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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건강보험 적자, 보험료 인상보다 먼저 ‘지출 책임제’를 세워야 한다

오피니언

2026년 5조원대 적자 전망에도 수입 확대 논의만 반복
국고지원 법정화와 함께 급여·수가 사업 성과평가 의무화해야
청년과 저소득층에 부담 넘기는 개혁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

건강보험 재정이 구조적 적자 국면에 들어섰다. 국회예산정책처 재추계에 따르면 의료개혁 관련 지출을 반영한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6년 5조2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2035년 적자는 39조5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도 2029년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재정 건전화를 더 미룰 수 없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논의는 다시 보험료 상한과 하한을 얼마나 올릴지에 집중되고 있다. 정부 검토안은 초고소득 직장가입자의 월 보험료 상한을 459만원에서 612만원으로 높이고, 직장가입자의 최저 본인 부담 보험료를 1만80원에서 2만2260원으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한 조정은 소득에 비례해 부담한다는 사회보험 원리에 부합한다. 같은 보험료를 내는 고소득자 사이의 역진성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반면 하한 인상은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월 1만원 남짓한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는 대체로 소득과 고용이 불안정한 계층이다. 초고소득자의 상한 조정과 저소득자의 하한 인상을 한 묶음으로 추진하면 형평성 개혁이라는 명분이 약해진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상한 조정에 따른 연간 수입 증가액은 약 1751억원, 하한 조정 효과는 약 1417억원이다. 둘을 합쳐도 3200억원 안팎이다. 5조원대 연간 적자를 메우기에는 제한적인 규모다. 저소득층의 부담을 두 배가량 높이면서도 재정위기의 근본 해법이 되지 못한다면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보험료를 더 걷기 전에 지출 증가의 성과부터 밝혀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수입 부족만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 이용 증가, 필수의료 수가 인상,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보장성 확대와 신약·신기술 급여화가 지출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필수의료와 중증질환에 대한 투자는 필요하다. 문제는 사업마다 지출 목표는 제시되지만 환자의 건강 결과와 지역 의료격차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검증하는 장치가 약하다는 점이다.

수가를 올렸다면 의료진 확충과 진료 접근성이 개선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에 재정을 투입했다면 중증환자 집중도와 지역병원 회송률이 실제로 높아졌는지 평가해야 한다. 고가 치료제를 급여화했다면 생존율과 삶의 질 개선이 재정 투입에 상응하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도 보험급여 수준은 가입자의 부담 능력과 보험재정 상태를 고려해 보험료 부담 수준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원칙은 보험료를 올리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급여 확대에도 재정 능력과 우선순위를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급여와 수가 사업에는 시행 전 재정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시행 후에는 2~3년 단위로 의료성과와 비용효과를 재평가하고, 효과가 낮은 사업은 조정하거나 종료해야 한다. 건강보험에도 예산사업과 같은 사후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정부지원 20%는 약속이 아니라 자동 집행 규칙이 돼야 한다


정부의 재정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은 일반회계와 건강증진기금을 통해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25년도 정부안 기준 지원 비율은 14.4%에 머물렀다. 역대 정부가 법정 기준을 반복해서 충족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건강보험이 국가의 필수 사회보장제도라면 국고지원은 매년 예산 협상에 따라 달라지는 임의 항목이어서는 안 된다. 보험료 예상 수입과 연동해 자동 산출하고, 미달분은 다음 회계연도에 의무적으로 정산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

다만 국고지원 확대를 지출 통제 없는 백지수표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정부지원이 늘어날수록 국회와 정부의 재정감독 책임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 보험료 재정이라는 이유로 국가예산보다 느슨한 심사를 받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

국고지원 확대와 지출성과 공개를 한 제도로 묶는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가 법정 지원액을 모두 부담하는 대신 건강보험은 급여별 재정 투입액, 수혜 인원, 건강 결과와 지역별 효과를 공개해야 한다. 책임 없는 지원도, 지원 없는 책임 요구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프랑스와 일본의 교훈은 ‘세금을 더 걷자’가 아니다


