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 실적보다 ‘기대치’가 문제였다…삼성전자·SK하이닉스 동반 급락

미국 브로드컴발 충격이 국내 반도체 대형주로 번졌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신호는 유지됐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수준의 추가 상향 전망이 나오지 않으면서 투자심리가 빠르게 위축됐다. 최근 급등세를 이어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5일 장 초반 큰 폭으로 하락하며 코스피 전반의 변동성을 키웠다.
이날 오전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는 5%대, SK하이닉스는 7%대 약세를 보였다. 두 종목은 AI 반도체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기대를 바탕으로 강한 상승 흐름을 이어왔지만, 미국 기술주 조정과 브로드컴 주가 급락이 겹치면서 차익 실현 매물이 한꺼번에 출회된 것으로 풀이된다. AP통신도 브로드컴의 실망스러운 전망 이후 미국 AI·기술주 매도세가 아시아 시장으로 확산됐고, 한국 증시에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전했다.
이번 조정의 출발점은 브로드컴의 실적 발표였다. 브로드컴은 회계연도 2분기에 매출 222억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했다고 밝혔다. 조정 EBITDA도 152억달러로 매출의 69% 수준을 기록하며 수익성 자체는 견조했다. 시장이 실망한 대목은 실적 부진이 아니라 향후 AI 반도체 매출 전망이 기존 기대를 충분히 뛰어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서 브로드컴은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AI 반도체 매출이 전년 대비 106% 증가했고, 2분기 AI 반도체 매출이 10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즉 AI 인프라 수요 자체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시장은 AI 반도체 기업에 대해 매 분기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률과 가이던스 상향을 요구해왔고, 브로드컴이 그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주가가 급락한 것으로 해석된다.
브로드컴 주가 하락은 국내 반도체주에 민감하게 반영됐다. 브로드컴은 맞춤형 AI 가속기와 네트워크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브로드컴의 전망은 엔비디아뿐 아니라 HBM, D램, 파운드리, 반도체 장비 등 AI 공급망 전반의 투자심리를 가늠하는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직접적으로 브로드컴 실적에 좌우되는 구조는 아니지만, AI 반도체 밸류체인에 대한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가 약해지면 함께 매도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선두권 지위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AI 반도체 대표 수혜주로 분류돼 왔다. 상승 폭이 컸던 만큼 글로벌 AI 관련주의 조정 국면에서는 차익 실현 강도도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HBM 경쟁력 회복과 메모리 업황 개선 기대가 주가에 반영돼온 상황에서, AI 반도체 투자심리가 흔들리자 동반 약세를 피하지 못했다.
다만 이번 급락을 곧바로 AI 반도체 업황의 구조적 둔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브로드컴의 매출과 이익은 여전히 고성장 흐름을 보였고, AI 반도체 수요도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실적의 방향이 아니라 주가에 반영된 기대 수준이다. 최근 AI 반도체 관련주는 실적 개선뿐 아니라 ‘예상보다 더 빠른 성장’을 전제로 밸류에이션이 높아졌기 때문에, 전망치가 시장 컨센서스를 조금만 밑돌아도 주가 반응이 과격해질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조정을 AI 산업의 성장성 훼손보다는 단기 과열 해소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맞춤형 AI 칩과 HBM 수요도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단기간 급등한 주가, 외국인 수급 변화, 원·달러 환율 상승, 미국 기술주 변동성이 겹치면 국내 반도체주 역시 높은 변동성을 감수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브로드컴과 엔비디아 등 미국 AI 반도체주의 조정이 일시적 차익 실현에 그칠지 여부다. 둘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HBM 공급 확대와 수익성 개선이 시장 기대에 부합할지다. 셋째,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반도체주 매도세가 진정될지 여부다. 최근 글로벌 펀드 일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대형 기술주 비중 부담으로 다른 종목으로 자금을 분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와 수급 측면의 부담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