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이제는 ‘관행’ 아닌 예외로…상장 문턱 높이고 모회사 주주 보호 의무화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국내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중복상장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 들었다. 핵심은 분명하다. 앞으로는 자회사 상장을 더 이상 관행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16일 공개 세미나를 열고 이 같은 방향의 중복상장 제도 개선 방안을 공개했으며, 이달 중 규정 개정 예고를 거쳐 상반기 내 절차를 마무리하고 이르면 7월부터 새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편의 가장 큰 변화는 중복상장을 보는 기본 시각 자체가 바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상장 심사 과정에서 일정 요건만 맞추면 사실상 허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원칙 금지, 예외 허용’ 체계로 전환된다. 이를 위해 거래소 상장 세칙에 ‘중복상장 심사 특례’가 신설될 예정이다. 심사 대상은 지배회사의 실질적 지배를 받는 종속회사나 동일 기업집단 내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계열회사로,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이나 설립·인수한 자회사 상장 등이 포함된다.
심사 기준도 훨씬 까다로워진다. 당국은 자회사가 모회사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된 사업·경영 기반을 갖추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자회사가 모회사 매출이나 핵심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지, 인력 교류가 지나치게 밀접한지,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인지 등을 종합 평가해 하나라도 미흡하면 상장을 제한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말하자면 “껍데기만 분리된 자회사”는 더 이상 시장에 따로 상장시키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모회사 일반주주 보호 장치도 함께 강화된다. 자회사 상장을 추진할 경우 모회사 이사회는 해당 상장이 모회사 주주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검토하고,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분 가치 희석, 이른바 ‘모회사 디스카운트’ 가능성 평가가 포함된다. 또 관련 내용을 공시하고 주주 설문이나 간담회 등을 통해 시장과 소통할 의무도 부여된다. 이는 최근 개정 상법으로 강화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상장 제도에 사실상 연결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중복상장이 그동안 지배주주가 실질적 경영권을 유지한 채 사업 부문과 계열사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쉽게 활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주주와 지배주주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는 비판을 해소하려면 중복상장을 더 이상 단순한 기업 선택이나 관행의 문제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번 제도 손질을 단순한 상장 심사 강화가 아니라 자본시장 체질 개선 과제로 규정하는 이유다.
이번 조치는 지난 3월 금융위가 “중복상장 제도개선 방안은 확정된 바 없다”고 밝히며 과열된 해석을 경계했던 국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당시 금융위는 대기업 계열사 신규 상장을 일률적으로 막는 식의 보도에 선을 그었지만, 이번 세미나를 통해 방향성은 명확히 드러냈다. 전면 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독립성과 주주 보호 장치를 갖춘 경우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쪽으로 제도 설계가 구체화되고 있다.
시장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 증시에서는 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뒤 자회사를 재상장시키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 사례로 거론돼 왔다. 새 제도가 시행되면 지배구조상 명분이 약한 자회사 IPO는 사실상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 사업의 독립 자금조달 통로가 좁아질 수 있다는 불만도 나올 수 있다. 결국 향후 논의의 핵심은 ‘정상적 기업 재편까지 과도하게 막지 않으면서, 주주가치 훼손형 중복상장은 걸러낼 수 있느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장은 세미나 내용과 최근 정책 흐름을 토대로 한 해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