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다뷰

시장의 변화와 미래를 읽는 경제지, 미래다뷰

우리는 살아남는 법만 배웠나…반공과 생계 너머의 교육

오피니언이슈트렌드하이라이트

분단과 압축성장이 만든 생존 중심의 국민상
안보·취업을 넘어 자기 삶을 설계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대한민국의 교육을 받은 뒤 무엇이 남았느냐는 질문에는 세대마다 다른 답이 돌아온다. 누군가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안보 의식을 말하고, 누군가는 좋은 대학과 안정된 직장을 떠올린다. 반공과 경제성장이 국가적 과제였던 시기를 살아온 세대에게 두 가지는 서로 떨어진 가치가 아니었다. 국가의 생존과 개인의 생계가 하나의 교육 목표처럼 작동했다.

이러한 교육이 모두 잘못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전쟁의 폐허와 절대빈곤을 경험한 사회에서 안보와 경제적 자립은 실제적인 생존 조건이었다. 공부해서 가난을 벗어나고 가족을 부양하라는 요구 역시 당시에는 개인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동력이었다.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도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가치가 교육의 거의 모든 영역을 차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무엇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지, 어떤 공동체에서 살고 싶은지, 권력과 제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는 뒤로 밀렸다. 질문하는 능력보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높게 평가됐다. 시민은 삶의 주체보다 국가 발전과 산업화에 필요한 인적 자원으로 이해되기 쉬웠다.

오늘의 한국은 전쟁 직후의 빈곤국가가 아니다. 경제와 산업, 민주주의의 규모가 달라졌고 국민이 마주하는 위험도 복잡해졌다. 인공지능과 기후위기, 고령화와 불평등, 고립과 혐오가 새로운 과제가 됐다. 그런데도 교육의 중심이 냉전적 이분법과 입시·취업 경쟁에 머문다면 변화한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소득만으로 답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지, 부당한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과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지도 삶의 질을 결정한다. 노동과 휴식, 관계와 문화, 돌봄과 참여의 균형도 필요하다. 기본교육은 살아남는 기술과 함께 살아갈 방향을 찾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반공 교육이 남긴 안전과 침묵

한국의 반공 교육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에서 출발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적 헌정질서를 지키고 안보 의식을 갖추는 교육은 필요하다. 독재와 인권침해가 북한 체제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사실에 근거해 배우는 일도 중요하다. 안보 현실을 외면하는 교육은 시민이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안보 교육과 특정한 사고방식에 대한 복종이 혼합됐을 때 발생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개혁 요구를 적대 세력에 대한 동조로 취급하면 민주주의의 토대가 약해진다. 반공이 헌법질서를 지키는 원칙이 아니라 상대를 배제하는 정치적 언어가 될 수도 있다. 이때 교육은 판단 능력을 키우기보다 침묵을 학습시키게 된다.

1968년 12월 5일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1970년대에는 초등학생들이 헌장을 암송했고 교과서 앞부분에도 수록됐다. 정부는 해설서 265만 부와 그림책 130만 부를 배포했다. 헌장에는 자주·자립과 공동번영, 자유와 책임 같은 가치가 포함됐지만 국가 중심의 획일적인 국민 형성에 이용됐다는 비판도 받았다. 기념행사는 1994년부터 폐지됐고,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은 2003년 11월 공식적으로 폐지됐다(국가기록원, 2003년).

이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안보교육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안보교육의 기준을 헌법과 민주주의, 인권과 사실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북한 주민에 대한 존중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군사적 억지의 필요성과 평화적 긴장 완화의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교실에서는 하나의 결론을 암기하게 하기보다 서로 다른 자료를 비교하도록 해야 한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 권위주의 정부의 인권침해, 민주화운동, 남북관계의 변화가 함께 다뤄져야 한다. 국가를 사랑하는 방법이 정부에 동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배워야 한다. 헌법을 위반하는 권력을 비판하는 행위 역시 공동체를 지키는 시민적 책임이기 때문이다.

압축성장이 만든 ‘먹고사는 것이 먼저’라는 규칙

한국 사회에서 “먹고사는 것이 먼저”라는 말은 개인의 탐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랜 빈곤과 불안정한 노동, 주거 불안과 노후 위험 속에서 형성된 생존 전략이다.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비정규직 확대를 경험한 세대에게 안정된 직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지키는 방어선이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취업 가능성이 높은 전공을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수입이었고, 안정성과 적성·흥미가 뒤를 이었다. 일과 가정생활을 비슷하게 중시한다는 응답은 46.5%였지만 일을 우선한다는 응답도 34.3%였다. 임금근로자의 전반적인 일자리 만족도는 38.3%였다(국가데이터처, 2025년).

