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없애는 일자리, 누가 책임지나…산업 육성만큼 빨라야 할 ‘노동 전환’
정부와 기업이 인공지능(AI)을 생산성 혁신의 핵심 수단으로 밀어붙이면서 노동시장에는 또 다른 질문이 커지고 있다. AI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든다면 반대로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일자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가 GPU와 데이터센터, 소버린 AI, 피지컬 AI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서 산업 육성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기존 노동자가 새로운 직무로 이동하도록 돕는 정책이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AI 시대의 일자리 대책은 단순히 “AI 인재를 몇 명 양성했다”는 숫자로 평가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잃거나 업무가 크게 변한 근로자가 실제로 새로운 직장을 구했는지, 이전과 비슷한 임금을 받는지,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으로 밀려나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AI 산업정책의 성과가 투자액과 GPU 수로 측정된다면 노동 전환정책은 교육 이수 인원이 아니라 재취업률과 임금 유지율, 고용의 질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AI는 ‘직업’보다 먼저 ‘업무’를 없앤다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먼저 ‘직업’과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생성형 AI가 등장했다고 해서 회계사, 기자, 은행원, 상담원, 개발자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들이 수행하던 업무 가운데 문서 작성, 자료 정리, 번역, 검색, 고객응대, 코드 생성, 단순 분석처럼 자동화하기 쉬운 부분부터 AI가 맡기 시작한다.
OECD와 한국노동연구원이 2025년 발표한 한국 노동시장 분석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국내 기업 가운데 56.5%는 AI가 기존 직무의 특정 업무를 대체했다고 답했다. 반면 조직 단위에서 실제 인력 규모가 바뀌었다고 응답한 기업은 많지 않았다. 즉 현재까지 나타난 변화는 ‘직업의 대량 소멸’보다 ‘직업 내부의 업무 재편’에 가깝다.
문제는 업무 일부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채용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직원 10명이 하던 업무를 AI를 활용한 7~8명이 처리할 수 있다면 당장 기존 인원을 해고하지 않더라도 신규 채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신입사원이 맡던 자료 조사, 문서 초안 작성, 단순 코딩, 데이터 정리 같은 업무가 자동화되면 청년층이 경력을 쌓기 위해 진입하던 ‘첫 번째 사다리’가 좁아질 수 있다.
OECD도 한국에서 2018~2023년 전통적 형태의 AI 활용이 제조업과 청년층, 중·저학력 근로자의 정규직 고용 증가율 둔화와 연관된 징후가 있다고 분석했다. 생성형 AI가 대규모 실업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충격이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분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무직부터 흔들린다…‘화이트칼라 안전지대’는 끝났다
과거 자동화가 주로 공장 생산직과 단순 반복 노동을 대체했다면 생성형 AI는 오히려 사무직의 업무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보고서 작성, 번역, 회계 처리, 고객 응대, 마케팅 문구 작성, 법률 문서 검토, 프로그램 코딩처럼 언어와 정보 처리를 중심으로 하는 직무가 대표적이다.
OECD는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군으로 IT 전문가, 경영·사무 전문직, 관리자, 과학·공학 전문직 등을 지목한다. 다만 ‘AI에 많이 노출된다’는 것이 곧 일자리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AI가 사람의 업무를 대체할 수도 있지만 생산성을 높이는 보조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회계사라도 단순 전표 정리는 AI가 맡고 사람은 기업 분석과 컨설팅에 집중할 수 있다. 개발자 역시 반복적인 코드 작성은 줄어드는 대신 설계와 검증, AI가 만든 코드의 품질 관리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핵심은 AI에 노출되는가가 아니라 AI 도입 이후 남는 업무가 더 높은 부가가치를 갖느냐다. 저부가가치 업무만 자동화되고 근로자가 더 전문적인 업무로 이동한다면 임금과 생산성이 함께 올라갈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AI를 단순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고숙련 핵심인력만 남고 중간 수준 사무직이 줄어드는 ‘고용의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
서비스업은 상담·주문·판매부터 재편된다
서비스업에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금융권의 챗봇 상담, 유통업의 무인 계산과 자동 주문, 여행업의 AI 일정 설계, 광고업의 콘텐츠 자동 제작 등이 대표적이다. 고객이 이전에는 사람에게 맡기던 업무를 AI가 직접 처리하면서 콜센터 상담원, 판매·예약 업무, 단순 사무지원 직군의 업무량이 줄어들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분석에서도 생성형 AI의 자동화 가능성은 특히 사무지원 직종에서 높게 나타났다. ILO는 사무지원 업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직업 전체가 사라지기보다는 여러 업무가 부분적으로 자동화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이 경우 노동정책의 초점 역시 ‘실직 이후’에만 맞춰서는 부족하다. 회사에서 AI 도입 계획이 발표되는 순간부터 어떤 업무가 줄어드는지 분석하고 해당 근로자가 새로운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직무를 재설계해야 한다. 상담원이라면 단순 문의 응답에서 복잡한 고객 문제 해결이나 AI 상담 품질관리로 이동시키는 식이다.
