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이제 맛보다 ‘공장’이 승부처다…정부, AI 스마트제조 전환 시동
-중기부·농식품부·식약처, ‘K-푸드 스마트제조 얼라이언스’ 출범
-식품 제조기업 스마트공장 지원 비중 16%, AI 도입 0.9% 그쳐
-개별 기업 지원에서 업종·공정별 데이터 기반 지원으로 전환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외형을 키우는 사이, 정작 국내 식품 제조 현장의 디지털 전환은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라면, 과자, 소스, 냉동식품 등 한국 식품의 수출 경쟁력은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생산 현장에서는 여전히 숙련공의 감각과 수작업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식품 제조업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과 제조데이터를 접목한 스마트공장 확산에 나선 이유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AI+ 똑똑한 공장쇼 2026’을 계기로 ‘K-푸드 스마트제조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켰다. 이번 얼라이언스는 식품 제조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마트제조 기술기업, 전문기관이 참여하는 민관 협력 플랫폼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식품산업의 생산·품질·위생관리 전반에 AI와 데이터를 결합하고, K-푸드 제조혁신의 대표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정책의 배경에는 K-푸드 수출 확대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5년 K-푸드 플러스 수출액은 잠정 기준 136억2000만달러로 전년보다 5.1% 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농식품 수출은 104억1000만달러, 농산업 수출은 32억2000만달러로 각각 집계 이래 최고 수준이었다. 라면, 소스류, 아이스크림, 신선 과일 등 주요 품목이 해외 시장에서 성장하면서 K-푸드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수출의 속도와 제조 현장의 전환 속도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이날 식품 제조기업 가운데 스마트공장 지원을 받은 곳이 16%에 불과하고, AI 도입 비중은 0.9% 수준이라고 밝혔다. 다른 제조업과 비교해 식품업계의 AI 전환이 더딘 이유는 식품 제조 공정의 특수성 때문이다. 반도체나 자동차 부품처럼 정해진 규격의 원자재를 반복 가공하는 산업과 달리, 식품은 원료의 수분, 당도, 점도, 크기, 숙성도, 온도 변화에 따라 결과물이 쉽게 달라진다.
이 때문에 식품 제조 현장의 AI 도입은 단순 자동화보다 어렵다. 같은 반죽이라도 계절과 습도에 따라 상태가 달라지고, 같은 농산물 원료라도 산지와 수확 시기에 따라 품질 편차가 발생한다. 숙련공이 손끝 감각과 경험으로 조정해온 작업을 데이터로 바꾸지 않으면 AI가 학습할 기반 자체가 부족하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제조데이터 구축’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중기부는 이번 얼라이언스를 통해 기존의 개별 기업 단위 스마트공장 지원에서 벗어나 업종별·공정별 협력 모델로 정책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그동안 스마트공장 사업은 기업 한 곳이 신청하고, 해당 기업의 설비와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식품업처럼 유사한 공정과 품질 관리 문제를 공유하는 산업에서는 개별 기업마다 따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만으로는 확산 속도와 효율에 한계가 있다. 앞으로는 소스, 제과, 냉동식품, 육가공, 건강기능식품 등 업종별 공정 데이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공통 솔루션을 만들어 여러 기업이 함께 활용하는 구조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정부 부처별 역할도 나뉜다. 중기부는 AI 기반 스마트제조 대표 모델과 수출지향형 스마트공장 구축을 맡는다. 농식품부는 농축산물 생산부터 유통, 외식, 소비까지 이어지는 식품 가치사슬의 효율화를 지원한다. 식약처는 스마트 해썹(HACCP) 등록과 스마트 GMP 현장 적용을 통해 식품 제조공장의 생산정보 자동화 체계 구축을 뒷받침한다. 식품산업의 경쟁력이 단순히 생산량 확대가 아니라 안전성, 균일한 품질, 해외 인증 대응 능력에 달려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현장의 필요성은 이미 뚜렷하다. 식품 제조 중소기업은 인력난, 숙련공 고령화, 원가 상승, 품질 편차, 위생관리 부담을 동시에 겪고 있다. 수출이 늘수록 해외 바이어는 더 엄격한 품질 균일성과 납기, 이력관리 자료를 요구한다. 제품 하나가 해외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더라도, 대량 생산 과정에서 맛과 품질이 흔들리면 브랜드 신뢰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결국 K-푸드의 다음 경쟁력은 ‘레시피’가 아니라 ‘레시피를 흔들림 없이 구현하는 제조 시스템’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제조가 제대로 작동하면 효과는 생산성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원료 입고부터 배합, 가열, 냉각, 포장, 출하까지 데이터를 연결하면 불량 발생 원인을 빠르게 추적할 수 있다. 온도와 습도, 배합 비율, 설비 진동, 작업 시간 등 공정 변수와 제품 품질을 함께 분석하면 불량을 사후에 걸러내는 방식에서 사전에 예측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식품 안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어느 원료와 어느 공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추적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중기부가 앞서 추진해온 자율형공장 사업도 이번 식품 제조혁신의 기반으로 거론된다. 중기부는 표준 데이터, AI, 디지털트윈을 활용해 생산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제어하고 불량률 감소와 안전사고 예방을 돕는 자율형공장 구축을 지원해왔다. 이 같은 모델을 식품 제조업에 맞게 변형하면, 원료 편차가 큰 식품 공정에서도 AI가 최적 조건을 제안하고 생산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다.
