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조업인데 임금은 왜 갈리나…납품단가보다 큰 것은 규모와 생산성의 격차
제조업 안의 임금 격차를 원청과 하청의 도덕 문제만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숫자를 놓치게 된다. 최근 고용노동부의 2025 회계연도 기업체노동비용조사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10인 이상 기업체에서 300인 미만의 노동비용은 300인 이상의 64.7% 수준이었다. 전년보다 격차가 3.6%포인트 더 벌어졌다는 점은, 제조업 내부의 임금 차이가 단순한 업종 차이보다 기업 규모와 지불능력의 차이와 더 강하게 맞물려 있다는 뜻에 가깝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로 정부는 납품대금 연동제를 도입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설명대로 개정 상생협력법은 2023년 1월 3일 공포됐고 같은 해 10월 4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다만 이 제도는 주요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 그 변동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한 장치다. 원재료 급등이 협력업체 수익성을 잠식하는 문제에는 대응하지만, 임금 격차 전체를 자동으로 줄이는 장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완성차와 부품사의 숫자가 보여주는 것
현대자동차의 2025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종업원급여는 8조5590억원, 원재료비는 50조4050억원이었다. 같은 보고서에 적시된 매출액은 79조610억원, 영업이익은 6조5990억원이다. 계산하면 매출 대비 종업원급여 비중은 약 10.8%, 원재료비 비중은 약 63.8%, 영업이익률은 약 8.3%다. 완성차 업체는 높은 매출 규모와 브랜드력, 제품 믹스, 수출 비중을 바탕으로 큰 인건비를 감당하면서도 이익과 투자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자동차 제조 생태계 안에서도 1차 협력사들은 사정이 다르다. HL만도의 2024년 연결 매출은 8조8482억원, 영업이익은 3588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약 4.1%였다. 서연이화의 2024년 연결 매출은 4조415억원, 영업이익은 1544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약 3.8%였다. 완성차보다 이익률이 낮아도 두 회사가 공시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공개한 국내 기준 1인 평균 급여액은 각각 1억700만원, 1억1300만원으로 적지 않았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하청이라고 해서 모두 저임금인 것은 아니고, 원청이라고 해서 언제나 압도적으로 높은 임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글로벌 생산거점, 자체 기술 비중, 고객 다변화, 품질 인증과 개발 역량을 갖춘 대형 1차 협력사는 임금 수준을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자동차 부품업 안에서도 규모가 작고 특정 고객사 의존도가 높은 업체는 그만한 여력이 없다.
납품단가만 올린다고 임금이 바로 따라오지 않는 이유
납품대금 연동제는 이름 그대로 원재료 가격 변동분을 거래가격에 반영하는 장치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제시한 시행 틀에서도 핵심은 주요 원재료가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가격이 약정한 범위 이상 변동할 때 조정한다는 데 있다. 즉 이 제도는 철강, 수지, 알루미늄처럼 눈에 보이는 투입비 급등을 흡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임금은 원재료와 다르다. 임금을 올리려면 일회성 원가 보전이 아니라 지속적인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필요하다. 생산성이 낮고 수주 단가 결정권이 약한 업체는 원재료 연동 혜택을 받더라도 그 돈을 곧바로 기본급 인상으로 돌리기 어렵다. 먼저 영업이익 방어, 차입 부담 완화, 설비 유지, 품질 대응 비용 보전에 쓰일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자동차처럼 품질 클레임 비용과 설비투자 부담이 큰 업종은 납품단가가 조금 조정됐다고 해서 인건비 정책이 즉각 달라지지 않는다. 완성차는 판매가격과 차종 믹스, 해외 생산, 금융과 브랜드 효과까지 동원해 수익을 만들 수 있지만, 협력사는 정해진 사양과 납기 안에서 원가 절감과 불량률 관리로 이익을 내야 한다. 같은 제조업이라는 분류만으로 임금 수준을 같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반례도 있다…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단순 구도로는 부족
임금 격차를 설명할 때 흔히 원청과 하청을 수직 신분 구조처럼 말하지만, 실제 공시는 그보다 복잡하다. HL만도와 서연이화처럼 대형 1차 협력사는 영업이익률이 완성차보다 낮아도 국내 평균 급여 수준이 상당히 높다. 이는 가치사슬 안에서 어느 단계에 있느냐만큼이나 기술 난도, 해외 매출, 고객 다변화, 자동화 수준이 임금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반대로 더 작은 부품사는 같은 자동차 부품업이어도 급여 수준이 크게 낮아진다. 화신의 2024년 반기보고서에는 2024년 6월 30일 기준 직원 245명, 1인 평균 급여액 3100만원이 적시돼 있다. 반기 누적 수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대형 1차 협력사와의 격차가 분명하다는 사실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결국 제조업의 임금 차이는 원청이 비용을 덜 나눠줘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고 누가 가격 결정권을 쥐며 누가 투자 여력을 확보하느냐의 차이에서 함께 만들어진다. 납품단가가 중요한 변수인 것은 맞지만, 기업 규모와 생산성, 기술 내재화 정도를 빼고 보면 설명이 절반만 남는다.
기업과 정책이 실제로 건드려야 할 지점
기업 측면에서는 원재료 가격 연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장기 공급계약에서 금형비, 물류비, 인증비, 설비투자비까지 포함한 원가 구조를 어떻게 나눌지 더 세분화해야 한다. 수주 경쟁이 심한 업종일수록 단가 인하 압력이 임금과 투자 축소로 전가되지 않도록 계약 구조를 손보는 일이 중요하다.
정책 측면에서는 두 갈래가 함께 가야 한다. 하나는 이미 시행 중인 납품대금 연동제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약정서 작성과 예외 사유의 남용 여부를 점검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생산성 격차 자체를 줄이는 투자다. 자동화, 공정개선, 공동개발, 해외 고객 다변화, 숙련 인력 양성 없이는 임금 격차를 행정적으로만 줄이기 어렵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현대판 신분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현재의 확인 가능한 답은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제조업 내부의 격차는 분명 크지만, 그 격차는 법적 지위 하나로 고정된 것이라기보다 거래조건과 생산성, 투자능력, 시장지배력의 차이에서 재생산된다. 노동 격차를 줄이려면 원하청 거래 개선과 함께 중소·중견 제조업체가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산업정책이 같이 가야 한다.
자료: 고용노동부, 2025 회계연도 기업체노동비용조사 결과 발표(2026.09.30); 중소벤처기업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국무회의 통과 보도자료(2022.12.27); 현대자동차, 2025 지속가능성 보고서(2025); 현대자동차, 2023 영업보고서(2024.03.06); HL만도, 제11기 사업보고서(2025); HL만도, 재무정보(2026년 10월 확인); 서연이화,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2025); 서연이화, 재무정보(2026년 10월 확인); 화신, 반기보고서(202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