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토큰화 증권 밀어도 ‘무규제 코인’은 아니다…FCA가 그은 자본시장 혁신의 선
토큰화는 기술 방식의 변화일 뿐, 증권 규제와 투자자 보호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영국 FCA는 경쟁력 강화와 함께 신뢰·시장무결성·높은 기준을 성장의 전제로 다시 확인했다
디지털 국채와 토큰화 펀드 논의도 ‘완화’보다 제도권 편입과 규제 명확화에 무게가 실린다
영국의 증권 토큰화는 가상자산 규제완화와 같은 의미로 보기 어렵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에서 인프라·거래소 부문을 맡는 존 렐린은 2026년 10월 5일 연설에서 자본시장 개혁의 목표를 경쟁력과 효율성 제고로 설명하면서도, 신뢰와 시장무결성, 높은 기준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이라고 밝혔다. 토큰화를 혁신 과제로 언급했지만, 규제를 비워 두겠다는 메시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번 발언은 새로운 법률이나 확정 시행규정을 발표한 자리가 아니다. 다만 영국이 공·사모 자본시장 개혁을 어떤 방향으로 묶어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장이 받아들여야 할 핵심은 토큰화가 자산의 기록·이전 방식을 바꾸는 기술적 구조이지, 증권성 판단이나 공시, 수탁, 시장 인프라 규율을 없애는 면허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이 말한 혁신은 ‘완화’보다 ‘재설계’에 가깝다
렐린은 FCA가 최근 수년간 자본시장 관련 약 30개의 업무흐름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같은 연설에서 그는 규제가 성장과 혁신을 가로막지 않도록 손질해야 하지만, 그 과정이 기준 약화나 시장질서 훼손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FCA가 말한 위험의 재조정은 규제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정보공시와 책임, 결과 중심 규율을 통해 전문 참가자의 판단 공간을 넓히는 접근에 가깝다.
이 대목은 토큰화 논쟁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블록체인이나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주식, 채권, 펀드 수익권 같은 기존 자산을 토큰 형태로 발행·이전하더라도 그 기초자산이 증권이면 자본시장 규율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기술이 바뀌어도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는 FCA의 원칙은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토큰화는 자본시장 인프라 개편의 한 축
연설에서 토큰화는 단독 이슈가 아니라 상장제도, 채권·파생상품 투명성, 비상장주식 거래시장, 사후거래 체계 개편과 함께 제시됐다. FCA는 2026년 상반기 메인마켓에 약 25개 기업이 합류했고, 이 가운데 7건이 기업공개였다고 설명했다. 또 2026년 6월 출범한 채권 통합테이프에는 160만개의 라이선스가 가입됐고, 실시간으로 관측되는 회사채 거래는 70%, 국채 거래는 30% 늘었다고 밝혔다.
이 수치들이 보여주는 것은 영국이 토큰화를 별도 가상자산 시장의 확장으로 보기보다, 기존 자본시장 효율을 높이는 인프라 혁신으로 놓고 있다는 점이다. 발행, 거래, 청산, 공시가 서로 분리된 채 움직이면 토큰화의 효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국의 접근은 코인 일반에 대한 느슨한 허용보다는, 제도권 시장의 각 단계를 디지털화하는 방향에 더 가깝다.
디지털 국채와 토큰화 펀드도 규제 명확성이 전제
FCA는 영란은행, 재무부와 함께 디지털증권 샌드박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7년 초 새 디지털 국채 발행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업계와 함께 토큰화 투자펀드의 규칙과 지배구조를 마련했고, 영국 최초의 완전 네이티브 토큰화 펀드 출범도 언급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탐색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지, 감독을 뒤로 미룬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FCA는 같은 연설에서 업계가 원하는 것은 속도만이 아니라 규제의 명확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건전성 취급, 수탁, 시장 인프라 같은 영역에서 확실성을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토큰화가 제도권 금융의 언어로 번역돼야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영국이 밀고 있는 것은 규제 공백의 시장이 아니라 규칙이 보이는 디지털 시장이다.
투자자가 봐야 할 것은 ‘토큰’이 아니라 권리 구조다
이 때문에 투자자나 시장 참가자가 확인해야 할 기준도 명확하다. 상품 이름에 토큰이 붙었는지보다 어떤 자산이나 현금흐름에 대한 권리가 담겼는지, 수탁과 결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거래 가능한 시장과 공시 체계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 토큰화 자체는 수익성을 보장하지 않고, 기술 채택이 곧 안전성을 뜻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볼 변수는 영국이 말한 디지털 국채가 실제로 어떤 구조와 유통 체계를 갖고 나오는지, 토큰화 펀드 규율이 기존 펀드 규제와 어디까지 정합성을 이루는지, 그리고 민간 부문이 시범사업을 넘어 실사용 규모를 만들 수 있는지다. 10월 5일 FCA 연설이 보여준 방향은 분명하다. 영국의 토큰화 자본시장 전략은 규제완화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높은 기준을 유지한 채 자본시장 인프라를 디지털 방식으로 다시 짜려는 시도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