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12억 초과 주택에도 문 열리다, 내집연금의 새 국면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은퇴 이후 소득 단절 문제와 생활비 부담, 자녀와의 상속 문제가 고령층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국내 가계 자산이 주택에 편중된 현실은 노후 대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집은 가장 크고 안전한 자산이지만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아 활용하기 까다로운 특성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주택연금이며, 최근에는 공시가격 12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 보유자도 가입할 수 있는 ‘내집연금’ 상품이 등장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존 공적 주택연금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운영하며 만 55세 이상 고령자가 본인의 자택을 담보로 매월 일정 금액을 연금처럼 수령하고 평생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러나 공시가격 12억 원 이하 주택만 대상이었기 때문에 서울 강남 등 주요 도심 고가 주택 보유자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금융권이 민간 종신 주택연금 상품을 혁신금융서비스로 내놓으면서 이러한 한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하나은행과 하나생명보험이 주도한 상품은 고가 주택 보유자도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고, 집을 팔지 않고도 현금 흐름을 확보하며 거주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내집연금은 담보 주택 소유권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저당권 설정 방식으로 진행되며 일부는 신탁 구조를 택할 수 있다. 가입자의 연령이 높을수록 수령액이 늘어나고 지급 방식에 따라 수령 규모가 달라진다. 월 수령액은 공시가격 또는 감정가치, 가입자 나이, 거주 기간, 보증료율 등에 따라 산출된다. 기존 주택연금은 공사의 보증으로 안정성이 담보되었고, 고가 주택 포함 상품도 민간과 공공의 보증 체계가 병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가 주택을 포함한 내집연금은 단순히 생활비 마련을 넘어 상속 전략과 자산 관리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은퇴 세대는 집을 처분하지 않고 거주하면서 연금 형태의 현금흐름을 확보해 의료비와 생활비에 충당할 수 있고, 금융자산을 장기간 보존해 자녀에게 안정적으로 상속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자산은 충분하지만 현금이 부족한 고령층에게는 체면이나 상속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안정감을 제공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반향이 크다.
그러나 과제도 존재한다. 공시가격 변동에 따른 지급액 산정 문제, 고가 주택의 감정가와 실거래가 차이, 기존 대상자와의 형평성, 세제와 상속 절차에서의 충돌 등이 대표적이다. 연금을 수령하다 사망했을 경우 미처 정산되지 않은 금액의 처리 방식이나, 주택 보유세·종합부동산세 부담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주택에 계속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도 엄격히 지켜야 하므로 입원, 해외 체류, 자녀 증여 등으로 주택을 비우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
실제 금융권에서는 강남·서초·용산 등 고가 아파트가 많은 지역에서 상담 문의가 늘고 있다는 전언이 나온다. 은퇴 후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던 고령층이 집을 팔지 않고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품 구조가 복잡하고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금융사들은 상담 서비스와 시뮬레이션 도구를 확대하며 이해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 커뮤니티와 은퇴자 모임에서도 연금액 수준, 상속 구조, 세금 문제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
전문가들은 내집연금 확대가 고령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제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간 상품에 대한 보증과 감독 체계 마련, 고가 주택 담보 감정의 투명성 확보, 세제 및 상속 제도의 정비, 공시가격 기준의 명확화가 필요하다. 동시에 금융권이 맞춤형 설계와 적극적 홍보를 통해 더 많은 은퇴 세대가 자신의 집을 안정적인 연금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한국 사회는 초고령화와 부동산 편중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내집연금은 단순한 금융 상품을 넘어 노후 빈곤 위험을 줄이고 세대 간 부담을 완화하는 중요한 정책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제도의 설계와 운영이 투명하고 신뢰성 있게 이뤄진다면 고가 주택 보유 은퇴 세대까지 포함하는 내집연금은 한국의 노후 안전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