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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대 성장의 시대가 온다…한국 경제, ‘저성장 상수’와 마주하다

커버스토리

한국 경제가 낯선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경기 사이클이 나빠져 일시적으로 성장률이 낮아지는 차원을 넘어, 경제가 본래 낼 수 있는 힘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인공지능 투자 확대로 일부 산업에는 온기가 돌고 있지만, 그 아래에서는 인구 감소와 생산성 둔화, 산업 편중, 내수 부진이 동시에 작용하며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지난해 1.92%에서 올해 1.71%, 내년 1.57%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내년 4분기에는 1.52%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잠재성장률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한 나라 경제가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 속도를 뜻한다. 쉽게 말해 경기 부양책을 쓰거나 특정 산업이 일시적으로 호황을 누리지 않아도, 노동과 자본, 생산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낼 수 있는 경제의 기본 체력이다. 이 수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더 천천히 자랄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2010년대 초반 3%대 중반이던 잠재성장률은 이후 꾸준히 내려앉았다. 2023년에는 2%선 아래로 떨어졌고, 이제는 1%대 중반까지 밀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기 부진이 몇 분기 이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15년 가까이 이어진 하락 흐름은 단기 처방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적 변화가 한국 경제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큰 배경은 인구 구조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일할 사람이 늘거나, 같은 사람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거나, 자본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저출생·고령화를 겪고 있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층은 줄어들고, 은퇴 연령에 가까운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노동 투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산성이 충분히 개선되지 못하면 잠재성장률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생산성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 그중에서도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등 일부 수출 산업의 경쟁력에 크게 의존해 성장해왔다. 이들 산업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핵심 엔진이다. 하지만 특정 산업에 지나치게 기대는 구조는 성장의 안정성을 떨어뜨린다. 반도체 경기가 좋을 때는 경제 전체가 회복되는 듯 보이지만, 업황이 꺾이면 성장률과 수출, 투자 지표가 동시에 흔들린다. 반도체가 버티는 동안 서비스업과 중소기업, 내수 부문의 생산성이 함께 올라가지 못하면 전체 경제의 체력은 강화되기 어렵다.

최근 성장 회복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그래서 양면적이다. 반도체 수출 증가는 단기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긍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가 특정 품목의 경기 변화에 더 민감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위험 요인이 된다. 인공지능과 첨단산업 수요가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한국 경제 전체의 잠재성장률을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성장의 폭이 좁아질수록 작은 충격도 경제 전체에 크게 번질 수 있다.

미국과의 잠재성장률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한국은 과거 선진국보다 높은 성장률을 바탕으로 소득 격차를 좁혀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OECD 추정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잠재성장률 차이는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은 인구 유입, 혁신기업 생태계, 대규모 내수시장, 첨단기술 투자 등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잠재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인구 감소와 내수 한계, 산업 편중이라는 제약을 동시에 안고 있다. 선진국을 따라잡던 경제에서, 선진국과의 성장 격차를 걱정해야 하는 경제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실제 경제 활동도 잠재 수준을 밑돌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GDP갭률이 올해와 내년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실제 국내총생산이 잠재 GDP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제가 낼 수 있는 힘 자체도 약해지고 있는데, 그 약해진 체력조차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공장과 설비, 인력, 자본이 완전히 가동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면 투자와 고용이 위축되고, 이는 다시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잠재력이 낮아지면 가계와 기업, 정부가 체감하는 경제 환경이 모두 바뀐다. 기업은 미래 수요에 대한 확신이 약해져 투자를 줄일 수 있다. 청년층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을 더 크게 체감하게 된다. 중장년층은 노후 소득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자영업자는 내수 부진의 압박을 더 오래 견뎌야 한다. 정부도 세수가 기대만큼 늘지 않는 상황에서 복지와 연금, 국방, 산업 투자 수요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저성장은 단지 성장률 표의 숫자가 낮아지는 현상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선택지를 좁히는 압박이다.

