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대금 연동제 2년, 계약서 열어보니 원가 반영률·조정주기 제각각
납품대금 연동제는 2024년 1월 1일 시행됐지만,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이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지는 법 시행 자체보다 계약서 문구에 더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과 시행령은 주요 원재료, 기준지표, 조정요건, 산식, 조정주기와 반영일 등을 약정서에 적도록 했지만, 실제 연동계약은 업종과 거래구조에 따라 반영비율, 비교지표, 조정 시점이 크게 달랐다. 같은 원재료 가격 상승이라도 어떤 계약은 다음 달 바로 대금에 반영되고, 어떤 계약은 분기별로만 조정되거나 아예 조정요건을 넘지 못해 단가가 그대로 유지되는 구조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차이는 제도 바깥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탁기업 1만2천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4013개사 중 주요 원재료가 있다고 답한 곳은 469개사였다. 이 가운데 예외 사유를 뺀 연동제 적용 대상 거래가 있는 기업은 411개사였고, 이 중 연동약정을 체결한 기업은 272개사, 미연동약정을 체결한 기업은 35개사로 집계됐다. 적용 대상 거래가 있는데도 약정을 맺지 못한 104개사에서는 가장 큰 이유로 제도 이해 부족이 꼽혔다. 제도가 시행됐다고 해서 현장 계약이 곧바로 표준화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법은 공통 틀만 정했다, 핵심은 기준지표와 조정주기
현행 상생협력법과 시행령은 연동계약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항목을 비교적 촘촘하게 정하고 있다. 무엇을 연동 대상으로 삼는지, 어떤 원재료를 주요 원재료로 볼 것인지, 가격이 얼마나 변하면 조정할 것인지, 어떤 지표를 쓸 것인지, 언제 비교하고 언제 반영할 것인지를 약정서에 써야 한다. 주요 원재료는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재료를 뜻하고, 조정요건은 당사자가 10% 이내 범위에서 협의해 정할 수 있다. 시행령은 거래 쪼개기나 사실상 연동을 회피하는 방식도 금지 대상으로 적시했다.
문제는 이 공통 틀 안에서도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공공지표를 쓰는지, 실구매가를 쓰는지에 따라 변동 폭이 달라지고, 월 단위 조정인지 분기 단위 조정인지에 따라 반영 속도도 달라진다. 반영비율을 100%로 둘지 50%로 둘지도 계약으로 정할 수 있다. 결국 제도 유무보다 계약 설계가 실제 원가 부담의 이전 범위를 결정하는 구조다.
실제 사례 보니 월별 즉시 반영도, 분기별 부분 반영도 있었다
중기부가 2025년 8월 공개한 연동약정 사례집은 이런 차이를 숫자로 보여준다. 이 사례집은 2024년 연동약정 컨설팅 987건 가운데 14건을 골라 업종별 계약 구조를 정리한 것이다. 여기서 확인되는 공통점은 연동제가 일률적 공식이 아니라 업종별 원가 구조를 반영한 개별 약정이라는 점이다.
유량계 제조 사례는 대표적인 월별 조정형 계약이다. 이 계약은 주요 원재료를 계측기기 센서로 잡고, 주거래처 실구매가격을 기준지표로 썼다. 조정요건은 플러스마이너스 3%, 조정주기는 1개월, 반영비율은 50%였다. 2024년 9월 납품단가 45만원은 10월에는 변동률 2.89%로 요건에 미달해 그대로 유지됐지만, 11월에는 10월 센서 가격이 기준 대비 11.54% 올라 단가가 45만3천원으로, 12월에는 다시 45만6500원으로 조정됐다. 원재료가 올라도 전액 반영이 아니라 절반만 반영되는 구조여서 수탁기업의 부담이 일부만 이전된 셈이다.
