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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 도산 역대 최대, 지원금보다 ‘조기 구조조정 체계’부터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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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법인파산 1299건…회생보다 청산 신청이 훨씬 많아
흑자 가능 기업도 대금 지연·고금리 겹치면 법원 문턱에서 무너져
기업 연명과 회생을 구분할 현금흐름 진단·신규자금 제도가 필요하다

2026년 상반기 법원에 접수된 법인회생과 법인파산 신청이 2030건에 달했다. 법인회생은 731건이었지만 법인파산은 1299건으로 회생 신청의 1.8배에 가까웠다. 법인파산 신청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66% 늘어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빠른 수준의 증가세를 보였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에서는 사상 최대 실적이 이어지지만 제조·건설 현장에서는 기업의 생존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국내 매출 상위 1000대 상장사의 2025년 합산 영업이익은 189조2322억원으로 역대 최대였지만, 같은 경제 안에서 중소기업의 파산 신청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를 단순한 경기 양극화로만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수출 대기업의 이익이 증가해도 협력업체의 납품단가와 결제조건이 함께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수주와 매출이 있어도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대금 회수가 늦어지면 기업은 장부상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현금 부족으로 쓰러질 수 있다.

기업 도산 증가에 대응하려면 지원 규모부터 논의할 것이 아니라 부실이 발생하는 경로를 바꿔야 한다. 회생할 기업과 퇴출할 기업을 조기에 구분하고,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에는 법원 신청 전에 구조조정과 신규자금을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파산이 회생보다 많은 것은 경기침체 이상의 경고다


법인회생은 사업을 계속할 가치가 있는 기업이 채무를 조정하고 영업을 정상화하는 절차다. 반면 법인파산은 지급불능이나 부채초과 상태에 빠진 법인의 재산을 처분해 채권자에게 배분하는 청산 절차다. 서울회생법원도 법인파산의 목적을 회생이 불가능한 법인을 정리해 채권자의 추가 손실을 막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상반기 파산 신청이 회생 신청보다 568건 많다는 것은 적지 않은 기업이 사업 재편보다 청산을 선택하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이 정리되는 것은 시장경제의 정상적인 기능이다. 문제는 회생할 수 있었던 기업까지 자금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파산으로 밀려나는 경우다.

중소기업은 재무 인력과 법률 자문 능력이 부족하다. 거래처가 대금을 늦게 지급하거나 금융기관이 대출을 회수하면 경영자는 구조조정에 착수하기보다 사재를 투입하고 고금리 자금을 조달하며 버티는 경우가 많다. 법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생산시설과 인력, 거래처가 이탈해 회생가치가 크게 훼손돼 있을 수 있다.

파산 신청에도 비용이 든다. 재산 환가와 채권 조사 등을 위한 예납금이 필요하며, 법원은 예납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면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자산이 거의 소진된 영세기업은 정상적인 청산 절차조차 밟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파악해야 할 지표는 법원에 접수된 건수만이 아니다. 연체가 시작된 기업,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체납한 기업, 대금 회수기간이 급격히 늘어난 기업, 고금리 대출로 전환한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법원 통계는 위기가 현실화된 뒤 나타나는 결과지표다.


제조업 위기의 핵심은 손익보다 현금흐름이다


중소 제조업체의 위기는 매출 감소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원재료를 현금으로 구매하고 인건비와 전기료를 먼저 지급한 뒤 납품대금은 수개월 뒤 받는 거래구조가 문제를 키운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운전자금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 10억원어치 원재료가 필요했던 기업이 가격 상승으로 12억원을 투입해야 한다면 매출이 같아도 추가 자금 2억원을 확보해야 한다. 납품단가 조정이 늦고 결제기간까지 길어지면 이익을 내면서도 대출에 의존하게 된다.

금리 상승은 이 구조의 마지막 고리를 끊는다. 금융기관은 기업의 향후 수주보다 담보가치와 최근 재무제표를 중시한다. 원가 상승으로 이익률이 떨어진 기업은 추가 자금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대출한도가 줄거나 금리가 높아질 수 있다.

