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에도 사교육비 455만원…기업은 ‘경험’ 보는데 청년은 ‘자격증’에 몰린다

취업준비생들이 구직 과정에서 쓰는 사교육비가 지난해 평균 455만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신입 채용에서도 직무 경험과 실무 역량을 중시하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자격증과 영어 점수, 취업 컨설팅에 적지 않은 비용을 쓰고 있어 채용시장과 취업 준비 방식 사이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 시민단체 교육의봄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고용정보원, 잡플래닛, 잡코리아 등 14개 기관·기업의 채용 관련 설문조사를 분석한 ‘채용 동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잡코리아 조사에서 지난해 취업준비생의 평균 취업 사교육비는 455만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227만원과 비교하면 3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38만원을 취업 준비를 위한 교육·컨설팅 비용으로 쓴 셈이다.
취업 준비 과정의 경제적 부담도 컸다. 구직 활동 중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은 71.1%에 달했고,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는 응답도 73.8%로 나타났다. 정규직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 지출이 가장 많이 몰린 항목은 자격증이었다. 전공 관련 자격증 취득이 64.9%로 가장 높았고, 영어 점수 취득이 56.7%로 뒤를 이었다. 비전공 자격증은 37.0%, IT·컴퓨터 활용 역량 강화는 32.7%, 자기소개서·면접 첨삭 등 취업 컨설팅은 17.8%였다. 취업준비생들이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시험과 강의, 첨삭 서비스에 비용을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기업이 실제로 원하는 역량과 청년들이 준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기업들은 신규 채용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꼽았다. 지난해 81.6%, 올해 67.6%가 직무 경험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반면 Z세대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캐치 조사에서는 직무 경험을 쌓는 방법으로 자격증 취득을 선택한 응답이 57.0%로 가장 많았다. 기업은 실무 경험을 보는데, 구직자는 자격증을 실무 경험의 대체재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AI 역량을 둘러싼 준비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에듀윌 조사에서는 디지털 전환 시대를 대비한 준비 항목으로 AI 관련 자격증 취득이 39.1%로 가장 높았다. AI·빅데이터 관련 온라인 강의 수강은 31.7%, 챗GPT와 노션 AI 등 업무 자동화 도구 학습은 27.6%였다. 글로벌 채용시장에서도 AI 활용 능력과 독립적 사고력을 함께 검증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가트너는 2026년까지 생성형 AI 사용 확산으로 비판적 사고 능력 약화를 우려하는 기업들이 늘고, 상당수 조직이 AI에 의존하지 않는 역량 평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1순위는 전문성 52.8%, 2순위는 소통·협력 능력 34.3%로 나타났다. 단순히 시험 점수나 자격증 수가 많은 인재보다, 실제 직무를 이해하고 팀 안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채용 시장의 경력직 선호 현상도 취업준비생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주요 채용 전략으로 중고 신입 채용 확대, 경력직 채용 확대, 조직문화 적합성 검증 강화를 꼽았다. 신입에게도 실무 경험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청년들은 인턴, 프로젝트, 대외활동, 직무교육, 자격증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교육의봄은 취업 사교육 문제를 초중고 사교육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중고 시기 입시 경쟁이 대학 진학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취업 단계에서 다시 자격증과 영어 점수, 면접 컨설팅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취업 사교육비는 국가 차원의 정기 통계가 충분하지 않아 실태 파악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국가통계포털은 400여 개 기관이 작성하는 국가승인통계와 국제통계를 제공하는 통계 기반 서비스지만, 취업 사교육비처럼 청년 구직 과정의 세부 비용을 정기적으로 보여주는 체계는 아직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취업 사교육비 증가가 단순히 청년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기업의 채용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면, 구직자는 가장 눈에 보이는 자격증과 점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취업 사교육을 줄이려면 기업은 직무별 평가 기준을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학과 정부는 실질적인 직무 경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청년 취업난의 부담은 이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넘어 ‘일자리를 준비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기업은 경험을 요구하고, 청년은 그 경험을 증명하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한다.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취업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채용시장이 스펙 경쟁에서 직무 역량 중심으로 이동하려면, 구직자에게만 변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기업과 교육기관, 정부가 함께 채용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