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다뷰

시장의 변화와 미래를 읽는 경제지, 미래다뷰

K-조선 수출 320억달러…기자재 기업에도 호황인가

산업
최근 1년 조선 수출 320억달러·8년 만의 최고…LNG운반선 세계 1위 유지
대형 조선소 수주가 곧바로 중소 기자재사 매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냐
RG·국산 기자재 실선 탑재·인력 확보·MRO 계약이 ‘낙수효과’ 가르는 핵심

한국 조선산업이 최근 1년간 320억달러의 수출을 기록하며 8년 만의 최고치를 나타냈다. LNG운반선 분야에서도 세계 1위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한국 조선업이 다시 수출 주력산업의 중심으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부는 9월 10일 열린 제23회 조선해양의 날 기념행사에서 지난 1년간 K-조선 수출이 320억달러를 기록했고 LNG운반선 세계 1위를 지켰다고 밝혔다. 정부는 한미 조선협력센터 개소 등 MASGA 협력도 본격화되고 있다며 조선소뿐 아니라 철강과 기자재, 해운, 금융을 아우르는 전체 산업생태계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m.korea.kr)

그러나 조선 수출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중소 기자재업체와 지역 협력사가 같은 수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형 조선사가 고가 선박을 수주한 뒤 어떤 기자재를 실제로 국산품으로 채택하는지, 중소 조선사가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을 확보할 수 있는지, 숙련인력 부족이 해소되는지, 미국 등 해외 MRO 시장의 협력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지를 따로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320억달러 수출의 중심에는 고부가가치 선박이 있다


한국 조선산업의 최근 회복은 단순히 선박 건조량이 늘어난 결과만은 아니다.

LNG운반선과 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한국 조선사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수출액이 크게 늘었다.

산업부는 최근 1년간 조선 수출이 320억달러로 8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LNG운반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주요 성과로 제시했다. (m.korea.kr)

고부가가치 선박은 일반적인 벌크선이나 중소형 선박보다 계약금액이 크고 고도의 설계·제어·안전기술이 요구된다.

따라서 대형 조선사 입장에서는 적은 척수를 수주하더라도 높은 수출액을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동시에 ‘수출액 증가가 산업생태계 전체의 매출 증가와 같은가’라는 질문을 만든다.


배 한 척은 조선소만으로 만들 수 없다


선박은 수많은 기자재가 결합된 거대한 산업제품이다.

엔진과 추진계통, 펌프와 밸브, 전기·전자장비, 제어시스템, 배관, 철강, 단열재, 안전장비 등 수많은 부품과 기자재가 필요하다.

산업부도 “배 한 척을 건조하는 것은 조선소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철강과 기자재, 해운, 금융을 포함한 전후방 가치사슬 전체가 K-조선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m.korea.kr)

문제는 대형 조선소가 수주한 선박의 기자재가 어느 기업의 제품으로 채워지는가다.

선주가 특정 해외 브랜드를 요구하거나 글로벌 공급망에 이미 등록된 제품을 선호하면 국내 중소 기자재업체가 수주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수출선박의 계약금액이 올라가도 국산 기자재 탑재율이 함께 높아지지 않는다면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호황은 제한될 수 있다.


‘국산 기자재 탑재’가 실제 낙수효과의 첫 관문


중소 기자재업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단순한 선박 수주량이 아니라 실제 발주다.

새로운 펌프나 밸브, 전기장비를 개발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조선소에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박은 장기간 운항해야 하고 사고 발생 시 피해가 크기 때문에 선급 인증과 성능검증, 조선사의 품질평가, 선주의 승인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신규 기자재 기업이 처음 실적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산업부가 조선산업의 상생정책에서 기자재 기업의 실선 탑재와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개발 지원을 받은 제품이 실제 선박에 한 번이라도 적용돼 운항실적을 확보하면 이후 해외 선주와 조선사에 공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연구개발 지원만 받고 실제 실선 탑재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기술개발과 매출 사이의 간격이 남는다.


중소 조선사에는 RG가 사실상 수주 조건


중소 조선사에서 가장 큰 금융 문제 가운데 하나는 선수금환급보증, RG다.

선박을 주문한 선주는 계약금과 중도금 등 선수금을 조선사에 먼저 지급한다.

그러나 조선사가 선박을 완성하지 못하면 선주는 이미 지급한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

이때 금융기관이 조선사의 반환 의무를 보증하는 것이 RG다.

문제는 중소 조선사가 수주계약을 확보해도 금융기관에서 RG를 발급받지 못하면 계약을 실제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소 조선사에게 RG는 일반적인 금융지원 하나가 아니라 수주 자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조건에 가깝다.

산업부는 이번 조선해양의 날 행사에서도 중소 조선사의 RG 발급을 지원해온 금융기관 담당자에게 정부포상을 수여했다. 조선 생태계에서 금융의 역할을 별도의 산업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m.korea.kr)


대형 조선사 호황과 중소 조선사 호황은 다를 수 있다


한국 조선산업을 하나의 숫자로만 보면 이런 차이를 놓치기 쉽다.

