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다뷰

시장의 변화와 미래를 읽는 경제지, 미래다뷰

대용량이 더 싼데 왜 작은 걸 살까…‘조금 사는 소비’가 커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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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장을 볼 때 오랫동안 통했던 공식이 있다. 같은 상품이라면 큰 포장이 더 싸다는 것이다. 우유 1리터보다 2리터, 고기 200g보다 1㎏, 휴지 6롤보다 30롤을 사는 편이 단위가격은 낮다. 그래서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에게 대용량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정반대의 상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삼겹살 200g, 반 모짜리 두부, 한 끼 분량의 채소, 조각 수박과 소용량 과일처럼 한두 번 먹으면 끝나는 제품들이다. 100g당 가격으로 계산하면 대용량보다 비싼 경우가 적지 않은데도 소비자는 지갑을 연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가구 규모의 축소가 있다. 통계청 장래가구추계에서는 2025년 1인 가구 비중을 34.3%, 2인 가구를 29.9%로 전망했다. 둘을 합하면 전체 가구의 약 64%다. 2050년에는 1·2인 가구 비중이 75.8%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 넷이 함께 먹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던 장보기 단위가 두 명, 한 명의 식탁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는 이제 “얼마나 싸게 샀나”보다 “내가 실제로 다 사용할 수 있나”​를 따지기 시작했다.


100g당 가격보다 ‘버리지 않는 가격’이 중요해졌다


대용량 제품이 경제적이라는 말은 산 물건을 대부분 소비한다는 전제에서만 성립한다. 1㎏짜리 고기가 200g 포장보다 100g당 20% 저렴하더라도 절반을 먹지 못하고 버린다면 결과적으로 더 비싼 구매가 된다.

채소와 과일, 두부, 육류처럼 보관기간이 짧은 식품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한다. 대파 한 단을 샀지만 절반이 시들고, 큰 두부를 구입했다가 남은 조각을 냉장고에서 잊어버리는 식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소비자가 계산하는 ‘가격’의 범위가 달라지는 이유다. 과거에는 제품 가격을 용량으로 나눈 단위가격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폐기하는 양과 냉장고 공간, 손질하는 시간까지 포함한 실질적인 사용비용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소포장은 단가가 비싼 대신 버리는 비용을 줄이는 상품인 셈이다.


편의점에서 삼겹살을 사는 시대


변화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곳 중 하나가 편의점이다. 한때 편의점의 식품은 도시락과 삼각김밥, 컵라면 같은 즉석식품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고기와 채소, 과일까지 판매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GS25는 올해 1인 가구를 겨냥해 제육볶음과 고추장삼겹살, 소불고기 등을 200g씩 포장한 4900원짜리 한 끼 양념육을 출시했다. 이후 소포장 수요가 확인되면서 상품군을 추가했고, 올해 1~7월 축산가공 상품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9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선식품을 앱에서 주문하고 가까운 편의점에서 받는 서비스도 커지고 있다. GS25의 신선식품 예약 서비스는 올해 1~2월 누적 주문이 2만건을 기록했고, 관련 앱 매출은 전년보다 540% 증가했다. 구매자의 3분의 2가 20·30대였다.

편의점이 단순히 급하게 음료나 간식을 사는 곳에서 퇴근길에 오늘 저녁에 먹을 식재료를 사는 ‘근거리 장보기 매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장보기도 ‘일주일에 한 번’에서 ‘오늘 먹을 만큼’으로


가구 규모가 작아지면 장보기 방식도 바뀐다. 네 식구가 함께 살 때는 주말에 대형마트를 찾아 일주일치 식재료를 한꺼번에 사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한 명이 생활하면 많이 사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냉장고가 가득 차더라도 실제로 먹는 양은 적고, 갑자기 외식이나 약속이 생기면 사둔 음식은 그대로 남는다. 결국 주말에 한꺼번에 장을 보는 것보다 퇴근길에 그날 또는 다음 날 먹을 만큼만 구매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이 변화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경계도 흐리게 만든다. 소비자는 고기를 사기 위해 반드시 대형마트에 갈 필요가 없고, 편의점에서도 소량의 삼겹살이나 채소를 살 수 있다. 반대로 대형마트는 조각과일과 소량 델리, 소포장 채소를 확대하며 작은 가구의 장바구니를 붙잡으려 한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단순히 작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장을 보는 시간과 장소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가가 오를수록 ‘작게 사는 소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


소포장 확대에는 물가 부담도 영향을 준다. 올해 상반기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삼겹살 1인분 재료비는 평균 1만191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8% 올랐다. 외식뿐 아니라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비용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같은 예산으로 살 수 있는 양을 줄이게 된다. 2만원을 들고 장을 보러 갔을 때 1㎏짜리 고기 대신 200~300g만 사고, 과일 한 상자보다 두세 개가 든 작은 포장을 선택하는 식이다.

