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연동제가 있어도 현금흐름은 갈린다…아진산업·대동기어 공시로 본 구매단가의 힘
대기업과 중소·중견 협력사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제조 거래혁신이 한국에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실제 기업 재무에 미치는 효과는 제도 도입 여부보다 계약 구조와 현금흐름 구조에 더 크게 갈린다. 납품단가를 원재료 가격에 연동하는 약정이 있더라도 고객사 집중도가 높거나 선투자가 커지면 협력사의 투자 여력은 다시 차입에 의존할 수 있다. 반대로 원재료 가격이 곧바로 납품가격에 반영되는 구조를 확보한 기업은 원가 급등 충격을 줄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영업현금흐름 흑자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제도는 이미 들어왔지만, 핵심은 약정 방식과 예외조항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납품대금 연동제는 수탁기업이 위탁기업에 납품하는 물품의 주요 원재료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변동하면 그 변동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서면 약정을 맺는 제도다. 현행 안내 기준상 주요 원재료는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재료를 뜻하고, 조정요건은 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이 10% 이내 범위에서 협의해 정한다. 이 제도는 개정 상생협력법 시행에 맞춰 2023년 10월 4일부터 시행됐다.
다만 제도는 모든 거래에 일률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공개된 상생협력법 시행령 제14조를 보면 위탁기업이 소기업인 경우, 거래기간이 90일 이내인 경우, 납품대금이 1억원 이하인 경우, 당사자들이 미연동에 합의한 경우 등은 예외가 될 수 있다. 제도가 있어도 실제 현장에서 약정서에 무엇을 적고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언제 조정하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제도는 올해 한 차례 더 넓어졌다. 2026년 8월 11일부터는 하도급대금 연동제 적용대상이 주요 원재료뿐 아니라 연료·열·전기 같은 주요 에너지 비용까지 확대됐다. 제조업 협력사 입장에서는 이제 철강이나 수지뿐 아니라 전력비 급등도 단가 조정 논의의 범위로 들어오게 됐다. 다만 이 역시 새로 체결하거나 갱신하는 계약부터 적용되는 만큼 기존 거래관행을 실제로 바꾸는 속도는 업종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진산업 사례, 원재료 연동이 강하면 가격 충격은 줄지만 현금이 남는 것은 별개다
아진산업의 2026년 1분기 분기보고서는 비교적 분명한 연동 구조를 보여준다. 이 회사는 주요 원재료를 고객사의 유상사급 방식으로 공급받고, 고객사 자재관리팀이 공지한 원재료 단가를 OEM 부품 가격에 반영한다고 적시했다. 철광석과 코크스 가격, 환율 변동이 철판 가격에 영향을 주더라도 그 충격을 고객사가 1차로 흡수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실제 공시상 주요 재질의 원재료 단가는 2025년에서 2026년 1분기 사이 대체로 소폭 하락했다. 예를 들어 SABC1470은 킬로그램당 1249원에서 1239원으로, SPFC590은 1113원에서 1103원으로 내려갔다. 이 구조만 놓고 보면 협력사가 원재료 급등을 통째로 떠안는 전형적인 하청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영업현금흐름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아진산업 별도 기준 2026년 1분기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마이너스 99억4794만원,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마이너스 412억3019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플러스 332억5413만원으로 집계됐다. 원재료 가격 연동이 비교적 명확해도 운전자본 변동과 세금 납부, 대규모 투자 집행이 겹치면 영업에서 남는 현금이 곧바로 투자 재원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사례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협력사의 손익 방어에는 도움을 줄 수 있어도 투자 여력까지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협력사가 신규 공장, 설비, 해외 거점에 선행 투자를 확대하는 국면에서는 가격 연동보다 자금조달 구조가 더 직접적인 변수가 된다. 제조 거래혁신이 단가 조정 조항 하나로 완결되지 않는 이유다.
대동기어 사례, 연동제가 있어도 협상력이 약하면 투자재원은 다시 차입으로 돌아간다
대동기어 공시는 다른 한계를 보여준다. 이 회사는 2026년 4월 증권신고서에서 자동차용 원소재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원소재 가격 연동제를 운영하고 있어 원재료 가격 변동을 납품단가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소수 매출처에 편중된 구조 탓에 공급가격 협상력이 낮아 급격한 원재료 가격 상승이 생기면 상승분을 전방업체에 완전히 전가하기 쉽지 않다고도 적었다.
숫자도 그 한계를 뒷받침한다. 이 회사의 매출액 대비 재료비 비중은 2023년 55.47%, 2024년 57.31%, 2025년 51.32%였다. 최근 3년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150억8100만원, 56억1200만원, 96억3400만원으로 모두 플러스였다. 문제는 투자 구간이었다.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같은 기간 마이너스 67억3800만원, 마이너스 107억6200만원, 마이너스 262억1600만원으로 확대됐고, 회사는 이를 차입금과 사채, 전환사채 발행 등 재무활동으로 메웠다고 밝혔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채권 회수 자체는 아주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동기어 공시는 2025년 매출채권 회전일수가 58.05일로 제시했고, 회사가 인용한 한국은행 업종 평균 65.06일보다 짧았다. 납품대금을 아예 못 받는 회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설비투자 속도가 빨라지면 영업현금만으로는 버티기 어렵고, 이 경우 투자 여력은 결국 구매단가 협상력보다 차입 가능성에 더 크게 좌우된다.
결국 한국 제조 거래혁신의 쟁점은 단가 공식보다 현금 전환 속도다
두 회사를 같이 놓고 보면 반례와 공통점이 함께 보인다. 아진산업은 원재료 가격이 OEM 가격에 비교적 직접 반영되는 구조를 갖췄지만, 그 자체로 영업현금흐름 흑자가 보장되지는 않았다. 대동기어는 영업현금흐름이 플러스였고 원소재 가격 연동제의 완충 효과도 일부 누렸지만, 고객사 집중과 설비투자 부담 때문에 투자재원은 다시 부채 조달에 의존했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조 거래혁신이 한국에서 어렵냐는 질문에는, 제도 자체보다 현장 집행이 더 어렵다는 답이 가깝다. 첫째, 주요 원재료와 에너지 비용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지표로 연동할지 계약서에 세밀하게 적어야 한다. 둘째, 원재료 연동과 별개로 매출채권 회수 기간과 선투자 부담을 줄여야 협력사의 현금이 실제 투자 여력으로 남는다. 셋째, 1차 협력사까지만 연동이 작동하고 2·3차 협력사로 내려가지 않으면 가치사슬 하단의 투자 여력 개선은 제한적일 수 있다.
결국 납품단가 연동제의 성패는 발표가 아니라 현금흐름표에서 확인된다. 단가가 오르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조정이 얼마나 빨리 매출채권 회수와 영업현금 유입으로 이어지고 그 현금이 차입 상환이 아니라 설비와 연구개발 투자로 남는가다. 한국 제조업의 거래혁신은 이미 제도 문턱은 넘었지만, 협력사의 투자 여력을 바꾸는 단계까지 가려면 연동 약정의 실효성과 공급망 아래단까지의 전파가 함께 검증돼야 한다.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납품대금연동제 개념 안내(열람일 2026년 10월 22일); 중소벤처기업부, 개정 상생협력법 시행 보도자료(2023년 10월 3일); 국가법령정보센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4조(시행 2026년 7월 1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하도급대금 연동제 적용대상이 확대됩니다(2026년 7월 1일 게시); 아진산업, 분기보고서(제49기 1분기, 2026년 5월 15일); 대동기어, 증권신고서(지분증권, 2026년 4월 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