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타트업, 지원금만으로는 못 큰다…정부도 후속투자·매출 연동으로 옮겼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의 성장 지원을 논할 때 보조금이나 연구개발 지원금이 먼저 거론되지만, 실제 기업가치를 가르는 지점은 그 다음 단계에 더 가깝다. 정부 제도부터 이미 이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5년 스케일업 팁스 개편에서 선행투자 뒤 곧바로 연구개발 또는 지분투자를 택하던 구조를 바꿔, 연구개발 마일스톤 달성과 운영사의 후속투자를 거친 기업에 매칭투자를 연계하도록 설계했다. 같은 해 아기유니콘 사업에도 후속 투자와 매출 성과를 달성하면 별도 심사 없이 추가 보증을 지원하는 성과연동 보증제도가 들어갔다.
이 변화는 정부가 지원금을 줄이겠다는 뜻이라기보다, 초기 자금만으로는 기업의 스케일업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기술 검증 이후에는 민간 자금이 다시 들어오는지, 그 자금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지, 매출이 특정 제품이나 규제 변수에 과도하게 묶여 있지 않은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정책도 보조금에서 민간 검증 단계로 이동
중기부가 올해 안내한 스케일업 팁스 일반형 구조를 보면 조건이 분명하다. 운영사로부터 10억원 이상 선투자를 받은 기업이 연구개발을 수행한 뒤, 마일스톤을 달성하고 운영사로부터 5억원 이상 후속투자를 받아야 정부 매칭투자로 넘어갈 수 있다. 정부 돈이 민간 판단을 대체하는 구조가 아니라, 민간의 재투자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구조다.
중기부가 제시한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의 성과도 같은 메시지를 준다. 이 기간 스케일업 팁스로 379개 기업에 민관 합산 1조5000억원 이상이 투입됐는데, 이 가운데 민간 운영사 선행투자는 약 5833억원, 선정 이후 벤처캐피탈 등의 후속투자는 약 5567억원이었다. 선정기업 중 약 30%인 111개사가 후속투자를 유치했다. 정부가 실적 지표로 강조한 것도 단순 선정 건수가 아니라 후속자금 유입과 기업공개 성과였다.
아기유니콘 사업도 비슷하다. 올해 선정 기업에는 시장개척자금과 특별보증이 제공되지만, 추가 보증의 트리거로 제시된 것은 다시 후속 투자와 매출이다. 지원금이 출발점이라면, 후속투자와 매출은 시장이 다시 한 번 기업을 검증하는 단계인 셈이다.
루닛, 후속 사업화가 붙자 외형과 손실이 함께 움직였다
상장사 사례를 보면 이 구조가 더 선명해진다. 의료 AI 기업 루닛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831억원으로 전년보다 53% 늘었고, 해외 매출 비중은 92%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회사는 다이이찌산쿄, 애질런트, 셀카르타, 랩콥 등 글로벌 제약·진단 기업과의 협업을 잇달아 공개했다. 단순한 기술 지원 수혜보다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한 후속 사업화가 실적에 직접 연결된 사례에 가깝다.
2026년 상반기에도 흐름은 이어졌다. 루닛의 상반기 매출은 457억6600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3% 증가했고, 해외 매출 비중은 95%였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289억6200만원으로 31% 줄었고, 현금 영업적자도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매출 성장이 손실 축소와 동시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 회사의 다음 단계 가치는 정부 지원 이력보다 민간 고객과 글로벌 파트너가 만들어낸 반복 매출 구조에서 나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여기서도 핵심은 지원금 자체가 아니라 지원금 이후의 연결고리다. 루닛은 상반기 매출 가운데 암 검진 사업에서 428억여원을, AI 바이오마커 플랫폼인 루닛 스코프에서 29억여원을 올렸다. 특히 루닛 스코프는 전년 동기 대비 114% 성장했는데, 회사는 이를 글로벌 제약사 협업 확대와 연결해 설명했다. 연구개발 지원이 끝난 뒤 누가 다시 돈을 내고, 그 돈이 어떤 제품 매출로 인식되느냐가 실적의 중심축으로 이동한 것이다.