제조업의 AI는 생산직 감소와 기술직 증가를 동시에 부른다
제조업은 변화의 방향이 더 복합적이다. AI 비전검사, 자율주행 물류로봇, 예지정비, 스마트공장, 휴머노이드 로봇이 확대되면 단순 조립이나 검사, 운반 업무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반면 로봇 유지보수, 센서 관리, AI 모델 운영, 생산 데이터 분석, 공정 최적화 업무는 늘어날 수 있다.
문제는 사라지는 일자리의 근로자와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근로자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생산라인에서 20년 일한 50대 근로자가 단기간의 AI 교육을 받은 뒤 데이터 엔지니어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 전환을 “기존 근로자를 AI 개발자로 만들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필요한 것은 현재의 산업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직무전환이다. 제조업 숙련자는 공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에 AI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지 않더라도 스마트공장 운영, 로봇 공정 관리, AI 검사 결과 검증, 설비 유지관리와 같은 분야로 이동할 수 있다. 재교육의 목표도 코딩교육 일변도에서 벗어나 산업 경험과 AI 활용 능력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10만 명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 후 어디에 취업했느냐다
정부의 디지털 인재 정책은 지금까지 교육 인원 확대에 상당한 비중을 둬왔다. K-디지털 트레이닝을 비롯해 다양한 AI·소프트웨어 직업훈련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OECD도 한국이 이미 여러 공공 재원 기반의 AI·디지털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교육 인원이 많다고 노동 전환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실제 정책 성과를 판단하려면 훈련을 마친 사람이 몇 개월 안에 취업했는지, 어떤 형태의 일자리에 들어갔는지, 이전 직장보다 임금이 얼마나 떨어졌는지까지 추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봉 5000만원을 받던 중견기업 사무직 근로자가 AI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뒤 정부 지원 교육을 이수했지만 연봉 3000만원의 계약직으로 이동했다면 이를 성공적인 전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기존 연봉 수준을 유지하면서 AI 활용 업무로 전환했다면 실질적인 노동 전환에 가깝다.
따라서 직업훈련사업의 성과지표를 ‘수료자 수’에서 6개월·12개월 재취업률, 이전 임금 대비 임금 유지율, 정규직 전환율, 고용 유지기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교육기관 역시 교육생을 많이 모집한 곳보다 실제 취업과 임금 상승 성과가 높은 곳에 더 많은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정작 재교육이 필요한 사람이 교육에서 가장 멀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육 기회의 격차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학습 참여율은 13% 수준으로 OECD 평균 40%보다 크게 낮다. AI를 도입한 한국 기업 가운데 근로자에게 관련 교육을 제공한 기업도 42%에 그쳤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도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AI 전환에 가장 취약한 사람일수록 교육을 받기 어렵다. 대기업 정규직은 회사 비용으로 근무시간 중 AI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는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비용이다.
퇴근 뒤 몇 달간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노동 전환이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 효과를 내려면 근로시간 중 교육을 받을 권리, 훈련기간 동안의 소득 보전, 중소기업의 대체인력 비용 지원 등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AI 전환의 수혜자이면서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배달기사, 대리운전기사, 프리랜서 디자이너, 번역가, 콘텐츠 제작자 등 플랫폼 노동자는 AI 시대의 또 다른 사각지대다. 이들은 AI를 활용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알고리즘의 결정에 더 강하게 종속될 수 있다.
