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력 확대, 제조업 인건비를 바로 누르지 않는다…대기업은 자동화, 협력사는 인력 숨통
정부가 2025년 12월 22일 확정한 2026년 고용허가제(E-9) 운용계획의 핵심은 제조업 몫 확대와 비수도권 완화다. 2026년 E-9 도입 규모는 8만명이고, 이 가운데 업종별 쿼터 7만명 중 제조업에 5만명이 배정됐다. 비수도권 제조업체의 추가고용 한도는 20%에서 30%로 올라갔고, 2025년 말까지 한시 운영되던 조선업 별도 쿼터는 제조업 쿼터로 다시 통합됐다. 다만 이 변화가 곧바로 상장 제조사의 인건비를 낮추는 신호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수혜의 1차 도착지는 대형 완성업체보다 중소 협력사와 지방 공장이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의 적용 대상을 보면 이유가 더 분명해진다. 제조업 E-9 고용허가는 원칙적으로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 사업장이 대상이다. 예외가 있더라도 중소기업, 비수도권 뿌리산업 중견기업, 비수도권 제조업 유턴기업 등으로 한정된다. 즉 외국인력 확대의 직접 효과는 대형 상장 제조업체 본사 재무제표보다 그 아래 공급망의 구인난, 납기, 외주단가, 생산차질 위험을 먼저 건드릴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고용허가 확대가 먼저 바꾸는 것은 대기업 인건비보다 협력사 병목
이 점은 조선업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정부는 2026년 계획에서 조선업 별도 쿼터를 종료하면서도 제조업 쿼터 안에서 동일하게 외국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통해 조선업 인력수급을 상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초점이 대형 조선사 자체의 임금 절감보다 현장의 인력 병목 완화에 있다는 뜻이다.
상장 대형사인 HD현대중공업이나 한화오션의 경우에도 실제 생산현장은 사내 인력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블록, 도장, 배관, 의장 등 다층 하도급 공정의 인력 수급이 납기와 원가를 좌우한다. 외국인력 확대가 이들 협력사의 미충원 공백을 줄이면 대형사는 직접 인건비가 아니라 외주가공비 급등, 공기 지연, 재작업 비용 같은 간접비 압박을 덜 수 있다. 반대로 허용 인원이 늘어도 숙련도와 정착률이 따라오지 않으면 대형사 손익계산서에는 기대만큼 빨리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이 보여주는 신호, 외국인력과 별개로 자동화 투자는 계속 간다
HD현대중공업 계열은 외국인력 확대와 무관하게 자동화 투자를 중장기 전략으로 못 박아 둔 상태다. HD한국조선해양과 조선 자회사들은 2030년까지 스마트 조선소 구축 프로젝트인 FOS를 공동 추진하고 있으며, 2026년까지 2단계인 ‘연결되고 예측되어 최적화된 조선소’, 2030년까지 3단계인 ‘지능형 자율운영 조선소’를 구현해 생산성과 공기를 각각 30% 개선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룹 사보에는 HD현대중공업이 2030년까지 FOS 구축과 관련 생산설비 도입에 32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이 수치는 외국인력 확대가 곧 자동화 축소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조선소 자동화의 목적은 단순한 인건비 절감이 아니라 공정 예측, 안전, 품질 균일화, 납기 단축에 가깝다. 사람을 더 구하기 쉬워져도 고난도 용접, 물류 이동, 작업지시 최적화, 야드 시뮬레이션 같은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외국인력은 생산을 멈추지 않게 하는 완충장치이고, 자동화 CAPEX는 생산방식을 바꾸는 구조 투자라는 점에서 둘은 대체재보다 보완재에 가깝다.
한화오션도 같은 방향, ‘스마트야드’는 인력 대체보다 생산성 재설계
한화오션의 2025년 1분기 실적발표 자료도 비슷한 메시지를 낸다. 회사는 스마트야드 항목에서 ‘자동화 기반의 압도적 생산성을 보유한 조선소’로의 전환을 목표로 제시했고, 디지털로 연결된 자동화 조선소, 3D 작업환경의 로봇·자동화 대체, 빅데이터 기반 작업지시 등을 설명했다. 이 역시 외국인력 정책과 별개로 자본배분의 방향이 이미 자동화 쪽으로 고정돼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력 확대는 인력 부족의 급한 불을 끄는 수단이고, 스마트야드 투자는 수주 확대 국면에서 더 많은 물량을 같은 공간과 시간 안에 처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특히 조선업처럼 공정이 길고 공종이 복잡한 업종에서는 단순 인원 충원만으로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 결국 대형 조선사의 CAPEX는 외국인력 유입 속도보다 수주잔량, 공정 병목, 안전 규제, 생산성 목표에 더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반례도 있다…식품제조업은 외국인력 확대가 자동화보다 임금 완충으로 작동할 수 있다
외국인력 확대가 모든 제조업에서 자동화 투자를 자극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6년 7월 내놓은 식품산업 연구에 따르면 식료품제조업은 다른 제조업보다 자본-노동 대체탄력성이 낮아 임금이 높아져도 자본으로 노동을 대체하는 정도가 제한적이다. 자동화 도입은 확대되고 있지만 노동을 기계로 바꾸는 수준은 아직 낮고, 앞으로도 상당한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 업종에선 외국인력 확대가 CAPEX 확대의 신호라기보다 인건비 급등과 구인난을 완화하는 장치로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지방의 중소 식품업체는 자동화 투자 여력보다 채용 자체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같은 제조업이라도 조선처럼 디지털 전환과 대규모 설비투자가 병행되는 업종과, 식품처럼 자동화 가능 범위가 제한적인 업종을 같은 잣대로 보면 정책 효과를 오독하게 된다.
투자자가 봐야 할 것은 ‘임금 하락’이 아니라 비용 구조의 분기점
정리하면 2026년 외국인력 확대는 제조업 전반의 인건비를 일괄적으로 낮추는 정책이라기보다, 공급망의 급한 인력 병목을 완화해 생산차질 비용을 줄이는 정책에 가깝다. 대형 상장 제조사에서는 외국인력 확대가 직접 인건비 절감보다 협력사 조달 안정, 납기 정상화, 외주단가 급등 완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자동화 CAPEX는 이미 별도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 조선 대형사들이 외국인력 완화와 동시에 스마트야드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다.
따라서 기업 영향을 판단할 때는 외국인 고용허가 확대와 CAPEX를 같은 축에서 단순 비교하기보다, 어느 업종에서 외국인력이 직접 투입되는지, 대체탄력성이 높은지, 상장사의 비용이 직접비인지 외주비인지부터 갈라봐야 한다. 외국인력 확대는 모든 제조업의 자동화 투자를 늦추는 신호도, 반대로 모든 업종의 임금을 눌러 수익성을 곧바로 끌어올리는 신호도 아니다. 2026년에는 대기업의 공장보다 협력사 라인에서 먼저 효과가 나타나고, 업종에 따라서는 자동화보다 고용 유지의 안전판 역할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자료: 고용노동부, 2026년 외국인력(E-9) 도입·운용 계획안 관련 보도자료(2025.12.22); 고용24 외국인고용관리시스템, 사업장 규모별 구인인원 소개(2026년 기준 확인);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고용허가서 발급이 가능한 허용업종 FAQ(2026년 기준 확인); 국가데이터처, 2025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2025.12.18 발표); HD현대중공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5 및 HD현대중공업 가족 2023년 9월호; 한화오션, 2025년 1분기 실적발표 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식품시장 대응과제(2차년도) 관련 보도자료(202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