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국내투자 줄고 해외증설 늘어도…현대차·삼성이 보여준 생산기지 선택의 손익계산
국내 제조업의 미래를 한 문장으로 단정하긴 어렵다. 실제 기업 공시와 공식 발표를 보면, 생산기지 이동은 단순한 ‘탈한국’이라기보다 어디서 팔고 어디서 조달하며 어떤 규제를 피하거나 활용할지에 따라 갈린다. 해외 증설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유를 인건비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동시에 국내 거점을 접는 대신 고부가 공정과 연구개발, 차세대 생산라인을 한국에 남기거나 늘리는 사례도 함께 확인된다.
핵심은 세 가지다. 대규모 설비투자는 판매가 큰 시장 가까이 붙는 경향이 강해졌고, 인건비는 중요하지만 단독 결정변수는 아니며, 국내 공장이 줄어드는 곳과 오히려 새 역할을 맡는 곳이 업종별로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의 최근 투자 흐름은 이 구도를 비교하기에 적합한 사례다.
현대차의 미국 증설, 값싼 노동보다 시장 접근의 계산
현대차의 최근 투자 방향은 해외 증설의 동력이 무엇인지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준다. 현대차는 2025년 미국 시장에서 연간 도매 판매 100만6613대를 기록해 창사 이후 처음으로 100만 대를 넘겼다. 판매가 큰 시장에서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는 것은 운송비와 환율, 통상 변수, 현지 조달 요건을 동시에 다루는 방법이 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5년 3월 미국에 2025년부터 2028년까지 2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이 가운데 90억 달러는 미국 연간 생산능력 120만 대 체제 구축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조지아 메타플랜트는 연간 50만 대 규모로 문을 열었고, 현대차는 2026년 8월 인베스터데이에서 2030년까지 북미 생산능력을 50만 대 더 늘리겠다고 재확인했다. 이 흐름만 보면 국내 생산이 해외로 대체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 발표는 더 복합적이다.
같은 그룹은 2025년 11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125조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별도로 발표했다. 이 가운데 자본적 지출은 36조2000억 원으로 제시됐고,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과 수소 관련 생산거점이 포함됐다. 현대차 본사도 2026년 연간 투자계획으로 설비투자 9조 원을 포함한 총 17조8000억 원을 제시했다. 해외 공장을 늘리면서도 국내 공장을 없애는 대신, 한국 거점을 수출형·고부가 생산기지로 재편하는 전략이 동시에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이 사례에서 인건비는 분명 비용 변수지만, 결정적 요인은 미국 판매 기반과 현지 조달, 통상 대응, 납기 안정성에 더 가깝다. 현대차가 북미 부품 현지조달 목표를 높이고 현지 하이브리드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완성차처럼 시장과 규제의 지역성이 강한 업종에서는 해외 증설이 곧 국내 제조업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투자 총량보다 배치가 달라졌다
반도체는 자동차와 다른 계산이 작동한다. 삼성전자는 2025년 연간 자본지출 결과를 약 52조7000억 원으로 공시했다. 다만 같은 해 현금흐름표상 유형자산 취득은 47조5200억 원으로 2024년 51조4100억 원보다 줄었다. 일부 기업의 연결 기준 투자 집행액만 놓고 보면 국내를 포함한 전체 설비투자가 줄어든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생산기지의 무게중심이 단순히 해외로 옮겨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삼성전자는 2025년 실적 설명자료에서 미국 테일러 공장 투자 확대를 언급했고, 파운드리 생산거점을 한국의 기흥·화성·평택과 미국 오스틴·테일러에 함께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고객사와 첨단 공정 수요가 몰린 지역에 생산거점을 다변화하는 한편, 핵심 공정과 연구개발 축은 여전히 한국 클러스터에 두는 구조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6년 6월 공시에서 2026년부터 2040년까지 국내 투자 비전으로 약 2450조 원, 이 가운데 반도체 약 2100조 원을 제시했다. 용인과 기존 반도체 단지에 1650조 원, 광주 프로젝트에 400조 원을 배정하는 구상도 포함됐다. 단기 실적 사이클에 따라 연간 집행액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중장기 생산·연구 거점으로서 한국 비중을 낮추는 방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국내투자 감소’라는 표현도 층위를 나눠 봐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 연도의 집행액 감소는 업황 조정과 공정 전환, 고객 수주 지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생산기지의 최종 선택은 고객 접근성, 기술인력 풀, 전력·용수 같은 인프라, 보조금과 규제,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본다.