반면 건설업 사례는 두 개 원재료를 함께 반영한 분기 조정형 계약이다. 토공공사 계약에서 시멘트와 플라이애시를 각각 납품대금의 15% 비중으로 잡고, 한국물가정보와 한국물가협회의 가격지수를 사용했다. 조정요건은 플러스마이너스 3%, 조정주기는 3개월, 반영비율은 100%였다. 2024년 4월 월 납품대금 10억원은 7월 10억450만원으로, 10월에는 10억2077만5천원으로 올랐다. 월별 즉시 반영은 아니지만, 조정이 발생하면 해당 원재료 비중만큼은 전부 반영되는 구조다.
화장품 용기 제조 사례는 또 다른 반례를 보여준다. 이 계약은 ABS수지를 주요 원재료로 정하고, 한국수입협회의 국제원자재가격정보와 3개월 평균 환율을 함께 지표로 썼다. 조정요건은 플러스마이너스 5%, 조정주기는 3개월, 반영비율은 100%였다. 2024년 1분기에는 ABS수지 가격과 환율이 함께 올라 1000원짜리 납품단가가 1015원으로 조정됐지만, 2분기와 3분기에는 지표 변동이 있었어도 요건에 미달해 단가가 그대로 유지됐다. 국제시세와 환율을 모두 반영하는 구조여도 조정 문턱이 높으면 실제 조정 빈도는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선박 부품 사례에서는 민감도가 더 높았다. 이 계약은 알루미늄 가격에 런던금속거래소 현물가와 환율을 결합했고, 조정요건을 플러스마이너스 1%, 조정주기를 1개월로 잡았다. 원재료 비중도 93%로 높아 2024년 1월 2000원이던 단가는 한 달 만에 2077원으로 조정됐다. 같은 알루미늄을 써도 어떤 계약은 생산자물가지수와 분기 조정을 택하고, 어떤 계약은 국제시세와 환율을 얹어 월별로 움직이는 셈이다.
중소기업 부담 완화 여부, 법 도입보다 계약 설계와 입증 역량에 달려
이 사례들을 종합하면 납품대금 연동제 도입 이후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이 줄었는지에 대한 답은 일괄적으로 내리기 어렵다. 조정요건이 낮고 주기가 짧고 반영비율이 높을수록 원가 전가 속도는 빨라진다. 반대로 실구매가 대신 완만한 공공지표를 쓰거나, 분기 평균과 높은 조정 문턱을 택하면 원재료 변동이 있어도 납품단가가 장기간 그대로일 수 있다. 법이 만든 것은 연동의무의 틀이고, 실제 부담 이전은 계약서 안의 숫자가 정한다는 얘기다.
현장에서는 원가 공개 부담도 여전히 변수다. 2024년 실태조사에서 미연동약정을 체결한 수탁기업들이 가장 많이 든 이유는 위탁기업에 원가 정보를 제공하기 원치 않는다는 응답이었다. 정부가 제3의 전문기관을 통한 주요 원재료 확인서 발급과 컨설팅을 확대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중기부는 2024년 말 지침을 제정해 성실한 협의 의무와 탈법행위 판단기준을 명확히 했고, 2026년부터는 에너지 경비까지 연동 대상에 포함하는 제도 확대도 예정하고 있다.
다만 현재 공개 자료만으로 개별 기업의 손익 개선 효과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공시 자료에는 실제 납품계약의 지표 선택, 반영비율, 원재료 비중이 세세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같은 기업 안에서도 사업부와 고객사별 계약 구조가 다를 수 있어서다. 지금 단계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하나다. 납품대금 연동제가 도입됐다고 해서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이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지수를 쓰고 몇 달마다 조정하며 변동분을 몇 퍼센트 반영하느냐에 따라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결과는 크게 갈린다.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2026.9.29 시행)·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2026.7.1 시행)·납품대금 연동에 관한 지침(2024.12.31); 중소벤처기업부, 중기부, 납품대금 연동제 실태조사 결과 발표(2025.2.17); 중소벤처기업부, 납품대금 연동제, 어려우신가요? 연동약정 사례집을 참고하세요!(2025.9.11); 중소벤처기업부, 납품대금 연동약정 사례집(202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