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준공 못 지키면 누가 갚나…공시가 보여준 시공사·신탁사·대주단의 다른 책임
책임준공 약정이 깨졌다고 해서 부동산 PF 대출을 한 주체가 일률적으로 대신 갚는 구조는 아니다. 최근 사업보고서와 소송 공시를 대조해보면, 1차 상환의무는 대체로 차주인 시행사나 PF 법인에 남아 있고, 시공사는 계약에 따라 책임준공 의무만 지는 경우와 미이행 시 조건부 채무인수까지 약정한 경우가 갈린다. 신탁사는 관리형 토지신탁이라는 이름이 같아도 신탁재산 범위 내 책임인지, 별도 자금집행·손해배상 의무까지 다투는지에 따라 부담 범위가 달라진다.
이 때문에 투자자나 사업 참여자가 확인해야 할 핵심은 ‘누가 사업을 운영하느냐’보다 ‘어떤 문구로 위험을 나눴느냐’에 가깝다. 같은 책임준공 사업이라도 공시에는 책임준공, 연대보증, 자금보충, 조건부 채무인수, 신탁재산 한도 책임이 서로 다른 층위로 섞여 나타난다. 약정이 어느 단계까지 중첩됐는지에 따라 손실이 실제 현금 유출로 바뀌는 순서도 달라진다.
시공사 공시는 ‘준공 의무’와 ‘채무 인수’를 분리해 적고 있다
에이치디씨의 2024년 3월 제출 사업보고서(2023년 말 기준)는 이 차이를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서 회사는 PF 관련 신용보강 총액을 3조965억2800만원으로 적시하면서, 별도로 ‘책임준공 및 미이행시 조건부 채무인수’, ‘연대보증·자금보충처 책임준공’ 같은 항목을 나눠 공시했다. 단순히 공사를 마쳐야 한다는 약정과, 그 의무를 못 지켰을 때 대출채무를 떠안을 수 있는 약정을 구분해 보여준 것이다.
같은 보고서에서 기타사업 6건의 ‘책임준공 및 미이행시 조건부 채무인수’ 보증한도는 1조2266억2800만원, 대출잔액은 7068억2800만원으로 제시됐다. 반면 연대보증이나 자금보충이 함께 얹힌 사업은 또 다른 표로 관리된다. 책임준공 약정이 있어도 모두 같은 위험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 중요한 대목은 약정 위반이 실제 채무 인수로 옮겨간 사례다. 에이치디씨는 같은 보고서에서 가유지구 물류센터 개발사업 PF 원리금 채무와 관련해 시공사의 책임준공 의무 미이행으로 995억원의 채무인수가 발생했다고 적었다. 책임준공이 추상적 의무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 계약에서는 즉시 금전채무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신탁사는 같은 업종 안에서도 보수적 수주와 손실 현실화가 갈렸다
신탁사 쪽에서는 같은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이라도 회사별 대응이 엇갈린다. 한국토지신탁의 2026년 3월 제출 사업보고서(2025년 말 기준)는 부동산 경기 둔화와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시장 위축의 영향으로 2025년 별도 기준 수수료수익이 978억8000만원으로 전년보다 24.7% 줄었다고 밝혔다. 다만 회사는 책임준공형 시장이 과열됐던 시기에 무리한 확장보다 선별적 수주를 유지했다고 설명했고, 2025년 수주실적은 2768억원으로 전년 대비 86.9% 늘었다고 적었다.
이 공시는 수익 감소가 곧바로 부실 확대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험이 큰 책임준공형 사업을 줄이면 단기 수수료는 줄 수 있지만, 향후 대손이나 대체시공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업보고서만으로 각 사업장의 잠재손실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어, 실제 위험도는 개별 사업장 주석과 후속 공시를 함께 봐야 한다.
반대로 교보자산신탁은 2025년 12월 한국신용평가가 공개한 등급 논리에서 책임준공형 관리형 개발신탁 관련 대손부담이 지속되면서 2025년 3분기 누적 71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제시됐다. 같은 자료에는 2024년 4분기 유상증자 1000억원과 신종자본증권 2000억원 발행이 이어졌고, 2021년 이후 모회사 지원에 의한 자본확충 규모가 6000억원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책임준공형 사업의 부담이 실제 손익과 자본정책으로 번졌다는 의미다.