기업 지원도 매출액이나 업력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수주잔고, 매출채권 회수 가능성, 원가 전가 능력, 영업현금흐름, 핵심 거래처 유지 여부를 기준으로 회생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

영업경쟁력이 남아 있지만 거래대금 지연 때문에 무너지는 기업과, 제품 수요가 사라지고 기술경쟁력도 상실한 기업을 같은 방식으로 지원할 수는 없다. 전자에는 운전자금과 채무조정이 필요하지만 후자에는 사업전환이나 신속한 정리가 필요하다.


건설업 부실은 개별 기업을 넘어 하도급망으로 번진다


건설업은 기업 한 곳의 부실이 다수의 하도급업체와 자재업체, 근로자에게 전가되는 산업이다. 시행사와 원도급사의 자금이 막히면 공사대금과 자재대금, 임금 지급이 연쇄적으로 지연된다.

원가 부담도 누적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전국 2000개 현장을 조사한 결과 2026년 상반기 적용 전체 건설업 직종의 하루 평균임금은 27만9988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44% 상승했다. 일반공사 직종의 평균임금도 26만8486원으로 1.59% 올랐다.

인건비 상승 자체가 건설사 부실의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공사비 조정이 원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미분양과 프로젝트파이낸싱 부담으로 자금 회수 시점이 늦어진다는 데 있다.

건설사 회생은 해당 법인만의 채무조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사를 계속할지, 하도급대금을 누가 지급할지, 보증기관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 미완공 사업장의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까지 결정해야 한다.

공공공사부터 원자재·인건비 변동을 계약금액에 반영하는 절차를 단축해야 한다. 민간공사에서는 공사비 증액과 책임 분담 기준을 계약 초기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원가가 급등한 뒤 법정 분쟁으로 해결하려 하면 하도급업체는 판결이 나오기 전에 무너질 수 있다.


‘살릴 만한 기업’이라는 말에는 공개된 기준이 필요하다


정부가 회생 가능한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살릴 만하다’는 판단을 금융기관과 정책당국의 재량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최소한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첫째는 본업에서 현금을 만들 수 있지만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이다. 둘째는 사업 재편이나 자산 매각을 거치면 정상화할 수 있는 기업이다. 셋째는 시장 수요와 기술경쟁력을 잃어 추가 지원이 손실만 늘리는 기업이다.

첫 번째 기업에는 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단기자금과 대출 만기 연장이 필요하다. 두 번째 기업에는 채권자 협약과 자산 매각, 인수합병을 결합한 구조조정이 적합하다. 세 번째 기업에는 고용 전환과 재창업 지원을 제공하되 법인은 신속히 정리해야 한다.

지원 결정과 사후 성과도 공개해야 한다. 지원받은 기업이 매출과 고용을 얼마나 유지했는지, 채무를 얼마나 상환했는지, 추가 공적자금이 투입됐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정책금융의 목적은 파산 건수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데 있지 않다. 경제성이 있는 사업과 일자리, 거래관계를 보존하면서 회수 가능한 자금을 공급하는 데 있다.


회생기업에 새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절차는 시간만 번다


기업회생이 시작돼도 운영자금이 없으면 원재료를 구매하고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 거래처는 선결제를 요구하고 금융기관은 기존 대출 회수에 집중한다. 법원의 채무조정만으로 영업이 정상화되지 않는 이유다.

회생절차 중 제공되는 신규자금이 기존 채권보다 우선 변제될 수 있도록 제도적 신뢰를 높여야 한다. 신규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이 손실 위험을 모두 부담한다면 자금은 들어오지 않는다.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가 함께 참여하는 회생기업 전용 자금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모든 손실을 보전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정 부분 위험을 분담하고 기업가치 평가를 전문기관이 맡는 구조는 가능하다.

