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수출 270% 급증에도 주가는 뒷걸음…반도체 시장, ‘실적 전망치 상향’
DRAM 수출 550% 늘고 가격 상승 지속…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4주 연속 시장 하회
빅테크 AI 투자와 장기 공급계약이 실적 가시성 좌우…소부장주는 차익실현 충격 확대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실적과 주가의 방향이 엇갈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수출과 제품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종목의 주가는 글로벌 경쟁사보다 큰 폭으로 조정받았다.
수출 데이터만 보면 메모리 업황의 회복을 의심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장은 현재 실적보다 앞으로의 이익 증가 속도에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실적 발표에서 장기 공급계약과 가격 전망, 설비투자, 주주환원 정책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하느냐가 반도체 업종의 다음 방향을 결정할 전망이다.
하나증권이 27일 발간한 반도체 및 소부장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7월 20일까지 집계된 영업일 평균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12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70% 증가했다. DRAM 수출액은 6억7000만달러로 550% 늘었고, NAND는 7000만달러로 266% 증가했다.
복합메모리반도체인 MCP 수출액은 3억6000만달러로 99%, SSD는 1억4000만달러로 316% 증가했다. 특히 DRAM 수출 증가율은 6월보다 확대됐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월간 수출 증가 폭도 다시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수출 증가에서 주목할 부분은 물량보다 가격이다. 보고서에 수록된 수출 단가 추이를 보면 DRAM과 NAND, DRAM 모듈, SSD, MCP의 평균수출가격이 2026년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 수출 단가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움직였다.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 급증이 출하량 확대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제품 가격 상승을 동반하고 있다는 의미다. DRAM과 NAND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 증가보다 영업이익 개선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메모리 산업은 고정비 비중이 높아 제품 가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추가 매출의 상당 부분이 이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출과 가격은 상승했지만 국내 반도체주의 움직임은 반대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1.9% 하락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2%, 4.5% 내렸다. 두 종목은 4주 연속 시장 수익률을 밑돌았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뚜렷하다. 미국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은 주간 기준 1~2% 상승했고, 마이크론은 8% 넘게 올랐다. 대만 TSMC도 2%대 상승세를 나타냈다. 국내 반도체주의 상대적 약세가 업황 악화보다 수급과 투자심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적이 좋아지는 국면에서도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은 시장의 기대 수준이 이미 높아졌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주가가 108.1%, SK하이닉스는 170.2%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SK하이닉스의 조정 폭이 더 컸던 것도 연초 이후 상승률과 밸류에이션 부담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메모리 기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지난 분기 실적보다 향후 실적 전망치에 집중되고 있다. 현재 메모리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공급 부족인지, AI 데이터센터 수요를 기반으로 한 장기 사이클인지에 따라 기업가치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 투자가 지속되려면 빅테크 기업의 자본적지출과 수익화가 동시에 확인돼야 한다. 구글은 AI 관련 사업의 양호한 실적을 바탕으로 자본적지출 전망을 상향했다. 잉여현금흐름은 적자로 전환했지만, 회사는 AI 투자 확대와 향후 수익화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했다.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메타 역시 같은 방향의 투자 계획을 제시하는지 확인하려 하고 있다. 한 기업의 투자 확대보다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가 모두 AI 인프라 투자를 이어간다는 신호가 메모리 수요의 지속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와 서버용 DRAM, 기업용 SSD 수요는 전통적인 PC·스마트폰 수요보다 제품 단가와 수익성이 높다. 빅테크의 설비투자가 유지되면 메모리 업체는 범용 제품 가격 상승과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 확대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보고서가 실적 전망치 상향 여부를 분수령으로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객사와 체결한 장기 공급계약 규모와 가격 조건, 2027년까지의 공급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시장이 현재 가격 상승을 중장기 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에는 메모리 가격 상승의 영업 레버리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나증권은 SK하이닉스의 2026년 매출액을 374조5980억원, 2027년을 543조3300억원으로 추정했다. 2026년 DRAM과 NAND 평균판매가격 상승률은 각각 186%, 261%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2026년 영업이익은 293조8500억원, 영업이익률은 78%로 추정됐다. 2027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435조750억원, 영업이익률은 80%에 달한다. 보고서의 추정치가 현실화하려면 높은 메모리 가격과 AI 수요, 우호적인 환율이 함께 유지돼야 한다.
설비투자는 업황 회복의 지속 가능성과 공급 과잉 위험을 동시에 보여준다. 보고서의 2026년 전망 그래프를 보면 글로벌 DRAM 설비투자는 2025년에 이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RAM 투자도 과거 고점을 웃도는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NAND 설비투자는 DRAM보다 완만한 증가세가 예상됐다. AI 서버용 고성능 메모리에 투자가 집중되고, 수익성이 낮았던 범용 NAND 증설에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산능력 전망에서도 제품별 차이가 나타난다. 삼성전자의 DRAM 생산능력은 2024년 1분기 월 53만5000장에서 2026년 4분기 74만장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기간 NAND 생산능력은 월 36만장에서 한때 56만장까지 증가한 뒤 2026년 4분기 31만장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도 DRAM 생산능력은 2024년 1분기 월 36만8000장에서 2026년 4분기 61만장으로 늘어나지만, NAND는 13만5000장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다. 양사가 범용 NAND보다 DRAM과 고부가가치 메모리에 자원을 집중하는 구조가 분명해지고 있다.
반도체 소부장주는 메모리 대형주보다 더 큰 변동성을 보였다. 코스닥은 한 주간 5.5% 떨어졌으며 주요 반도체 공정장비 업체의 주가는 20~30% 하락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25.0%, 피에스케이는 26.4%, 테스는 30.0%, 브이엠은 32.3% 내렸다.
이들 기업의 주가 하락은 실적 둔화가 확인된 결과보다 연초 이후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성격이 강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연초 이후 409%, 피에스케이는 290%, 테스는 205.5% 상승한 상태였다. 실적 기대가 주가에 빠르게 반영된 상황에서 시장 전체의 위험 회피가 나타나자 장비주가 우선적인 매도 대상이 된 셈이다.
다만 장비와 소재 기업의 주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높은 상승률과 밸류에이션을 기록했던 공정장비 업체의 하락 폭이 컸던 반면, 연초 이후 주가 상승이 제한됐던 소재와 소모품 기업은 상대적으로 낙폭이 작았다. 반도체 소부장 업종 내부에서도 실적 가시성과 주가 선반영 정도에 따른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국내 반도체주의 반등 여부는 수출 증가율보다 기업이 제시하는 미래 수치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메모리 수출과 가격 상승은 이미 확인됐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이 흐름이 2027년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근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장기 공급계약, HBM 생산능력, 범용 DRAM 가격, 설비투자 계획을 통해 실적 전망의 상단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이 더해져야 높은 실적 변동성과 대규모 투자를 감수할 투자 명분이 강화될 수 있다.
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수요 회복의 존재보다 회복의 지속 기간을 검증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메모리 수출이 세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주가가 조정을 받았다는 점은 업황과 시장 기대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실적 전망치가 추가로 올라가면 현재 조정은 수급에 따른 가격 재조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대로 빅테크의 투자 속도나 메모리 기업의 공급계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높은 이익 전망이 다시 낮아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