플랫폼이 AI를 이용해 배차와 가격, 업무평가, 계정 정지를 자동으로 결정하면 노동자는 자신의 소득과 일자리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이 어떤 기준으로 이뤄졌는지 알기 어렵다. 생성형 AI가 번역·디자인·콘텐츠 제작 시장의 단가를 낮출 경우 프리랜서의 소득이 급격히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OECD는 한국의 비정형 노동자가 사회보호 제도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AI 전환 과정에서 사회보험과 재취업 서비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AI 시대의 노동 보호는 따라서 전통적인 ‘해고 보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플랫폼의 자동화된 평가와 계정 정지에 대해 노동자가 설명을 요구할 권리, 인간에게 재심을 요청할 수 있는 절차, 알고리즘이 임금과 배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본적인 투명성도 새로운 노동권의 영역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AI 이익을 얻으면서 전환 비용은 국가에 넘겨도 되는가
AI 노동 전환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기업의 책임이다. 기업이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인건비를 절감하면서 실직자 재교육과 생계 지원 비용을 모두 정부가 부담한다면 결과적으로 자동화의 이익은 기업이 가져가고 비용은 사회가 부담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AI로 대규모 업무 재편을 진행하는 기업에는 일정한 전환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고보다 우선해 사내 재배치와 직무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근로자가 AI 도입 과정에 참여해 영향을 협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OECD 역시 AI를 도입할 때 근로자와 협의한 기업에서 노동자가 AI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AI 도입 과정에서 노동자와의 협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궁극적으로 기업의 AI 투자 계획에는 기술 투자비뿐 아니라 ‘사람의 전환 비용’도 포함돼야 한다. 100억원을 들여 업무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그로 인해 직무가 바뀌는 근로자의 교육과 배치전환 비용도 투자계획에 넣는 식이다.
AI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의 시계를 맞춰야 한다
가장 큰 위험은 AI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의 속도 차이다. 데이터센터는 2~3년이면 건설할 수 있고 GPU는 예산만 확보하면 빠르게 구매할 수 있다. 기업도 생성형 AI 서비스를 몇 달 안에 업무에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새로운 직무 능력을 배우고 산업을 옮겨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데는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 전환 대책은 실업이 발생한 뒤 시작돼서는 늦다. 어느 산업과 직종에서 AI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채용 감소와 임금 하락 같은 신호를 조기에 포착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직종별 전환 지도를 만들어 위험도가 높은 근로자에게 선제적으로 교육과 이동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특히 AI 노출도가 높은 사무직과 청년층, 중소기업 근로자, 제조업 생산직, 플랫폼 노동자를 하나의 정책으로 묶어서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청년에게는 AI 시대에도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입직 경로가 필요하고, 중장년 생산직에는 기존 숙련을 활용할 수 있는 직무전환이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재교육과 함께 사회보험과 알고리즘 통제가 중요하다.
정책 성적표를 ‘교육 인원’에서 ‘일자리의 질’로 바꿔야 한다
AI 노동정책의 최종 성적표는 교육장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작성돼야 한다. 정부가 10만 명을 교육했다고 발표하는 것보다 그 가운데 몇 명이 취업했는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임금이 유지됐는지를 공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향후 AI 노동 전환 정책에는 최소한 세 가지 지표가 핵심 성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는 재취업률이다. 둘째는 실직 전과 비교한 임금 유지율이다. 셋째는 새 일자리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했는지를 보여주는 고용 유지율이다. 여기에 정규직 비중과 플랫폼·비정규 노동으로의 이동 여부까지 추적한다면 정책 효과를 보다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AI는 한국의 생산성 정체와 인구 감소를 완화할 중요한 기술이다. OECD 역시 AI가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일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같은 보고서는 AI의 혜택과 위험이 근로자 사이에 동일하게 분배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질문은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라지는 업무에서 사람이 얼마나 빨리 새로운 업무로 이동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소득과 고용의 질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AI 데이터센터와 GPU에는 조 단위 투자가 이뤄지면서 노동자의 재교육과 전환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과 관심만 투입된다면 AI 정책은 완성될 수 없다. 기술 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답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이동하는 속도만큼 사람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AI 산업 육성과 노동 전환은 서로 반대되는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두 정책의 시계가 정확히 맞아야 AI가 사회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운 AI 기업이 얼마나 생겼는지뿐 아니라 기존 노동자가 얼마나 좋은 일자리로 옮겨갔는지까지 정부의 성과표에 들어갈 때, AI 전환은 비로소 산업정책을 넘어 국민의 경제정책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