결국 신탁사의 위험은 ‘책준 사업을 했느냐’보다 얼마나 공격적으로 수주했는지, 지연 사업장을 얼마나 오래 안고 있는지, 손실을 충당부채나 대손으로 얼마나 빨리 반영했는지에 따라 갈린다. 업종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보는 접근은 기업별 차이를 놓치기 쉽다.
소송 공시는 책임 경계가 계약서 밖에서 다시 다퉈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책임준공 약정의 부담이 누구에게 최종 귀속되는지는 소송 공시에서 더 복잡하게 드러난다. 한국거래소 KIND에 올라온 2026년 5월 4일자 다올투자증권의 소송 공시에 따르면, 원고는 미지급 공사대금 상당액을 두고 대주단에 채무불이행·손해배상·부당이득 법리로 반환을 청구했고, 예비적으로는 신한자산신탁에 대해 신탁재산 범위 내 공사대금 지급을 구했다. 시행사, 대리금융기관, 신탁사를 동시에 겨냥한 구조다.
이 공시는 책임준공 약정이 무너졌을 때 곧바로 한 주체가 전부 상환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대금과 PF 원리금, 신탁재산 집행의무가 서로 다른 법률관계로 나뉘어 다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신탁사를 상대로 한 청구가 ‘신탁재산의 범위 내’인지, 별도의 손해배상 책임까지 묻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앞서 2024년 공시된 진흥기업의 소송 관련 자료에서도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공사대금 관련 선행소송 판결에 따른 수익금 청구가 제기된 바 있다. 개별 사건의 승패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책임준공형 사업의 분쟁이 시공사와 시행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신탁사와 대주단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은 확인된다.
결국 봐야 할 것은 네 가지다
책임준공 약정을 둘러싼 위험을 읽을 때는 네 가지를 나눠 봐야 한다. 첫째, 차주가 누구인지다. PF 특수목적법인인지, 시행사 본체인지에 따라 1차 상환 구조가 달라진다. 둘째, 시공사가 책임준공만 약정했는지, 미이행시 조건부 채무인수나 손해배상 의무까지 얹었는지다. 셋째, 신탁사가 단순 관리형 수탁자인지, 자금집행과 공사관리 의무를 어느 수준까지 계약서에 넣었는지다. 넷째, 이미 충당부채나 소송으로 현실화된 사업장이 있는지다.
이 기준으로 보면 ‘책임준공을 못 지키면 누가 갚느냐’는 질문의 답은 하나가 아니다. 차주가 먼저 갚되, 계약에 따라 시공사의 채무인수나 손해배상이 뒤따를 수 있고, 신탁사는 신탁재산 한도 책임에 머무르기도 하고 별도 분쟁의 피고가 되기도 한다. 결국 기업별 차이는 사업보고서 주석, PF 우발채무 표, 소송 공시를 함께 읽어야 드러난다. 부동산 시장의 가격 안정 여부와 별개로, 책임준공 약정은 사업 실패의 비용을 누가 얼마만큼 떠안을지 정하는 장치라는 점부터 구분해서 봐야 한다.
자료: 금융감독원, 2024년 사업보고서 점검 결과 및 공시설명회 개최(2025.7.1); 한국금융연구원, 신탁회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 부동산 PF 관련 리스크(2024.7.20); 에이치디씨㈜, 사업보고서(2024.3.21 제출, 2023.12.31 기준); 한국토지신탁, 사업보고서(2026.3.18 제출, 2025.12.31 기준); 한국신용평가, 교보자산신탁(주) 주요 등급논리(2025.12.5); 한국거래소 KIND, 소송등의제기ㆍ신청(일정금액 이상의 청구)(다올투자증권, 2026.5.4); 한국거래소 KIND, 소송 관련 공시(진흥기업, 2024.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