재정 기반 약화 역시 피하기 어려운 문제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세수 증가 속도도 둔화된다. 반면 고령화에 따른 연금·의료·돌봄 지출은 빠르게 늘어난다. 청년층 감소와 노년층 증가는 재정의 수입과 지출 구조를 동시에 압박한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많은 문제가 성장의 과실 속에 흡수될 수 있었지만, 1%대 성장 시대에는 재정 운용의 여유가 크게 줄어든다. 성장잠재력 하락이 장기화할수록 세대 간 부담 배분을 둘러싼 갈등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이 구조개혁을 반복해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잠재성장률은 단기 부양책만으로 끌어올리기 어렵다. 금리를 낮추거나 재정을 투입하면 일시적으로 수요를 살릴 수는 있지만, 노동 공급 감소와 생산성 둔화, 산업 편중을 해결하지 못하면 장기 성장 경로는 바뀌지 않는다. 저출생 대응, 노동시장 개혁, 교육 시스템 재편, 연금 개혁, 주거 안정, 지역 균형발전, 청년 고용 개선은 각각 별개의 정책처럼 보이지만 모두 성장잠재력과 연결돼 있다.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하려면 사람이 일하고, 배우고, 이동하고, 창업하고,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는 잠재성장률 반등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한국의 제조업은 세계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여왔지만,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가 많다. 의료, 교육, 금융, 콘텐츠, 관광, 돌봄, 전문서비스 등은 고용 흡수력이 크고 부가가치를 키울 여지도 많다. 그러나 규제와 시장 진입 장벽, 영세한 사업 구조, 낮은 디지털 전환 속도가 성장의 제약으로 작용해왔다. 서비스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제조업 중심 성장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기 어렵다.

시장 경쟁을 확대하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많은 산업에서 기업 규모가 작고 생산성이 낮은 사업자가 과밀하게 분포해 있다. 경쟁력이 낮은 부문이 오래 유지되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혁신 기업이 성장할 공간도 좁아진다. 반대로 경쟁과 재편이 지나치게 급격하면 고용 충격과 지역경제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구조개혁은 단순히 시장에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재교육과 전직 지원, 사회안전망 확충을 동반해야 한다. 낡은 산업 구조를 정리하는 동시에 사람이 탈락하지 않도록 돕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노동시장 개혁 역시 피해갈 수 없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여성, 고령층, 청년층, 외국인 인력 등 다양한 노동 공급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해진다. 경직적인 근로 관행과 이중구조가 지속되면 인력은 부족한데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는 모순이 심화된다. 청년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구하지 못하며, 중소기업은 만성 인력난에 시달리는 구조가 반복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함께 높이지 못하면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저출생 대응도 단순한 복지 정책을 넘어 성장 전략으로 봐야 한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문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지만, 방치할 경우 장기 성장 기반은 더 빠르게 약화된다. 주거비 부담, 교육비 경쟁, 경력 단절, 불안정한 일자리, 수도권 집중은 모두 출산과 양육 결정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현금성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청년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살 수 있는 환경, 부모가 경력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시장, 지역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산업 기반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저성장 문제는 위기이면서도 경고다. 단기적으로는 수출 회복과 반도체 호황이 성장률을 떠받칠 수 있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이 계속 낮아진다면 일시적 호황은 기초 체력 약화를 가리는 착시가 될 수 있다. 성장률이 반짝 반등해도 경제의 엔진이 낡고 있다면 미래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조금 높이는 데 그치는 대응이 아니라, 앞으로 10년의 성장 경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내년 잠재성장률 1.5%대 전망은 한국 경제에 던져진 무거운 질문이다. 반도체가 잘될 때 성장하는 경제를 넘어, 인구가 줄어도 생산성을 높이고, 특정 산업이 흔들려도 버틸 수 있으며, 청년과 기업이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경제로 바뀔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아직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도 않다. 한국 경제의 성장판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성장의 방식을 바꾸는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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