대형 조선 3사가 LNG운반선이나 고가 선박을 대규모로 수주하면 국가 전체 조선 수출은 빠르게 늘 수 있다.

하지만 중소 조선사는 주력 선종과 고객층이 다르고 금융조달 조건도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대형 조선사가 확보한 수주잔고가 중소 조선사의 수주잔고로 자동 이전되는 것도 아니다.

기자재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대형 조선사의 수주량이 많아지면서 부품 주문이 늘어날 수 있지만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함께 상승하면 매출 증가가 그대로 수익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조선업의 회복을 평가하려면 전체 수출뿐 아니라 기업 규모별 수주와 매출, 영업이익, RG 공급량 등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인력 부족이 수주 호황의 병목이 될 수 있다


수주를 많이 확보해도 실제 선박을 만들 사람이 부족하면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

조선업은 용접과 배관, 전기, 도장, 설계 등 숙련기술자의 비중이 높은 산업이다.

장기간 업황 부진을 거치면서 현장을 떠난 숙련인력을 단기간에 다시 확보하기도 어렵다.

최근 조선소들이 외국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런 인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원 수를 채우는 것만으로 생산성이 바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조선소마다 작업공정과 안전관리 체계가 다르고 고난도 선박일수록 숙련도가 생산성과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K-조선의 수주 호황을 지속하려면 수주잔고뿐 아니라 실제 건조능력을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중요하다.


MASGA는 아직 ‘기대 수요’와 ‘체결 계약’을 나눠 봐야


최근 한국 조선산업에서 가장 큰 새로운 변수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의 조선협력이다.

산업부는 한미 조선협력센터 개소 등을 통해 이른바 MASGA 협력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m.korea.kr)

미국은 상선뿐 아니라 해군 함정과 유지·보수·정비, MRO 분야에서도 조선산업 기반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한국 조선업계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특히 선박 정비는 신조선 건조와 달리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수요가 발생할 수 있어 국내 조선사와 기자재기업의 장기적인 사업기회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협력계획과 실제 매출을 구분해야 한다.

정부 간 협력방향이 발표됐거나 기업이 시장진출 계획을 내놓았다고 해서 곧바로 장기 계약이 확보된 것은 아니다.


4분기 미국 협력행사도 ‘계약 여부’가 관건


올해 4분기에는 미국과의 조선협력 관련 행사가 예정돼 있다.

이런 행사는 기업 간 네트워크와 시장진출 기회를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정책성과를 평가하려면 행사 횟수보다 실제 결과가 더 중요하다.

국내 기자재기업이 미국 조선소나 MRO 사업자의 공급망에 등록됐는지, 시제품 평가와 실선 적용으로 연결됐는지, 실제 공급계약 금액이 발생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미국 시장은 인증과 공급망 요건, 현지 조달조건 등이 까다로울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상담이 실제 계약으로 전환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올해 4분기 이후에는 참가기업 숫자보다 실제 계약과 벤더 등록 성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선 호황이 지역경제로 번지는 경로도 따로 봐야


조선업은 대표적인 지역산업이다.

울산과 거제, 부산, 경남과 전남 등 조선소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대형 조선사의 생산량이 지역 협력업체와 고용, 상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수주 증가가 실제 건조물량 증가로 이어지면 협력사의 일감과 현장 인력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수출액이 올랐다는 숫자 하나만으로 지역경제가 같은 비율로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외국산 기자재 사용 비중이 높아지거나 자동화로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면 수출증가와 지역 고용 사이의 연결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지역 중소업체가 기자재 공급망에 많이 참여하고 조선소가 신규 인력을 적극 채용한다면 지역경제로의 파급효과가 커질 수 있다.

결국 지역에서 중요한 것은 ‘수주금액’보다 실제 지역에서 발생한 발주와 임금, 고용이다.


320억달러 다음에 확인해야 할 숫자


지난 1년간 320억달러의 조선 수출과 LNG운반선 세계 1위는 K-조선의 국제경쟁력이 회복됐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m.korea.kr)

하지만 산업생태계 전체의 호황을 확인하려면 그 다음 숫자가 필요하다.

중소 조선사의 RG 발급과 신규 수주가 얼마나 늘었는지, 국내 기자재업체의 실선 탑재와 해외 벤더 등록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지역의 숙련인력과 신규 고용이 실제로 늘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미국과의 MRO 협력도 발표된 협력계획보다 실제 계약금액과 참여기업 숫자를 봐야 한다.

대형 조선사의 수주잔고가 아무리 많아도 기자재가 해외에서 조달되고 중소 조선사는 금융문제로 계약을 놓치며 현장에서는 숙련인력 부족이 계속된다면 산업 전체의 회복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산업부가 이번에 철강·기자재·해운·금융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다. (m.korea.kr)

K-조선의 다음 경쟁은 얼마나 많은 선박을 수주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320억달러의 수출이 국내 기자재 발주와 중소기업 매출, 지역 일자리와 새로운 해외시장 계약으로 얼마나 넓게 퍼지는지가 조선 호황의 질을 결정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