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국채가 헤지펀드 때문에 흔들리는 이유
BIS, 2026 연차경제보고서서 비은행 레버리지 확대 경고
국채 신용위험 낮아도 거래·자금조달 유동성은 급격히 악화될 수 있어
마진콜→레버리지 축소→국채 강제매도→금리 급등의 악순환이 핵심
국채는 금융시장에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통하지만, 정부가 원리금을 갚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의 ‘신용 안전성’과 시장에서 언제든 원하는 가격에 매도할 수 있다는 ‘거래 안전성’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특히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이 단기자금을 빌려 대규모 국채거래에 참여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평상시에는 유동성을 공급하던 투자자들이 시장 충격이 발생하는 순간 동시에 국채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금융안정의 새로운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26년 연차경제보고서에서 주요국의 높은 정부부채와 함께 국채시장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특히 헤지펀드가 레포와 파생상품 등을 이용해 자기자본보다 훨씬 큰 규모의 포지션을 운용할 경우 국채가격이 조금만 움직여도 추가 증거금을 요구받을 수 있고, 이를 마련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매각하면 다시 가격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채가 안전하다는 말은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국채를 안전자산이라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기업이 발행한 채권과 비교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재정과 통화기반이 안정적인 국가가 발행한 국채는 금융기관의 담보자산으로 폭넓게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미국 국채와 같은 대규모 시장은 전 세계 금융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 역할까지 한다.
그러나 국채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상품인 만큼 가격은 계속 움직인다. 시장금리가 오르면 이미 발행된 고정금리 국채의 상대적 매력이 낮아져 가격이 떨어지고, 반대로 금리가 내려가면 기존 국채 가격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하면서 원금과 이자를 받으려는 투자자와 매일 시장가격으로 손익을 평가하며 차입까지 활용하는 금융기관이 느끼는 위험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정부가 원리금을 지급할 능력이 충분하더라도 투자자가 당장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채가격이 급락한다면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BIS가 최근 주목하는 부분도 국채를 발행한 국가의 부도 가능성보다는 국채를 거래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구조가 충격을 얼마나 증폭시키느냐에 있다.
작은 가격차에서 수익을 내려면 레버리지가 커진다
헤지펀드는 현물 국채와 국채선물 등 가격 움직임이 밀접하게 연결된 금융상품 사이의 미세한 가격차를 이용하는 상대가치 거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같은 국채를 기초로 하는 현물과 선물의 가격이 일시적으로 벌어지면 상대적으로 싼 자산을 사고 비싼 자산을 팔아 가격차가 정상화될 때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거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격차가 매우 작다는 데 있다. 자기자본만을 이용한다면 수익 규모가 제한되기 때문에 헤지펀드는 레포시장 등에서 단기자금을 빌려 투자규모를 크게 확대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자기자본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포지션이 형성될 수도 있다.
시장이 안정돼 있고 두 자산의 가격차가 예상대로 좁혀질 때는 이런 전략이 국채시장의 가격효율성을 높이고 매수·매도 거래를 원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격 움직임이 예상보다 커지는 순간 높은 레버리지는 수익을 키우는 장치에서 손실을 확대하는 장치로 바뀐다.
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레포시장이 연결고리
헤지펀드가 대규모 국채거래를 운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레포시장이 있다. 레포는 국채와 같은 유가증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단기간 현금을 빌린 뒤 일정 시점에 다시 되사는 형태의 거래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기자금 조달수단 가운데 하나다.
국채는 신용도가 높고 거래가 활발하기 때문에 레포시장에서 우량 담보로 취급된다. 헤지펀드는 보유한 국채를 담보로 현금을 빌리고, 그 돈으로 추가 포지션을 구축하면서 제한된 자기자본으로 훨씬 큰 규모의 거래를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국채가격이 하락하거나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자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담보가치가 부족해질 가능성을 우려해 추가 담보를 요구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효율적인 자금조달 수단이었던 레포가 시장 충격기에는 투자자에게 즉시 현금을 마련하도록 압박하는 통로로 바뀌는 것이다.