뷰노, 매출이 늘어도 제품 집중과 규제 불확실성은 남는다
뷰노는 다른 방향의 교훈을 준다. 이 회사는 2025년 매출 348억원으로 전년보다 35% 성장했고, 영업손실은 49억원으로 60% 줄였다. 비용을 크게 늘리지 않은 채 실적을 개선했다는 점에서 시장성 검증이 진전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026년 상반기 수치를 보면 성장의 질을 함께 봐야 한다. 뷰노의 상반기 매출은 약 122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주력 제품인 심정지 예측 AI 솔루션 딥카스 매출이 104억원이었다. 전체 상반기 매출의 대부분이 단일 제품에서 나온 셈이다. 회사도 딥카스와 관련해 신의료기술평가 절차가 진행 중이며, 4분기 이후 불확실성 해소와 시장 확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후속투자나 보증 확대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매출이 발생하더라도 특정 제품 의존도가 높고 규제·평가 절차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면 밸류에이션의 안정성은 제한될 수 있다. 지원금 이후 민간 자금이 붙더라도, 그 자금이 규제 리스크를 넘은 다변화된 매출로 이어지지 못하면 성장 서사는 약해진다. 후속라운드의 존재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매출의 구성과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코난테크놀로지, AI 수요가 곧바로 실적으로 번역되지는 않았다
엔터프라이즈 AI 쪽에서는 코난테크놀로지가 반례에 가깝다. 회사는 2026년 상반기 매출 80억4739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9% 증가했고, 2분기 영업손실은 전년 동기보다 36.6% 축소됐다고 밝혔다. 반기 말 전체 계약 수주잔고도 225억원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상반기 영업손실은 68억여원으로 여전히 컸다. 수주잔고가 있고 AI 전환 수요가 공공·법률·발전·국방·제조로 확산되고 있어도, 그 수요가 당장 매출 인식과 이익 개선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AI 산업의 기대감, 정부 사업 참여, 기술 홍보만으로는 실적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사례는 중요하다.
코난테크놀로지가 보여주는 것은 후속투자보다 더 앞선 단계의 문제다. 시장의 관심과 프로젝트 수주가 있어도 매출 전환 속도가 늦거나 원가 구조가 무거우면 성장기업의 기업가치는 쉽게 방어되지 않는다. 결국 투자자가 보는 것은 기술 테마가 아니라, 수주가 매출과 현금흐름으로 얼마나 빨리 전환되는가다.
기업이 따져야 할 것은 지원금 규모보다 다음 라운드의 조건
기업·유통·제조 독자 입장에서 중요한 대목은 정부가 AI 스타트업을 얼마나 지원하느냐보다, 그 지원이 어떤 민간 자금과 매출 검증 단계로 이어지느냐다. 납품사나 협력사로 스타트업을 검토하는 대기업도 같은 기준을 쓸 수 있다. 첫째, 후속투자 유치 여부가 있는지, 둘째, 그 자금이 제품 판매·해외 계약·구독형 매출처럼 반복 가능한 구조로 연결됐는지, 셋째, 매출이 특정 제품이나 규제 변수에 과도하게 쏠려 있지 않은지를 함께 봐야 한다.
정책 방향도, 상장사 실적도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지원금은 초기 생존과 기술 개발에는 필요하지만, 기업가치를 키우는 결정적 변수는 그 다음 단계의 민간 재투자와 실매출이다. 다만 그것도 만능은 아니다. 후속자금이 들어와도 매출 집중, 규제 지연, 느린 수주 전환이 겹치면 실적 개선은 제한될 수 있다. AI 스타트업의 성장을 판단할 때 지원금 수혜 여부보다 후속라운드의 질과 매출의 구조를 먼저 봐야 하는 이유다.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2025년 스케일업 팁스 일반형 기업 지원계획 공고(2025.4.3); 중소벤처기업부, 2025년 아기유니콘 50개사 선정 보도자료(2025.5.29); 루닛, 2025년 매출 831억원 역대 최대 실적(2026.1.30); 루닛, 상반기 매출 458억원 역대 최대 상반기 실적에 수익성 큰 폭 개선(2026.8.12); 뷰노, 2025년 매출 348억원으로 전년 대비 35% 성장(2026.2.4); 뷰노, 상반기 매출 122억원 DeepCARS 104억원·HATIV 성장세(2026.8.14); 코난테크놀로지, 상반기 매출 80.4억 수주잔고는 225억원(2026.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