘재활용할 것’을 먼저 구분하는 과정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성능평가 기술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포항에는 아예 ‘배터리 순환 산업단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가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전과 다른 부분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경북 포항 블루밸리산업단지에 국가배터리순환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사용후 배터리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을 모집하고 있다.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실증시설과 연구 인프라를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올해 6월에는 이 클러스터를 활용한 기업지원 프로그램도 시작됐다. 사용후 배터리의 재사용·재활용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K-Battery 혁신바우처’와 스케일업 프로그램이 포함됐고, 혁신바우처는 약 1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이런 움직임은 폐배터리 산업이 개별 기업의 공장 증설을 넘어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성일하이텍·에코프로·포스코 계열이 노리는 것은 결국 ‘도시 광산’


폐배터리 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버려진 배터리를 처리하는 데 있지 않다. 해외 광산에 의존하던 리튬과 니켈, 코발트를 국내에서 다시 확보하는 데 있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셀과 소재 제조 경쟁력은 높지만 핵심 광물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한다. 공급망이 흔들리거나 특정 국가의 수출통제가 강화되면 배터리 제조원가와 생산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성일하이텍을 비롯한 전문 재활용기업과 에코프로, 포스코 계열 등이 폐배터리 재활용에 투자하는 이유도 결국 사용후 배터리를 하나의 ‘도시 광산’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번 수입한 광물을 배터리 제조와 사용 이후 다시 회수해 공급망 안으로 넣을 수 있다면 원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정부도 2026년 배터리 산업 전략에서 사용후 배터리 해체·분리와 재활용 공정, 핵심광물 회수율 개선을 위한 기술개발에 2028년까지 450억원을 투입하고, 올해부터 재자원화 시설·장비 도입도 지원하기로 했다.


규제가 재활용 시장을 키우는 시대도 온다


폐배터리 시장이 커지는 또 다른 이유는 해외 환경규제다.

유럽연합은 배터리 규제를 강화하면서 앞으로 새 배터리에 일정 비율 이상의 재생원료를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배터리가 어디에서 생산됐는지뿐 아니라 어떤 원료를 사용했고 얼마나 재활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보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에 대응해 재생원료 생산인증과 사용인증 체계를 2027년까지 마련하고, 신규 배터리에 재생원료 함유율 목표를 적용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재활용 원료는 단순히 광물 가격이 높을 때만 쓰는 대체재가 아니라 해외시장에 배터리를 판매하기 위해 필요한 원료가 될 수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의 경제성이 원자재 가격뿐 아니라 규제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진짜 시장이 커질수록 기업 간 격차도 벌어진다


폐배터리 산업이 성장한다는 전망과 모든 기업이 돈을 번다는 이야기는 구분해야 한다.

앞으로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공장을 지었느냐보다 충분한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리튬과 니켈 등의 회수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낮은 원가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배터리 물량이 늘어나도 원료가격이 낮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으며, 반대로 높은 회수율과 장기 공급계약을 확보한 기업은 같은 시장에서도 더 높은 마진을 낼 수 있다.

LFP 비중 확대처럼 배터리 종류가 달라지는 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결국 폐배터리 산업의 다음 단계는 ‘시장 규모가 얼마나 커질까’라는 전망보다, 실제로 어느 기업이 그 물량을 확보하고 돈이 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느냐를 확인하는 단계에 가깝다.


폐배터리 시장의 진짜 출발은 ‘버릴 배터리가 많아지는 순간’부터다


폐배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래 산업으로 불렸다. 다만 그동안에는 기술과 공장은 준비됐지만 정작 처리할 사용후 배터리가 충분하지 않았고, 원료가격 변동과 제도 미비까지 겹치면서 기대가 실적보다 앞서는 시간이 길었다.

2026년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생산자책임재활용 대상이 확대되고, 배터리 거래·이력 관리 플랫폼 구축이 시작됐으며, 재활용 원료 인정범위와 운송·보관 기준도 정비되고 있다. 포항에는 국가배터리순환클러스터가 만들어졌고, 향후 전기차 폐차 증가와 함께 실제 회수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정부 전망대로 2030년 국내에서 연간 10만개 이상의 사용후 배터리가 배출되는 시기가 온다면 지금까지와는 시장의 규모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폐배터리가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배터리를 얼마에 확보하고, 얼마나 많은 금속을 낮은 비용으로 다시 뽑아내며, 그 원료를 다시 배터리 공급망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산업의 승자를 결정하게 된다.

전기차 산업이 자동차 판매에서 시작됐다면 폐배터리 산업은 그 자동차가 오래 달린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그 시간이 이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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