마진콜이 오면 투자자는 ‘좋은 자산’도 팔아야 한다
추가 증거금이나 담보를 요구받는 마진콜이 발생했을 때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산의 장기적인 가치가 아니라 당장 현금을 얼마나 빨리 마련할 수 있느냐다. 현금성 자산이 충분하다면 추가 담보를 납부하고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지만, 높은 레버리지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투자자는 주식이나 회사채, 부동산처럼 매각에 시간이 걸리는 자산보다 거래가 활발하고 즉시 현금화하기 쉬운 국채부터 처분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금융불안기에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국채가 오히려 대규모 매도의 대상이 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국채의 신용도를 의심해 매도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투자자가 국채를 계속 보유하고 싶더라도 다른 거래에서 발생한 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곳의 강제매도가 시장 전체의 가격을 움직인다
개별 헤지펀드 한 곳이 국채를 매도하는 것만으로 시장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금융기관이 비슷한 거래전략과 자금조달 방식을 사용하면서 같은 시점에 포지션을 줄이는 경우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거래소와 금융기관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증거금이나 담보요건을 높이고,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투자자들은 국채를 매도한다. 국채 매물이 한꺼번에 늘어나면서 가격이 하락하면 변동성이 더 커지고, 금융기관은 다시 담보를 추가로 요구하게 된다.
그 결과 ‘마진콜→국채 매도→가격 하락→추가 마진콜→추가 매도’가 반복되는 자기증폭적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BIS가 우려하는 비은행 금융기관의 레버리지 위험도 이처럼 개별 투자자의 손실이 시장 전체의 유동성 문제로 전환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채시장 유동성이 마르면 금리가 급격히 튈 수 있다
국채시장에서 유동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대규모 물량을 사고팔더라도 가격이 크게 움직이지 않고 거래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평상시 국채시장에는 은행과 보험사, 연기금,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등 다양한 투자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대규모 거래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소화된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매도 주문만 쌓이고 이를 받아줄 매수자가 줄어들면 같은 수량을 팔기 위해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매수와 매도 가격의 차이가 벌어지고 거래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평소 매우 유동적이던 국채시장도 짧은 시간 안에 경색될 수 있다.
국채가격 하락은 국채금리 상승을 의미한다. 문제는 국채금리가 기업채와 금융기관의 조달비용, 주택담보대출 등 여러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국채시장 불안이 다른 금융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기업과 가계까지 영향을 받는다
국채시장의 불안이 헤지펀드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국채금리가 경제 전체의 가격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도 비슷한 만기의 국채금리에 일정한 신용위험을 더해 금리가 결정되고, 은행의 장기 자금조달 비용이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국채와 금융채 시장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대규모 국채 강제매도로 시장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면 기업은 자금을 빌리는 데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가계 역시 신규 대출이나 변동금리 상품에서 높은 이자를 부담할 가능성이 커진다. 주식시장에서도 미래 기업이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 사용하는 할인율이 높아지면서 자산가치가 낮아질 수 있다.
헤지펀드의 국채거래가 개별 투자전략의 문제를 넘어 금융안정 차원에서 관리되는 이유가 바로 이 연결구조다.
비은행 금융기관이 국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BIS가 구조적 위험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국채시장의 투자자 구성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 BIS 분석에 따르면 선진국 국채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이 보유한 비중은 2021년 44%에서 2025년 53%로 높아졌다.