법원도 회생 신청 이후가 아니라 신청 전 단계의 구조조정과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주요 채권자와 투자자가 사전에 회생계획의 큰 틀을 합의한 뒤 법원에서 신속히 인가받는 방식이 자리 잡으면 거래처 이탈과 영업 중단을 줄일 수 있다.

2026년 3월 대전·대구·광주회생법원이 추가로 설치되면서 전문 도산사법서비스의 지역 기반은 넓어졌다. 이제 법원의 수를 늘리는 단계를 넘어 절차의 속도와 신규자금 공급, 인수합병 연계를 개선해야 한다.


납품단가 조정과 대금 보호가 가장 값싼 도산 예방책이다


기업이 법원에 들어간 뒤 수십억원을 지원하는 것보다 정상 거래 단계에서 원가와 대금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든다.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납품단가 조정 협의를 자동으로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협의 요청을 이유로 발주량을 줄이거나 거래를 끊는 행위도 감시해야 한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지급기간도 단축할 필요가 있다. 발주자는 최종 대금을 받았지만 하도급업체에는 지급하지 않는 구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자적 지급확인과 직접지급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기업 도산은 해당 회사의 주주와 경영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협력업체의 미수금과 근로자의 체불임금,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지역상권의 매출 감소로 비용이 확산된다.

대금 지급과 원가 조정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기업 구제정책이 아니라 시장 규칙을 바로잡는 일이다. 정상적인 거래대금을 제때 받는 기업에는 별도의 공적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도산 통계도 업종·규모·원인별로 공개해야 한다


현재 공개되는 도산 건수만으로는 정책을 설계하기 어렵다. 파산 신청이 제조업과 건설업에 얼마나 집중됐는지, 기업 규모와 고용인원은 어느 정도인지, 주된 원인이 금리인지 매출 감소인지 거래대금 미회수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정부와 법원은 도산 통계를 업종과 지역, 기업 규모, 채무 원인별로 세분화해 공개해야 한다. 회생 신청 기업 가운데 몇 곳이 인가를 받고 실제 영업을 지속하는지도 추적해야 한다.

파산 신청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경제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업성이 없는 기업이 질서 있게 퇴출되는 것은 자원의 재배치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회생보다 파산이 훨씬 많고 증가 속도까지 빨라졌다면 조기 구조조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실패기업의 수를 줄이는 것보다 회생 가능한 기업을 너무 늦게 발견하는 구조를 고치는 것이 먼저다.

소상공인 체감경기도 약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6년 7월 발표한 조사에서는 골목상권 소상공인의 60%가 하반기 경기가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사 대상과 기업 도산 통계는 다르지만 내수 현장의 불안 심리가 넓게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구조조정의 목표는 기업 수가 아니라 생산능력을 지키는 데 있다


정부는 모든 기업을 살릴 수도 없고 살려서도 안 된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을 계속 지원하면 인력과 자본이 새로운 산업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금융 부실만 늦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법인파산 증가를 시장의 자연스러운 정리로만 볼 수도 없다. 원가 상승과 거래대금 지연, 금융기관의 일률적인 여신 회수가 겹쳐 정상적인 기업까지 무너진다면 이는 시장의 선별이 아니라 제도의 실패다.

기업 도산 대책은 긴급대출 확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금흐름 이상을 조기에 포착하고, 납품단가와 거래대금을 보호하며, 회생절차에 신규자금과 인수합병을 연결해야 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신속히 정리하되 근로자와 협력업체의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회생 가능한 기업은 경영권 유지 여부보다 사업과 고용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

반도체의 기록적인 이익과 제조·건설업의 파산 증가는 서로 분리된 장면이 아니다. 자본과 수익이 일부 산업과 대기업에 집중되는 동안 비용과 금융위험은 공급망의 아래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 도산 역대 최대라는 통계가 요구하는 해법은 또 하나의 한시적 지원대책이 아니다. 기업이 법원에 도착하기 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회생과 퇴출을 투명하게 구분하며, 정상적인 거래대금이 공급망 전체에 흐르게 하는 상시 구조조정 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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