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재사용 확대의 경제성, 보증금보다 회수율·세척·표준화가 갈랐다
국내에서 재사용 유리병의 경제성은 이미 일부 숫자로 확인된다. 환경부는 2016년 설명자료에서 소주병을 한 번만 쓰는 1회용 유리병의 병당 비용을 143원, 8회 재사용하는 보증금병의 비용을 64원으로 제시했다. 세척비를 포함해도 병당 약 80원의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 계산은 모든 병과 모든 기업에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 손익을 가르는 변수는 보증금 액수 자체보다 회수율, 세척 뒤 다시 쓰는 횟수, 표준용기 사용 여부, 지역별 회수망 같은 운영 조건에 더 가깝다.
이 점은 “우리나라도 일회용 음료용기 재활용 보상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제도 도입 자체는 이미 일부 진행 중이지만, 유리병 재사용 모델의 경제성을 다른 용기에 그대로 옮겨오기는 어렵다. 유리병은 회수 뒤 세척해 다시 쓰는 구조이고, 1회용 컵 등은 회수 뒤 재활용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보증금은 출발점일 뿐, 실제 수익성은 회전횟수가 만든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 따르면 2026년 현재 빈용기 보증금제도는 소주, 맥주, 청량음료 등 재사용 병에 적용되고 있다. 대상 사업자는 12곳, 대상 제품은 100종 이상이다. 보증금은 용량별로 70원, 100원, 130원, 350원으로 나뉘고, 생산자는 별도로 도소매 회수망에 취급수수료를 부담한다. 제도 구조만 놓고 보면 소비자가 보증금을 내고 돌려받는 장치와 생산자가 회수 비용을 부담하는 장치가 동시에 돌아가야 재사용이 성립한다.
회수 실적은 높다. 같은 센터 자료를 보면 2025년 빈용기 출고량은 37억4200만병, 회수량은 36억8400만병으로 전체 회수율은 98.5%였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소매점에 반환한 가정용 직접 반환율은 68.7%로 전체 회수율과는 다른 지표다. 업소 회수, 유통망 회수까지 합치면 전체 회수율은 높지만, 가정에서 깨끗하게 돌아오는 병의 비중이 더 높아질수록 선별·파손 부담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결국 병당 경제성은 보증금을 올리느냐보다 회수된 병이 얼마나 깨끗하게, 얼마나 자주 다시 생산라인에 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환경부가 제시한 8회 재사용 기준도 이 전제가 성립할 때 가능한 숫자다. 반대로 회수율이 떨어지거나 세척 뒤 재사용 가능한 병 비율이 낮아지면 신병 투입 비중이 올라가고, 유리병 재사용의 원가 우위도 약해진다.
기업별 차이는 병 모양보다 회수망에서 벌어진다
기업별 차이는 병 보증금 액수보다 병 규격과 회수 체계에서 먼저 벌어진다. 현행 시행규칙은 표준용기를 등록해 사용하도록 하고, 표준용기가 아닌 용기를 쓰는 경우에는 생산·회수·재사용 계획을 별도로 세워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한다. 다시 말해 병 규격이 공용화돼 있을수록 회수·선별·재투입 비용을 낮추기 쉽고, 비표준 병일수록 자사 전용 회수체계를 더 많이 떠안게 된다.
소매점 안내자료도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회수된 빈용기는 제조사별, 용량별, 종류별로 분류해 반환해야 하고, 수입맥주병 같은 비대상 병은 제도 바깥에 있다. 같은 맥주병처럼 보여도 수입맥주는 보증금 대상이 아니고, 국내에서 생산되는 버드와이저는 대상에 포함된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겉보기 재질이 같은 유리병이라도 물류거리와 회수권역, 국내 재사용 체계 편입 여부가 경제성을 갈라놓는 반례다.
환경부가 과거 설명자료에서 수입주류가 보증금 제도를 활용해 재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물류비용을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유리병 재사용은 병 자체가 아니라 병이 되돌아오는 거리와 방식까지 포함한 사업이다. 국내 대형 주류사처럼 지역별 회수망과 세척·재충전 라인이 갖춰진 곳과, 수입병이나 비표준 병 중심 제품은 출발선이 다르다.
다만 공시만으로 기업별 병당 세척비나 실제 회전횟수를 정밀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장사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에는 물류비, 포장 관련 비용, 유형자산과 재고자산 정보는 담기지만 병당 세척 단가나 계약별 회수 조건이 독립 항목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재 공개 자료로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제도 전체의 평균 구조와 일부 정부 추정치이지, 개별 회사별 병당 손익 순위는 아니다.
일회용 음료용기 보상제는 가능하지만, 유리병식 경제성을 그대로 기대하긴 어렵다
일회용 음료용기 보상 시스템은 이미 일부 도입돼 있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 따르면 1회용 컵 보증금제는 컵당 300원을 부과하고 반납 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2022년 12월 2일부터 세종과 제주 선도지역에서 시행 중이다. 환경부는 2025년 주요정책 추진계획에서 전국 확대 기조는 유지하되, 놀이공원·카페거리·대형 프랜차이즈 등 지역별 여건에 맞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운영 방식도 유리병과는 다르게 가고 있다. 2025년에는 서울랜드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에버랜드에서는 무보증금 다회용컵 같은 맞춤형 모델이 추진됐다. 이는 음료용기 정책이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하기보다, 공간 특성과 회수 편의, 세척·재활용 비용 구조에 맞춰 여러 방식으로 나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심은 유리병 재사용의 경제성을 해석할 때 ‘보증금만 붙이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유리병은 여러 번 돌려 쓸수록 신병 제조비를 아낄 수 있는 구조지만, 1회용 컵이나 다른 1회용 음료용기는 회수 후 재사용이 아니라 재활용 중심인 경우가 많다. 회수 보상 시스템은 도입할 수 있어도, 세척 후 반복 사용에서 나오는 유리병식 원가 절감 효과까지 같은 수준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국내에서 유리병 재사용 확대의 경제성을 판단하려면 세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첫째, 회수율이 아니라 재사용 가능한 상태로 돌아오는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 둘째, 세척과 선별 비용이 신병 제조비 절감분보다 낮은지, 셋째, 병 규격과 회수권역이 표준화돼 있는지다. 이 조건이 맞는 품목과 기업에서는 재사용 확대가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비표준 병이나 장거리 물류 중심 제품까지 같은 계산을 적용하면 오히려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자료: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빈용기 제도안내(2026 조회);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소매점 빈용기 반환 관련 안내자료(2025.02.13); 기후에너지환경부, 빈용기보증금 제도, 원가절감에 유리한 업체 스스로 선택(2016.12.14);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시행 2026.06.22); 기후에너지환경부, 2025년 환경부 주요정책 추진계획(2025.01.10);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1회용 컵 제도안내(2026 조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