소포장은 단위가격에서는 불리하지만 한 번 결제할 때 지출하는 총액을 낮춰준다. 1인 가구나 소득이 제한적인 소비자에게는 100g당 몇백원 싸게 사는 것보다 오늘 장바구니에서 빠져나가는 돈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유통업체가 ‘가성비’뿐 아니라 ‘소액 구매 가능성’을 경쟁력으로 보기 시작한 이유다.


소포장이 무조건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적게 사서 음식을 덜 버린다고 해서 소포장이 모든 면에서 좋은 것은 아니다. 같은 1㎏의 식품을 하나의 포장에 담는 것보다 200g씩 다섯 개로 나누면 트레이와 필름, 라벨 같은 포장재 사용량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 폐기물은 줄지만 플라스틱과 포장폐기물이 늘어날 수 있는 역설이 생긴다.

따라서 앞으로 소포장 시장이 커질수록 유통업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분명하다. 포장을 작게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하기 쉬운 소재를 사용하고, 불필요한 트레이나 이중포장을 줄여야 한다.

특히 포장 규제를 강화하는 유럽을 비롯해 각국이 재활용성과 포장 최소화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소용량 소비의 확대와 포장재 감축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적게 사고 덜 버리는 소비’가 진짜 효율적이려면 음식물 쓰레기뿐 아니라 포장 쓰레기까지 함께 계산해야 한다.


큰 냉장고가 반드시 경제적인 것도 아니다


소포장 소비는 주거 형태와도 연결된다. 1인 가구가 사는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는 식재료를 대량으로 저장할 공간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큰 냉장고와 별도의 냉동고가 있는 가족 가구라면 대용량 제품을 소분해 장기간 보관할 수 있지만 작은 집에서는 그 자체가 쉽지 않다. 냉동실에 오래 넣어둔 음식이 무엇인지 잊어버려 결국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구매단가만 비교해서는 합리적인 소비를 설명하기 어렵다. 저장공간과 조리시간, 소비주기까지 모두 비용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1인 가구 시대의 가성비는 ‘얼마나 많이 주느냐’에서 ‘내 생활에 얼마나 정확하게 맞느냐’로 바뀌고 있다.


유통업의 경쟁 단위도 ‘큰 장바구니’에서 ‘한 끼’로


과거 대형 유통업체는 소비자 한 명이 방문했을 때 최대한 많은 상품을 한꺼번에 구매하도록 만드는 데 집중했다. 대형 카트와 묶음 할인, 대용량 PB상품이 대표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1·2인 가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장바구니가 작아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 대신 더 자주 방문하도록 만들고, 한 번 먹기에 정확한 양을 제공하는 것이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다.

삼겹살 200g, 반 모 두부, 조각과일이 단순히 제품 크기만 작아진 상품이 아닌 이유다. 유통업체가 가족 중심의 대량 소비에서 개인 중심의 작은 소비로 사업모델을 조정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향후 가구 규모가 더 작아진다면 식품뿐 아니라 세제와 화장품, 반려동물용품 등 다른 생활용품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많이 사면 싸다’는 공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조건이 달라졌다


대용량이 더 저렴하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족이 많고 저장공간이 충분하며 구입한 제품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면 여전히 대용량이 훨씬 경제적이다.

다만 한국 가구의 모습이 달라졌다.

한 명 또는 두 명이 사는 집이 늘고, 장을 보는 장소가 집 근처로 가까워지고, 소비자는 식품을 오래 저장하기보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가장 낮은 단위가격이 반드시 가장 낮은 생활비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용량을 싸게 샀지만 절반을 버리는 것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전부 사용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경제적일 수 있다.

소포장 시장이 커지는 이유도 바로 그 계산법의 변화에 있다.

앞으로 장보기에서 소비자가 따질 것은 단순히 “100g당 얼마인가”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내가 산 것 가운데 결국 얼마를 먹고,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버리는가.

1·2인 가구가 중심이 되는 시장에서 ‘가성비’의 기준도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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