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보험·증권주 재평가 시작됐나…‘싼 금융주’의 조건이 달라졌다
-사상 최대 실적에 자사주 소각·배당 확대…저PBR보다 ROE와 자본효율성이 금융주 가치 가른다
국내 금융주를 설명할 때 오랫동안 따라붙었던 단어는 ‘저평가’였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고 배당도 지급하지만 성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은 낮았고, 투자자는 주가 상승보다 배당수익을 기대하며 금융주를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금융주를 바라보는 시장의 기준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순자산보다 주가가 싸다는 이유가 아니라, 벌어들인 이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남는 자본을 주주에게 얼마나 적극적으로 돌려주는지가 기업가치를 결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실적이 있다. KB금융은 올해 상반기 3조884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전년 동기보다 13.1% 성장했고, 2분기 순이익도 1조9922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신한금융 역시 2분기 1조8201억원, 상반기 3조4427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분기와 반기 모두 최대 실적을 냈다. 은행의 이자이익뿐 아니라 증권·보험·자산운용 등 비은행 계열사의 수익이 커지면서 금융지주의 이익구조도 과거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주가도 이런 변화에 반응하고 있다. KB금융은 8월 27일 16만8100원으로 마감했고, 신한지주는 같은 날 10만8800원을 기록했다. 금융업 지수 역시 8월 25일과 26일 각각 1.07%, 1.34% 상승한 뒤 27일까지 강세 흐름을 이어갔다. 다만 시장이 금융주 전체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의 재평가는 단순히 ‘싸니까 산다’기보다 실적과 주주환원 능력이 확인되는 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성격이 강하다.
저PBR만으로 금융주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PB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자산과 비교하는 지표다. PBR이 1배보다 낮다면 장부상 순자산보다 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가 낮다는 의미지만, 그 자체가 저평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본을 많이 보유하고도 충분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낮은 PBR이 오히려 낮은 수익성을 반영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에서는 이 문제가 특히 중요하다. 은행과 보험사는 사업 특성상 막대한 자본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순자산 규모가 크다는 사실보다 그 자본을 활용해 얼마나 높은 이익을 만들어내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그래서 금융주 평가에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중요해진다.
KB금융의 올해 상반기 ROE는 14.09%였고, 6월 말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13.74%를 기록했다. 충분한 자본 여력을 유지하면서도 두 자릿수 ROE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자본을 쌓아두는 데 그치지 않고 이익 창출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도 같은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장기간 낮은 PBR을 유지하는 상장기업을 공표하는 제도의 세부 기준안을 공개했다. 코스피에서는 업종별 PBR 하위 25% 수준을 장기간 이어가는 기업이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저PBR 개선계획을 담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면 일정 기간 공표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낮은 PBR을 문제 삼기보다 기업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실제 행동에 나서는지를 보겠다는 취지다.
배당보다 자사주 ‘소각’이 중요해진 이유
금융주의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주주환원 정책이다.
KB금융은 2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하반기 7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기로 했다. 앞서 발표한 계획까지 포함하면 올해 전체 주주환원 규모는 약 3조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주당 1155원의 분기배당도 결정했다. 신한금융 역시 올해 10월까지 7000억원의 자사주를 추가 취득·소각하기로 했으며, 이에 따라 연간 누적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는 1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규모를 이미 넘어선다.
우리금융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상반기 순이익은 1조6090억원을 기록했고, 하반기 1500억원의 자사주를 추가로 매입·소각해 올해 전체 규모를 35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2분기 배당은 주당 220원으로 결정했다. 특히 비은행 이익 비중이 22%를 넘어서면서 은행 이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도 가시화되고 있다.
자사주 매입보다 중요한 것은 ‘소각’이다. 회사가 자사주를 사들인 뒤 보유만 하면 향후 다시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소각하면 유통주식 수 자체가 줄어든다. 기업의 전체 이익이 같더라도 주식 수가 감소하면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지고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도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금융주의 투자 포인트는 배당수익률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현금배당에 자사주 매입·소각까지 더한 총주주환원 규모와, 그것을 매년 반복할 수 있는 이익 체력을 함께 보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이유다.
은행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비은행 이익이 재평가의 열쇠
금융주의 또 다른 변화는 금융지주가 더 이상 은행 실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KB금융의 상반기 비은행 부문 이익 기여도는 44% 수준까지 높아졌다. KB증권은 2분기 448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182.1% 증가했고, KB손해보험 역시 2781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신한금융에서도 신한투자증권의 2분기 순이익이 2893억원으로 91.6%, 신한자산운용은 353억원으로 153.7% 증가했다.
이 구조는 금융주를 금리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과거 은행주는 금리가 오르면 예대금리차가 확대돼 수익성이 좋아지고, 금리가 내려가면 이자마진이 압박받는다는 단순한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증권과 보험, 자산운용 비중이 커질수록 주식시장 거래대금, 채권금리, 자산가격, 보험손익 등 다양한 변수가 그룹 전체 실적에 영향을 준다.
증시가 강하면 증권사의 브로커리지와 자산관리 수익이 늘어날 수 있고, 보험사는 금리 변화와 투자자산 평가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금융지주의 가치도 은행 순이자마진(NIM) 하나가 아니라 계열사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금융주 재평가는 단순한 금리 상승 수혜주 논리보다 더 구조적인 변화에 가깝다.
‘싼 금융주’보다 ‘자본을 잘 쓰는 금융주’를 봐야 한다
그렇다고 금융주의 재평가가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주가가 이미 크게 오른 종목이라면 과거의 낮은 밸류에이션만을 근거로 추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고, 경기 둔화나 연체율 상승이 나타날 경우 금융회사의 대손비용이 증가할 위험도 있다.
우리금융의 경우 상반기 실적이 회복됐지만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지난해 0.71%에서 0.73%로 높아졌고, NPL커버리지비율은 127.0%에서 112.9%로 낮아졌다. 신한은행의 2분기 말 연체율도 0.34%로 전분기와 전년 동기의 0.32%보다 소폭 상승했다. 실적과 주주환원만큼 자산건전성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기준금리 변화 역시 업종별로 다르게 작용한다. 높은 금리가 은행의 이자수익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면 차주의 상환 부담을 높여 부실 위험을 키울 수 있고, 채권금리 변동은 보험사와 증권사의 보유자산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
결국 앞으로 금융주를 고르는 기준은 PBR이 낮은지를 확인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ROE가 충분히 높은지, CET1 등 자본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잉여자본을 주주에게 돌려줄 수 있는지, 자사주를 실제로 소각하는지, 비은행 사업이 이익 변동성을 줄여주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금융주의 오래된 할인 요인은 낮은 성장성과 과도한 자본 축적이었다. 그러나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이 이어지고 그 이익이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정착한다면, 시장이 금융회사에 적용해온 할인율도 달라질 수 있다.
지금 금융주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핵심은 ‘싸던 주식이 오른다’는 데 있지 않다. 시장이 금융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장부가치에서 자본효율성과 주주환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앞으로 금융주 재평가가 지속될지를 가를 것도 결국 낮은 PBR이 아니라,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남는 자본을 얼마나 꾸준하게 주주에게 돌려줄 수 있느냐가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