이 수치는 국민이 돈만 중시한다는 증거가 아니다. 소득과 고용이 충분히 안정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다른 가치를 선택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의미에 가깝다. 생존이 불안한 사람에게 자아실현과 여가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조언이 될 수 있다. 개인의 가치관을 바꾸라고 요구하기 전에 주거와 노동, 돌봄과 사회안전망을 살펴야 한다.

교육 경쟁도 같은 구조에서 움직인다.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7조5000억원이었다. 전체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5.7%, 주당 참여 시간은 7.1시간이었다. 학생 전체 기준 월평균 사교육비는 45만8000원, 참여 학생 기준으로는 60만4000원이었다(국가데이터처·교육부, 2026년).

사교육 선택에는 성적 향상뿐 아니라 낙오에 대한 불안이 작용한다. 다른 학생이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자기 자녀만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교육이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더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는 경쟁으로 바뀌는 이유다. 학교는 협력과 공동체를 가르치지만 평가 체제는 친구를 경쟁자로 바라보게 한다.

따라서 먹고사는 문제를 경시하면서 인문적 삶만 강조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안정된 소득과 주거는 인간다운 삶의 토대다. 다만 생계가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 되면 사람은 노동시장에서의 가치로만 평가받게 된다. 직업이 없는 시기나 생산성이 낮아진 노년의 삶까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오해할 위험도 있다.

교육의 법적 목표와 교실 현실 사이

우리 교육의 법적 목표는 취업 준비나 국가에 대한 충성에 한정돼 있지 않다. 교육기본법 제2조는 교육이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이바지하는 것도 교육이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 제시한다(국가법령정보센터).

법이 그리는 인간상은 스스로 살아가면서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다. 경제적 자립은 그중 하나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공적 문제를 토론하며 권력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공존하도록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도 포함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시 변화한 방향을 담고 있다. 교육부는 언어·수리·디지털 기초소양을 강화하고 자기주도성, 창의성, 공동체 역량을 갖춘 사람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암기 중심 수업에서 탐구와 개념 이해를 중시하는 깊이 있는 학습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도 포함했다(교육부, 2022년).

문제는 교육과정의 문장과 학생이 실제로 경험하는 교육 사이의 거리다. 대학 입시와 채용에서 표준화된 점수와 서열이 강하게 작동하면 교실도 시험 대비에 집중하게 된다. 토론과 프로젝트는 시간이 많이 들고 평가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도 크다. 교사가 새로운 수업을 시도하려 해도 행정업무와 대규모 학급, 평가 부담에 막힐 수 있다.

민주시민교육도 지식 전달에 그치기 쉽다. 삼권분립과 기본권의 뜻을 외우더라도 학교생활에서 의견을 제시할 통로가 없다면 민주주의를 체감하기 어렵다. 학생회가 실질적인 예산과 협의 권한을 갖지 못하고 생활규칙 결정에서도 학생이 배제된다면 참여는 형식이 된다. 민주주의는 교과서의 개념인 동시에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할 생활방식이다.

잘 산다는 기준은 소득 밖에도 있다

잘 산다는 말에서 물질적 안정은 빼놓을 수 없다. 빈곤은 선택의 범위를 줄이고 건강과 교육,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소득과 안전한 주거, 예측 가능한 노동시간은 좋은 삶의 조건이다. 경제적 기반을 가볍게 여기는 교육은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하지만 소득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2025년 사회조사에서는 13세 이상 인구 가운데 평소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이 약 40%였고, 지난 1년 동안 책을 읽은 사람은 48.7%였다(국가데이터처, 2025년). 경제활동과 학업에 많은 시간을 쓰더라도 관계와 문화생활이 빈약하면 삶의 만족은 높아지기 어렵다.

좋은 삶의 모습은 국가가 하나로 정할 수 없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직업적 성취나 창작, 봉사와 공동체 활동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다. 교육의 역할은 특정한 행복을 정답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원하는 삶을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언어와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철학과 역사, 문학과 예술은 시험에 덜 중요한 과목으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자유와 책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하게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체육과 관계교육, 돌봄과 정서교육도 남는 시간에 하는 활동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돌보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은 평생의 삶을 좌우한다.

