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제재받은 기업의 거래관행, 시정명령 뒤 계약은 실제로 바뀌었나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은 뒤 기업의 계약이 실제로 바뀌는지는 업종과 조치 방식에 따라 크게 달랐다. 공정위 의결서만으로는 위법행위와 제재 수위는 확인할 수 있지만, 그 뒤 계약서 문구나 운영 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까지 외부에서 바로 검증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반면 동의의결처럼 기업이 스스로 내놓은 시정방안이 함께 공개된 사건에서는 표준계약서 도입, 비용 산정기준 명확화, 이의제기 절차 신설 같은 후속 변경을 비교적 분명하게 추적할 수 있었다.
결국 투자자나 거래 상대방이 봐야 할 것은 과징금 액수 자체보다 세 가지다. 첫째, 원래 의결서가 어떤 계약 관행을 문제 삼았는지, 둘째, 이후 공개된 표준계약서나 내부 기준이 실제로 나왔는지, 셋째, 같은 기업이 몇 년 뒤 다시 공정위 제재나 상습법위반 명단에 등장했는지다. 시정명령 한 번으로 거래질서가 정착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은 계약조항 수정까지 열어뒀지만, 공개 방식은 업종마다 다르다
공정위 제재는 단순히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도급 분야에서는 대금 지급, 행위 중지, 재발방지뿐 아니라 특약의 삭제·수정이 시정조치에 포함될 수 있고, 대규모유통업 분야도 계약조항 삭제·수정을 명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사건에서 어떤 문구가 삭제·수정됐는지, 수정본 계약서가 곧바로 대외 공개되는지는 별개 문제다.
최근 제도는 계약 단계 규율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도급법은 2025년 4월 1일부터 서면에 적히지 않은 비용 전가나 수급사업자의 권리 제한 등 부당특약의 일부를 명시적으로 무효로 보도록 바뀌었다. 법이 계약 조항 자체를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지만, 개별 기업이 그에 맞춰 어떤 조항을 손봤는지는 여전히 사건별로 따져봐야 한다.
삼성중공업 사례, 제재가 반복됐고 계약 개선안은 나중에야 구체화됐다
가장 대비가 뚜렷한 사례는 삼성중공업이다. 공정위는 2020년 4월 삼성중공업의 선박·해양플랜트 하도급 거래에서 사전 계약서면 미발급,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위탁내용의 부당한 취소·변경을 문제 삼아 시정명령과 과징금 36억원, 법인 고발을 결정했다. 그런데 그 뒤에도 계약서 발급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공정위는 2023년 6월 삼성중공업이 선박 전기장치 작업 임가공 등을 위탁하면서 수급사업자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서면을 발급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다시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어 공정위가 2024년 6월부터 1년간 공표한 하도급법 상습법위반사업자 명단에는 삼성중공업이 포함됐다. 시정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만으로 계약 관행이 안정적으로 고쳐졌다고 보기 어려운 흐름이다.
주목할 대목은 그 다음 단계다. 공정위는 2026년 6월 삼성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면서, 회사가 계약관리시스템 개선, 표준하도급계약서 도입, 원·하청 상설협의체 구성, 연 113억원 규모 상생방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아직 최종 동의의결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계약·시스템 개선안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반복 제재 이후였다. 이 사례는 제재의 존재보다 후속 문서와 절차가 공개됐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대로 편의점 4사와 한솥은 ‘무엇을 바꾸겠다’가 더 선명하게 공개됐다
편의점 업계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공정위는 2025년 4월 GS리테일, BGF리테일, 코리아세븐, 이마트24 등 4개 편의점 본부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 관련 동의의결을 최종 확정했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이들 4사는 편의점 시장에서 가맹점 수 기준 96.4%를 차지하는데, 동의의결안에는 미납페널티의 본사 귀속분 축소, 산정기준과 소명절차 개선, 표준계약서 명확화가 담겼다.
이 경우 핵심은 위법 여부를 다투는 결론보다 거래조건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겠다는지가 공개됐다는 점이다.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손해배상금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이의를 제기할 통로가 있는지, 계약 문구가 어디까지 명확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단순 과징금보다 향후 마진 구조와 거래 리스크를 가늠할 단서가 더 많다.
가맹 분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공정위는 2024년 6월 한솥의 동의의결을 최종 확정하면서 점포환경개선 비용과 관련한 기준·절차 개선, 상생협약 체결, 교육 이수, 점포의 소리 제도 도입·운영 등을 시정방안에 담았다고 밝혔다. 이 역시 기존 계약 문구 자체뿐 아니라 계약 이행 과정의 세부 기준과 분쟁 처리 구조를 손보는 방식이다. 실제 거래관행 변화는 이런 운영 규칙이 공개될 때 비로소 외부 검증이 가능해진다.
표준계약서 개정은 늘었지만, 채택과 이행은 다시 따로 봐야 한다
공정위는 개별 사건 제재와 별도로 표준계약서를 계속 손보고 있다. 2024년 11월에는 편의점, 백화점, 온라인쇼핑몰 등을 포함한 10개 분야 표준유통거래계약서를 개정했고, 2024년 12월에는 가맹 분야 13개 업종의 표준계약서를 개정했다. 제도 변화와 현장 분쟁 유형을 반영해 표준 양식을 보완하는 흐름 자체는 분명하다.
하지만 표준계약서 개정이 곧바로 개별 기업의 계약 변경을 뜻하지는 않는다. 공정위도 유통 분야 서면실태조사에서 표준계약서 활용 현황을 별도로 점검하고 있다. 즉 공정위가 양식을 고쳤는지와 기업이 실제로 채택했는지, 채택했다면 불리한 특약이나 비용 전가 관행이 현장에서 줄었는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이 때문에 시정명령 이후 계약이 바뀌었는지를 보려면 의결서와 표준계약서 공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수정 계약서를 협력사에 배포했는지, 내부 전산이나 승인 절차를 바꿨는지, 이의제기 절차와 비용 산정기준을 문서화했는지, 이후 다시 같은 위반 유형으로 적발됐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공정위 제재의 실효성은 처분 그 자체보다 그 뒤 남는 문서와 반복 여부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삼성중공업(주)의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 제재(2020-04-23); 공정거래위원회, 삼성중공업(주)의 하도급계약 서면 미발급 행위 제재(2023-06-02); 공정거래위원회, 2024년도 하도급법 상습법위반사업자 명단 공표(2024-06-30); 공정거래위원회, 편의점-납품업체 간 거래관행 개선을 위한 동의의결 최종 확정‧시행(2025-04-24); 공정거래위원회, (주)한솥의 동의의결 최종 확정(2024-06-12); 공정거래위원회, 2024년 10개 분야 표준유통거래계약서 개정(2024-11-28); 공정거래위원회, 가맹 분야 표준계약서 개정(2024-12-30); 공정거래위원회, 2024년 유통분야 서면실태조사 실시(2024-07-12); 국가법령정보센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의4(2025-04-01 시행);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공정위, 삼성중공업㈜ 대상 동의의결 절차 개시(2026-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