해외 사례도 재원 확대의 근거로만 인용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는 조세와 사회보험을 결합해 의료비를 조달하고 가계의 직접 부담을 낮췄지만, 의료부문 적자는 여전히 큰 정책 과제다. OECD는 프랑스의 공공·의무보험 재원이 의료비의 84%를 부담하지만 의료지출 목표 초과와 행정비용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도 정부재원과 의무보험을 결합하고 있으나 고령화에 따른 의료·장기요양 부담이 크다. OECD 자료는 일본에서 정부제도와 의무보험이 전체 의료지출의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보험료 부담이 작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세와 공적 이전을 통해 부담 경로를 분산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특정 소비에 목적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신중해야 한다. 담배·주류·당류처럼 건강위험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소비에 부담을 부과하는 것은 예방정책과 결합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세 수입은 소비가 줄면 함께 감소한다. 장기 의료비를 변동성이 큰 특정 세원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는 없다.

해외 제도의 핵심은 세목의 이름이 아니다. 조세와 보험료의 역할을 어떻게 나누고, 지출 목표를 어떤 절차로 통제하며, 초과지출에 누가 책임지는지를 봐야 한다.


노인의료비 별도 회계는 세대갈등을 키울 수 있다


고령층 의료비를 별도 회계로 분리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의료비 증가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고 정부의 책임을 구분한다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별도 회계가 고령층을 재정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현재의 노인 세대도 수십 년간 보험료와 세금을 부담했다. 질병 위험이 높은 시기에 급여를 받는 것은 사회보험의 본래 기능이다.

필요한 것은 세대별 책임 전가가 아니라 생애주기별 비용관리다. 고혈압과 당뇨병의 조기 관리, 퇴원 후 재택의료, 방문진료, 지역돌봄을 강화하면 고비용 입원과 응급실 이용을 줄일 수 있다. 장기요양과 건강보험이 따로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중복지출도 줄여야 한다.

정부는 노인의료비를 별도 장부로 옮기는 데 앞서 예방과 돌봄에 투자했을 때 입원비가 얼마나 감소하는지 실증해야 한다. 회계 분리는 비용의 위치를 바꾸지만 예방과 전달체계 개혁은 비용의 크기를 바꿀 수 있다.


준비금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자동조정 장치를 작동시켜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정치 일정에 따라 보험료를 동결하거나 급여를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재정지표가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자동으로 대응하는 규칙이 필요하다.

누적 준비금이 연간 급여비의 일정 비율 아래로 떨어질 경우 정부지원 확대, 비효율 급여 재평가, 고소득자 보험료 조정과 지출 증가율 제한을 순차적으로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보험료율을 기계적으로 올리는 장치가 아니라 수입과 지출을 함께 조정하는 재정 안전판이어야 한다.

보험료나 급여를 변경할 때는 세대별·소득계층별 영향평가도 공개해야 한다. 하위 소득계층의 보험료가 두 배 오르는 정책과 고소득층 상한 조정은 같은 ‘형평성 개선’이라는 표현으로 묶을 수 없다. 누가 얼마를 더 내고, 어떤 계층이 어떤 의료혜택을 받는지를 숫자로 제시해야 한다.

건강보험 개혁은 보험료를 더 걷는 기술이 아니다. 국민이 낸 보험료와 세금을 필수의료·중증질환·예방에 우선 배분하고 그 성과를 증명하는 국가 운영의 문제다.

재정적자가 크다는 이유로 가입자 부담부터 높이면 저항은 반복된다. 반대로 정부지원만 늘리고 지출 구조를 그대로 두면 적자 시점만 늦출 뿐이다.

건강보험을 지키려면 정부, 의료공급자, 가입자의 책임을 동시에 세워야 한다. 국가는 법정 지원을 이행하고, 의료계는 지출에 상응하는 성과를 보여야 하며, 가입자는 부담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기여해야 한다. 그 순서와 조건을 제도화하는 것이 보험료 인상보다 먼저 해야 할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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