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대형은행 TLAC 도입 근거 마련…은행채 위험은 왜 상품별로 다시 봐야 하나
MAS, 10월 6일 금융서비스시장법 개정안 2차 독회 연설에서 TLAC 법적 근거 제시
대형은행 부실 시 공적자금 이전 손실흡수 장치 강화…모든 은행채가 같은 위험은 아니다
투자자는 금리보다 상환순위·전환조건·적격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싱가포르 통화청(MAS)이 10월 6일 금융서비스시장법 개정안 2차 독회 연설에서 국내 시스템적 중요은행에 총손실흡수능력(TLAC) 규제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TLAC는 대형은행이 위기에 빠졌을 때 공적자금 투입 전에 손실을 흡수하거나 자본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과 자본 성격의 재원을 미리 쌓아두는 장치다.
핵심은 TLAC 확대가 곧 모든 은행채의 위험 상승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은행 전체로 보면 정리 가능성을 높여 금융시스템 충격을 줄이려는 장치에 가깝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느 채권이 먼저 손실을 부담하는지, 특정 채권이 TLAC 적격수단에 포함되는지에 따라 위험이 달라질 수 있어 상품별 약관 확인이 더 중요해진다.
정책 발표와 실제 시행은 아직 다르다
이번에 확인된 사실은 TLAC 체계의 도입 근거를 법에 넣겠다는 단계다. MAS는 연설에서 국내 시스템적 중요은행이 유지해야 할 TLAC 수준, 적격 손실흡수수단의 범위, 공시 항목, 시행 일정은 이미 업계와 대중을 상대로 협의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별 은행이 언제부터 얼마나 더 보유해야 하는지, 어떤 채권 구조가 최종 적격으로 인정되는지는 후속 규정과 시행 일정에서 확정될 사안이다.
이 구분은 투자 판단에서 중요하다. 법안 단계의 발표를 근거로 모든 기존 은행채가 즉시 베일인 대상이 되거나 같은 조건으로 재분류된다고 받아들이면 오해가 생긴다. 제도는 정리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이지만, 실제 손실흡수 순서는 각 증권의 법적 지위와 발행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왜 같은 은행채라도 위험이 달라지나
은행이 발행하는 증권은 이름이 비슷해 보여도 손실을 부담하는 순서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보통주가 가장 먼저 손실을 흡수하고, 그다음이 추가기본자본이나 후순위채 같은 자본성·후순위성 수단이며, 선순위 채권과 예금은 그 뒤에 놓인다. MAS도 이번 연설에서 현행 금융서비스시장법 2022에 따라 부실 금융기관의 후순위 채권자에 대해 베일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TLAC가 도입되면 시장이 가장 먼저 다시 볼 부분은 특정 채권이 손실흡수 완충재로 설계된 상품인지 여부다. 후순위채, 전환형 자본증권, 계약상 상각 또는 전환 조항이 있는 채권은 같은 은행의 일반 선순위채보다 위험 구조가 다를 수 있다. 반대로 은행 차원에서는 이러한 완충재가 두터워질수록 더 상위의 채권이나 예금이 보호받을 여지가 커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싱가포르 대형은행에만 적용될 가능성
MAS의 감독 체계상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은 매년 평가된다. MAS가 공개한 감독 개요를 보면 현재 싱가포르의 국내 시스템적 중요은행 명단에는 DBS와 OCBC, UOB 같은 현지 대형은행뿐 아니라 일부 외국계 은행도 포함돼 있다. 이번 TLAC 논의가 은행권 전체에 일괄 적용되는 규제가 아니라 우선 이런 대형은행군의 정리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라는 뜻이다.
이 점은 채권시장에도 함의를 남긴다. 같은 싱가포르 은행채라도 발행 주체가 시스템적 중요은행인지, 은행그룹 차원에서 어떤 손실흡수 구조를 쌓는지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싱가포르 은행채라는 이유만으로 위험을 한 덩어리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투자자가 확인할 세 가지 기준
첫째, 해당 채권의 상환순위다. 선순위인지 후순위인지에 따라 손실흡수 위치가 다르다. 둘째, 약관상 상각·전환 조항의 존재다. 자본비율 하락이나 당국의 정리 개시 때 원금이 깎이거나 주식으로 바뀌는 구조인지 확인해야 한다. 셋째, 규제상 TLAC 적격 여부다. 같은 선순위채라도 규제 목적상 손실흡수 수단으로 인정되는지에 따라 시장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MAS가 제시할 최종 적격수단 범위와 시행 일정, 그리고 각 은행의 실제 발행 계획이다. 제도 도입의 방향은 건전성 강화이지만, 채권 투자자에게는 은행 이름보다 증권의 법적 서열과 계약 조건이 더 중요한 시장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