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생태계 지원금, 부품사 수주로 바로 이어지진 않았다…두산에너빌리티와 비에이치아이로 본 공급망의 현실
정부의 원전 생태계 지원이 곧바로 부품사 수주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제도는 저금리 융자, 보증보험, 수출 컨설팅처럼 자금조달과 진입비용을 낮추는 성격이 강하고, 실제 매출과 이익은 결국 한국수력원자력의 발주 재개나 해외 원전 계약 체결 같은 별도 주문이 있어야 잡힌다. 같은 원전 공급망 안에서도 대형 주기기 업체와 보조기기 업체의 수혜 경로가 다른 이유다.
이 점은 제도 설계에서도 드러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 2월 원전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1500억원 규모의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사업 모집을 시작했고, 선정 기업은 시설자금 최대 100억원, 운전자금 최대 10억원까지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25년 4월에는 원전 설비 중소·중견기업의 첫 수출을 돕는 ‘원전 수출 첫걸음 프로그램’ 2기 사업도 시작했다. 다만 이런 지원은 주문 자체를 만들어내기보다 투자 여력과 수주 대응 능력을 보강하는 장치에 가깝다.
지원금의 성격은 ‘발주’보다 ‘버티기와 준비’에 가깝다
현행 운영규정상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사업은 원전 중소·중견기업이 시설자금과 운전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대출한도는 기업당 최대 110억원이고, 신청서식에도 한국수력원자력 유자격공급자 여부, 시설자금·운전자금 구분, 원전 관련 사업계획이 핵심 요건으로 제시된다. 즉 정부가 직접 기자재를 사주는 구조가 아니라, 기업이 기존 또는 예정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금융비용을 낮춰 주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반대로 해석하면 주문서가 없는 기업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국회예산정책처와 에너지경제연구원도 2025년도 예산과 관련한 검토에서 유사 목적 사업 간 중복 가능성, 실제 지원 필요성, 정책수단의 차별성 문제를 함께 짚었다. 원전 지원이 산업정책으로 의미가 있더라도, 그것이 자동으로 모든 기자재 업체의 신규 수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두산에너빌리티, 지원보다 실제 계약이 투자와 실적의 핵심 변수
두산에너빌리티는 정부 지원의 수혜 여부보다 실제 원전 발주와 해외 계약 체결이 기업 실적에 훨씬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사례에 가깝다. 회사는 2026년 사업계획으로 매출 7조3811억원, 영업이익 3959억원, 수주 13조3214억원을 제시했다. 여기에 2026년 2월 체코 두코바니 5·6호기용 증기터빈과 터빈제어시스템 약 3200억원 규모 계약, 2026년 7월 중국 라이양 5·6호기용 증기발생기 초대형 단조품 공급 계약을 잇달아 공개했다.
회사가 원자력과 소형모듈원전 분야에서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하는 배경도 보조금 자체보다 이런 주문 가시성에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영국과 체코 프로젝트 대응을 위해 창원 본사 부지 내 SMR 전용 공장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설비투자는 ‘지원금이 있으니 투자한다’기보다 ‘실제 수주가 보이니 투자한다’는 순서에 더 가깝다.
이 회사는 국내 원전 정책 변화의 수혜를 받는 대표 기업으로 거론되지만, 그 수혜가 재무제표에 반영되는 경로는 정책 발표가 아니라 계약 체결과 공정 진행이다. 해외 원전과 SMR 공급망에서 확보한 주문이 길게는 2029년 이후까지 이어지는 생산 일정을 만들고, 그 일정이 다시 공장 투자와 매출 인식의 근거가 되는 구조다.
비에이치아이, 국내 원전 낙찰은 확인됐지만 실적 개선은 더 넓은 수주잔고의 결과
비에이치아이는 지원과 수주의 간극을 보여 주는 다른 사례다. 회사는 2025년 3월 한국수력원자력의 신한울 3·4호기 원전 발전설비 공급 낙찰 사실을 공정공시했고, 금액은 468억3000만원으로 최근 사업연도 매출액의 12.7% 수준이었다. 국내 신규 원전 재개가 실제 부품사 주문으로 이어진 드문 확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낙찰 하나만으로 실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비에이치아이는 2026년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2963억원, 영업이익 455억원을 기록했다. 실적 개선 폭만 보면 원전 정책의 직접 효과처럼 보일 수 있지만, 회사의 사업구조상 배열회수보일러와 발전설비, 해외 프로젝트를 포함한 누적 수주가 매출로 전환되는 영향이 함께 작용한다. 원전 보조기기 수주가 기업가치에 중요해진 것은 맞지만, 정부 지원금이 곧장 분기 실적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더구나 비에이치아이처럼 중견 기자재 업체는 지원제도를 통해 원가 부담과 금융비용을 덜 수는 있어도, 실제 매출을 만들려면 발주처 승인과 납기, 품질인증, 제작 공정이 뒤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정책 발표 시점과 실적 반영 시점 사이에는 대개 긴 시차가 생긴다.
결국 갈린 것은 ‘지원 대상’이 아니라 ‘주문을 잡을 위치’였다
두 회사를 함께 놓고 보면 원전 생태계 지원의 실질 효과는 균등하지 않다. 두산에너빌리티처럼 주기기와 글로벌 공급망 지위를 가진 기업은 실제 계약이 잡히면 설비투자 확대와 장기 수주잔고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비에이치아이 같은 보조기기 업체는 국내 원전 발주 재개라는 호재가 있어도, 개별 낙찰과 제작 일정이 이어지지 않으면 지원만으로 실적이 커지기 어렵다.
따라서 ‘천문학적인 원전 지원 사업이 부품사 수주로 이어지느냐’는 질문의 답은 절반만 그렇다에 가깝다. 지원은 공급망 기업이 버틸 시간을 벌어 주고 인증·수출·운전자금 부담을 낮춰 주지만, 수주를 확정하는 것은 여전히 발주처와 계약이다. 실제 기업 영향은 지원금 총액보다 누가 한국수력원자력과 해외 발주처의 주문서에 먼저 올라타는지에 따라 갈린다.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생태계에 1,500억원 규모 정책자금 공급(2025.02.10);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첫 수출 위해 35개 사업 패키지 지원!(2025.04.01); 국가법령정보센터,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사업 운영규정(시행 2025.12.18); 국회예산정책처, 2025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2024);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 심층평가(2025); 두산에너빌리티, 2025년 연간 경영실적 및 2026년 경영계획 공시(2026.02.12); 두산에너빌리티,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증기터빈 계약 체결(2026.02.18); 두산에너빌리티, 중국 라이양 원전 5·6호기 핵심소재 공급 계약 체결(2026.07.27); 한국거래소 공시, 비에이치아이 수시공시의무관련사항(공정공시) 신한울3·4호기 원전 발전설비 공급 관련 낙찰(2025.03.07); 비에이치아이 2026년 2분기 실적 발표 보도(2026.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