다만 과제도 만만치 않다. 식품 중소기업 다수는 설비 투자 여력이 크지 않고, 공정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모아본 경험도 부족하다. 기존 설비가 노후화된 곳은 센서 설치와 데이터 수집 단계부터 비용 부담이 생긴다. AI 솔루션을 도입하더라도 현장 작업자가 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 표준이 제각각이면 기업 간 공동 활용도 어렵다. 스마트공장 구축이 일회성 장비 구매나 소프트웨어 설치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데이터의 품질이다. AI는 현장의 경험을 대체하는 마법이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을 돕는 도구다. 원료 상태와 공정 조건, 결과 품질을 꾸준히 기록하고, 불량과 정상 제품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식품 제조업에서 제조데이터 구축은 단순한 디지털 기록이 아니라 숙련공의 암묵지를 산업 전체의 자산으로 바꾸는 작업에 가깝다.
이번 얼라이언스가 성공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도 중요하다. 대기업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자동화와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춘 경우가 많지만, 협력 중소기업의 제조 역량이 따라오지 못하면 공급망 전체의 품질과 납기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공정 표준, 품질 기준, 수출 대응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스마트제조 기술기업에는 식품업 특화 솔루션을 개발할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정부가 이 모델을 K-푸드에 먼저 적용하려는 것은 산업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식품은 소비재이면서도 농업, 물류, 포장, 외식, 유통, 콘텐츠 산업과 연결돼 있다. K-푸드가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릴수록 국내 농축산물 수요, 지역 식품기업의 성장, 포장재·물류·마케팅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조 현장의 생산성과 품질 관리 능력이 높아지면 단순 수출 확대를 넘어 고부가가치 브랜드 산업으로 성장할 여지가 커진다.
올해 1분기에도 K-푸드 플러스 수출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농식품부 발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K-푸드 플러스 수출액은 33억514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5% 늘었고, 농식품 수출은 25억6220만달러로 4.0% 증가했다. 라면, 과자, 음료,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이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수출이 늘어나는 만큼 안정적인 대량 생산과 품질 균일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결국 K-푸드 스마트제조 얼라이언스의 핵심은 ‘공장을 수출 경쟁력의 일부로 보겠다’는 데 있다. 과거 K-푸드의 경쟁력이 맛, 한류 콘텐츠, 브랜드 마케팅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제조데이터와 AI 기반 생산체계가 경쟁력의 새로운 축이 될 수 있다. 해외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한 번 맛있는 제품이 아니라 어디서 사도 같은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제품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데이터이고,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한성숙 장관의 발언은 그래서 단순한 스마트공장 보급률 지적을 넘어선다. 식품 제조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률 16%, AI 도입률 0.9%라는 숫자는 K-푸드 산업이 아직 풀지 못한 숙제를 보여준다. 세계 시장에서 K-푸드의 인기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국내 제조 현장이 그 인기를 안정적인 공급 능력과 글로벌 품질 신뢰로 바꿀 수 있느냐다. 정부의 이번 얼라이언스는 그 답을 찾기 위한 첫 공동 실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