좋은 교육을 받은 시민은 높은 소득을 얻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계약서의 부당한 조항을 알아보고 노동권 침해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의 허위정보와 선동을 구분하고 공공기관의 결정을 검증할 수도 있어야 한다. 실패하거나 직업을 바꾸더라도 자신의 가치가 사라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힘도 필요하다.

기본교육을 시민의 삶으로 돌리는 방법

첫째, 모든 학생이 생활 속 헌법과 시민의 권리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임대차계약, 근로계약, 세금과 사회보험, 금융과 부채, 의료와 돌봄 제도를 실제 사례로 다루는 교육이 필요하다. 선거나 정당의 구조뿐 아니라 정보공개청구, 국민청원, 행정심판과 공익신고 방법도 익힐 수 있다. 권리는 존재를 아는 사람에게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둘째, 논쟁적인 사회 문제를 안전하게 토론하는 수업을 확대해야 한다. 학생은 서로 다른 자료의 출처와 근거를 확인하고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교사는 특정한 정치적 결론을 주입하기보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토론 규칙을 지키도록 안내해야 한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학생의 질문할 권리가 함께 보호돼야 한다.

셋째, 평가 체제를 교육 목표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암기한 내용을 한 번의 시험으로 측정하는 방식만으로는 협업과 탐구, 비판적 사고를 확인하기 어렵다. 프로젝트와 서술형 평가를 확대하되 학교와 지역에 따른 평가 격차가 커지지 않도록 공통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교사 연수와 평가 시간, 학급 규모에 대한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넷째, 진로교육을 직업 서열 안내에서 삶의 설계 교육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임금과 취업률뿐 아니라 노동시간, 직업 안정성, 적성, 사회적 기여와 경력 전환 가능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플랫폼노동과 프리랜서, 자영업자가 알아야 할 권리도 가르쳐야 한다. 한 번의 진학 선택이 평생을 결정한다는 공포를 줄이는 평생교육 체계도 필요하다.

다섯째, 학생이 학교의 의사결정에 실제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회가 일부 예산의 사용처를 제안하고 생활규칙 개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급식과 공간, 수업 운영에 대한 의견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답변해야 한다. 자신의 제안이 검토되고 결과로 연결되는 경험은 어떤 민주시민 교재보다 강한 학습이 된다.

여섯째, 교육 성과를 점수와 취업률만으로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권리 이해도와 미디어 문해력, 갈등 조정 능력, 사회참여 경험과 문화 향유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역량을 또 다른 줄 세우기 시험으로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표본조사와 학교의 질적 평가를 병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일곱째, 시민교육을 청소년기에 끝내지 말아야 한다. 노동시장과 기술, 복지제도가 빠르게 달라지는 만큼 성인도 계속 배울 기회를 가져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도서관과 공영미디어가 노동·금융·디지털·정치 문해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한 번 배운 지식이 아니라 평생 갱신해야 하는 역량이다.

안보와 생존을 넘어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국민

반공과 먹고사는 문제가 한국인의 삶에 남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분단과 전쟁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했고 빈곤과 고용불안은 개인의 일상을 압박했다. 이전 세대가 안보와 생계를 중시한 태도에는 충분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그 가치를 낡은 것으로 조롱하는 태도 역시 세대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과거의 생존 전략이 미래 교육의 전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안보는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경제성장은 사람의 삶을 개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한다는 사고보다 개인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헌법적 원칙이 앞서야 한다.

반공 교육도 적을 증오하는 법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이유를 이해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생계 교육도 경쟁에서 남을 앞서는 기술에 머물지 않고 노동의 권리와 협력, 지속가능한 삶을 포함해야 한다. 학생은 국가와 시장이 제시한 목표를 수행하는 사람을 넘어 자신의 목표를 세우는 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많이 소유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말하고, 부당함에 맞서며,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실패한 사람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도 좋은 삶의 조건이다.

기본교육을 받고 남는 것이 반공과 생계뿐이라는 자각은 교육을 부정하는 결론이 아니라 교육을 확장하라는 요구다.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무엇을 의심하고 어떤 근거로 판단하며 다른 사람과 어떻게 공존할지도 가르쳐야 한다.

살아남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살아남은 뒤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답할 수 없다면 교육은 절반에 머문다. 대한민국의 기본교육이 길러야 할 사람은 적을 구분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아니다. 자기 삶을 선택하면서도 타인의 존엄과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지킬 수 있는 시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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