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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생산성 정체, 근로시간보다 ‘부가가치·투자 조합’이 갈랐다…삼성전자·현대차가 보여준 반례

경제

한국의 노동생산성 정체를 두고 흔히 근로시간이 길어서인지, 투자가 부족해서인지가 맞붙는다. 최근 공식 통계와 기업 공시를 함께 보면 답은 단순하지 않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근로시간이 줄어도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상승이 기업의 매출·이익 개선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생산성 개선은 결국 근로시간 자체보다 노동 1시간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얼마나 높였는지, 그리고 그 부가가치를 설비·소프트웨어·연구개발 같은 자본투자가 얼마나 받쳐주는지에 달려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

한국생산성본부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통계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전산업 노동생산성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3.2% 올랐지만, 같은 기간 부가가치는 사실상 제자리였고 노동투입은 3.1% 줄었다. 근로자 수는 늘었지만 근로시간이 더 크게 감소해 지수가 상승한 것이다. 숫자만 보면 생산성이 개선됐지만, 그 배경은 더 많이 만들어서가 아니라 덜 일한 시간이 분모를 줄인 측면이 컸다.

반면 2026년 1분기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전산업 노동생산성지수는 1.7% 상승했는데, 이번에는 부가가치가 3.9% 늘고 노동투입도 2.2% 증가했다. 제조업은 6.6% 뛰었지만 서비스업은 0.6% 오르는 데 그쳤다. 생산성 지표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도, 2025년 1분기는 근로시간 감소의 효과가 컸고 2026년 1분기는 실제 부가가치 증가가 더 중요했다는 뜻이다.


근로시간만 줄여서는 통계는 올라가도 기업 실적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 차이는 기업 단위로 내려가면 더 선명해진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말 그대로 분자에 부가가치, 분모에 노동시간이 들어가는 지표다. 따라서 초과근무 축소, 조업일수 변화, 경기 둔화에 따른 가동시간 감소만으로도 단기 수치는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실제로 체감하는 것은 시간당 부가가치가 인건비와 감가상각비, 금융비용을 이기고 이익으로 남느냐는 문제다.

한국생산성본부의 국제비교 결과도 한국의 약점을 같은 방향으로 지적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1.1달러로 OECD 37개국 중 24위였다. 제조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6위로 높았지만 서비스업은 27위에 머물렀다. 다시 말해 한국 전체 생산성의 병목은 제조업 전반의 설비 부족이라기보다, 고부가 서비스와 무형자산 투자까지 포함한 산업구조의 불균형에 가깝다.


삼성전자, 자본장비율이 높은 기업은 시간당 부가가치도 크게 뛴다


삼성전자는 자본장비율이 높은 제조업의 전형에 가깝다.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은 333조6000억원, 영업이익은 43조6000억원이었고, 연말 임직원 수는 25만9149명이었다. 같은 시점 유형자산은 168조원, 연간 시설투자 실적은 52조7000억원이었다. 단순 환산하면 유형자산은 임직원 1인당 약 6억5000만원, 매출은 약 12억9000만원 수준이다.

이 회사의 경우 노동생산성 개선은 근로시간 조정보다 고가 설비와 기술 전환의 영향이 훨씬 크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같은 사업은 인력 1명을 더 투입한다고 바로 산출이 늘지 않는다. 공정 미세화, 수율, 고대역폭메모리 같은 고부가 제품 비중, 대규모 장비투자가 결합해야 같은 시간 안에 더 비싼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5년 연구개발비도 37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이 함께 가야 생산성이 실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자본투자가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경로를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동시에 이 사례는 근로시간 논쟁의 한계도 드러낸다. 반도체 공장의 생산성은 주 52시간제 완화 여부보다 제품 믹스와 가동률, 선단 공정 경쟁력에 훨씬 더 크게 좌우된다. 시간이 아니라 자본과 기술의 질이 생산성의 핵심 변수인 셈이다.


현대차의 반례, 투자와 매출이 늘어도 이익 생산성은 별개다


다만 자본투자를 늘린다고 생산성이 자동으로 기업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186조3000억원, 영업이익 11조4679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연결 기준 유형자산은 43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늘었고, 유형자산 취득액도 8조3668억원에 달했다. 글로벌 임직원은 12만명 이상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현대차의 차량 부문만 떼어 보면 매출은 232조8798억원으로 전년보다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7조3586억원으로 전년 11조747억원보다 줄었다. 회사도 연간 실적 발표에서 관세 등 대외 통상 불확실성이 수익성에 부담을 줬다고 설명했다. 설비를 늘리고 판매를 유지해도 원가, 환율, 통상 변수, 인센티브 경쟁이 악화하면 이익 기준 생산성은 후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반례는 자본장비율을 해석할 때 꼭 필요한 조건을 보여준다. 첫째, 자본투자는 고정비를 키우므로 가동률이 뒷받침돼야 한다. 둘째, 생산성이 높아져도 가격 결정력이 약하면 이익률은 떨어질 수 있다. 셋째, 자동차처럼 공급망과 통상 환경에 민감한 업종은 노동시간보다 외부 비용 충격이 기업 체감 생산성에 더 직접적이다.


결국 한국의 문제는 ‘덜 일하느냐 더 투자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투자하느냐다


통계를 종합하면 한국의 노동생산성 문제를 단순히 장시간 노동 탓이나 설비투자 부족 탓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단기 지표는 근로시간 감소만으로도 개선될 수 있지만, 그런 개선은 경기와 기업 실적을 오래 떠받치지 못한다. 반대로 제조업의 대규모 설비투자는 시간당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수요와 가격, 통상 환경이 맞지 않으면 수익성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남는 결론은 비교적 명확하다. 제조업에서는 설비와 연구개발의 질, 서비스업에서는 소프트웨어·데이터·브랜드·조직 역량 같은 무형자산 축적이 생산성의 본체에 가깝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최근 서비스업의 AI 전환과 무형자산 투자를 강조한 것도 이 맥락이다. 한국이 정말 개선해야 할 것은 총노동시간 자체보다 노동 1시간이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게 하는 자본배분의 방향이라고 보는 편이 기업 현실에 더 가깝다.

자료: 한국생산성본부, 2025년 1분기 전(全)산업 노동생산성 3.2% 증가(2025.6.27); 한국생산성본부,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1분기 제조업 노동생산성 6.6%↑(2026.6.30); 한국생산성본부, 한국생산성본부 노동생산성 국제비교 결과 발표(2025.9.16); 삼성전자, 2025 Business Report(2026.4.30);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 데이터(Facts & Figures, 2025년 기준); 현대자동차, Hyundai Motor Announces 2025 Annual and Q4 Business Results(2026.1.29); 현대자동차, HYUNDAI MOTOR COMPANY AND ITS SUBSIDIARIES FOR THE YEARS ENDED DECEMBER 31, 2025 AND 2024(2026년 공시); 현대자동차, 2025 Sustainabilit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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