인건비는 왜 ‘주범’이 아니게 됐나
노동비용이 제조업 투자 판단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2025 회계연도 기업체노동비용조사 결과를 보면 제조업의 상용근로자 1인당 월평균 노동비용은 763만1000원이었다. 미국도 노동비용 부담이 낮아지는 국면은 아니다. 미국 노동통계국 집계에 따르면 2025년 제조업 시간당 보수는 상승했고, 제조업 단위노동비용도 2025년에 증가했다.
이 때문에 최근 해외 이전을 단순히 ‘한국 임금이 비싸서’라고 설명하면 현실을 놓치기 쉽다. 미국 투자는 미국 판매를 위한 현지생산과 보조금, 통상 리스크 분산 성격이 강하고, 반도체 투자는 고객사와 기술 생태계에 가까이 붙는 의미가 크다. 저임금만 좇는 이전이었다면 오히려 인건비가 함께 오르는 미국에 대규모 첨단공장을 짓는 설명이 약해진다.
반대로 한국에 남는 공장도 예전과 같은 역할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울산 전기차 공장처럼 기존 내연기관 기지를 전동화 생산거점으로 바꾸거나, 반도체처럼 연구개발과 선단공정, 핵심 부품 생태계를 붙여 두는 방식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국내 제조업의 쟁점은 공장 수 자체보다 어떤 공정과 의사결정, 협력업체 네트워크가 함께 남느냐에 더 가깝다.
국내 제조업의 미래가 없다는 결론은 아직 이르다
공시와 공식 발표를 종합하면, 한국 제조업이 일괄적으로 비어 가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업종별로 국내 공장이 맡는 역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완성차는 대형 소비시장 인근에 조립능력을 늘리되 한국 공장을 수출형·고부가 기지로 재편하는 흐름이 강하고, 반도체는 해외 거점을 넓히면서도 핵심 클러스터와 장기 투자축을 한국에 남기는 방식이 확인된다.
기업 입장에서 생산기지 선택의 손익계산은 이제 단순한 인건비 비교가 아니다. 판매시장 접근성, 조달망, 통상·정책 리스크, 투자보조금, 기술인력, 공정 전환 속도가 함께 들어간다.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대한 현재의 답은 ‘없다’도 ‘안전하다’도 아니다. 해외 증설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가 무엇을 계속 만들고 어떤 고부가 기능을 붙잡을지에 따라 미래가 갈린다는 쪽이 실제 자료에 더 가깝다.
자료: 현대자동차, 2025년 경영실적 발표(2026.01.29); Hyundai Motor Group, Hyundai Motor Group Commits to U.S. Growth with USD 21 Billion Investment(2025.03.25); Hyundai Motor Group, Hyundai Motor Group to Invest KRW 125.2 Trillion in Korea Over Next Five Years to 2030(2025.11.16); Hyundai Motor Group, Hyundai Motor Company Charts Profit-Driven Growth Roadmap at 2026 CEO Investor Day(2026.08.26); 삼성전자, FY 2025 CAPEX Results(2026.01.29); 삼성전자,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자료(2026.01.29); 삼성전자, Future BusinessㆍManagement Plan 공시(2026.06.29); 고용노동부, 2025 회계연도 기업체노동비용조사 결과 발표(2026.09.30);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Productivity and Costs News Release 2025 Q05 Results(2026.03.05);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Table B-3. Average hourly and weekly earnings of all employees on private nonfarm payrolls by industry sector, seasonally adjusted(202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