보험사와 연기금,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등 비은행 금융기관이 주요 국채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확대된 것이다. 이는 은행에 집중됐던 과거 금융안정 분석만으로는 국채시장의 새로운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은행 금융기관이라고 모두 같은 방식으로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연기금은 장기 부채에 맞춰 국채를 보유할 수 있고, 보험사는 자산과 보험금 지급구조를 맞추기 위해 장기채권을 이용하며, 헤지펀드는 상대적으로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한 단기거래 비중이 높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각 기관이 충격을 받았을 때 어떤 이유로 국채를 동시에 매도하게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보험사·연기금도 증거금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채시장 불안의 원인을 헤지펀드 하나로만 좁혀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보험사와 연기금 역시 금리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금리스와프와 선물 등 파생상품을 이용하고 있으며, 시장금리가 급격히 움직이면 이들 거래에서도 추가 증거금 요구가 발생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자산이 충분한 기관이라도 단기간에 대규모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보유자산을 매도해야 한다. 영국에서 2022년 국채금리가 급등했을 때 일부 연기금의 부채연계투자 전략이 증거금 압박을 받으면서 국채매도가 확대됐던 사례도 장기투자기관이 유동성 충격에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금융안정에서는 기관이 장기적으로 지급능력이 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흔들렸을 때 며칠 또는 몇 시간 안에 필요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개입하는 이유도 ‘정부 부도’ 때문만은 아니다
국채시장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유동성이 악화되면 중앙은행이 시장안정을 위해 개입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거나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해서 반드시 정부의 채무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상환할 능력이 있지만 금융기관의 동시다발적인 강제매도로 시장가격 형성 기능이 무너지는 경우에도 중앙은행의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다만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중앙은행이 항상 유동성을 공급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투자자가 평상시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도덕적 해이가 커질 수 있다. BIS가 중앙은행의 시장개입과 함께 비은행 금융기관 자체의 유동성 관리와 레버리지 규율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규제의 초점도 은행에서 ‘시장 전체’로 이동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규제는 은행의 자본비율과 유동성을 강화하는 데 상당 부분 집중됐다. 그 결과 은행의 충격흡수 능력은 과거보다 개선됐지만 일부 금융중개 활동은 규제가 상대적으로 다른 비은행 영역으로 이동했다.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 등이 레포와 국채선물, 파생상품시장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면서 이제 금융안정을 위해서는 은행의 건전성만 확인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거래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있는지, 국채를 담보로 얼마나 많은 단기자금을 조달했는지, 가격이 급락했을 때 추가 담보를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시장 전체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BIS의 경고를 한국 국채시장 위기 전망으로 확대하면 안 된다
BIS의 이번 분석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국채시장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와 금융안정 위험을 살펴본 것이며, 한국 국채시장에서 곧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직접적인 전망은 아니다.
국가마다 국채 투자자 구성과 외국인 비중, 레포시장 규모, 파생상품 이용방식, 금융규제가 다르기 때문에 미국 시장의 레버리지 구조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글로벌 채권시장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주요국의 국채금리 급등은 국내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면 달러 자금조달 여건과 글로벌 투자자의 위험선호가 바뀌고, 이는 국내 국채금리와 환율, 주식시장에도 파급될 수 있다.
‘안전자산’의 위험을 볼 때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국채가 안전자산이라는 평가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재정신뢰도가 높은 국가의 국채는 여전히 대표적인 저신용위험 자산이고,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담보수단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현대 국채시장에서 안전성을 판단하려면 발행국 정부가 돈을 갚을 수 있는지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 누가 국채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그 투자자가 자기 돈으로 샀는지 아니면 단기자금을 대규모로 빌려 샀는지, 시장가격이 움직였을 때 추가 증거금을 얼마나 빨리 마련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
평상시에는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투자자들이 거래량을 늘리면서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지만, 충격이 발생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그 유동성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BIS가 던지는 질문은 “국채가 안전한가”가 아니라 “안전자산인 국채를 거래하는 금융시장의 구조까지 안전한가”에 가깝다.
국채의 신용위험과 시장의 유동성위험을 구분해 보면 안전자산이 금융위기 순간에 왜 급락할 수 있는지도 설명된다. 정부의 지급능력이 갑자기 사라져서가 아니라 현금이 필요한 금융기관들이 동시에 가장 팔기 쉬운 국채를 처분하면서 시장가격이 급격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