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 전망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대내외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제도적 안정성과 재정 건전성, 대외 수지 등 경제 펀더멘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한 셈이다.
S&P는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향후 3~5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다소 둔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의 고소득 국가보다 높은 수준의 평균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올해는 국제 통상 환경 악화로 성장률이 1.2%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내년엔 2.0%로 회복될 것이라며 2028년에는 1인당 GDP가 4만10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S&P는 최근의 계엄령 논란으로 정치적 안정성에 일시적인 타격이 있었지만, 빠른 철회와 대응으로 그 충격이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선거 일정 확정까지의 절차가 법적으로 잘 이행됐으며, 정책기관들이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점도 신용 유지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정치적 분열이 지속될 경우 차기 정부의 정책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은 잠재적 위험 요소로 지적했다.
재정 분야에선 양호한 세입 여건을 바탕으로 2025년 정부 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0.8% 수준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025~2026년에는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둔화와 세계 경제 전반의 성장세 약화가 세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한국의 대외 건전성은 여전히 견조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S&P는 순대외자산의 우위, 경상수지 흑자, 안정적인 외환시장 구조 등을 신용등급의 기반으로 제시하며, 향후 3년간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5%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변동환율제도와 활발한 외환 거래 역시 외부 충격에 대한 복원력을 높이는 요소로 꼽혔다.
위험 요인으로는 비금융공기업의 부채 확대, 북한 관련 리스크가 언급됐다. 특히 북한 체제 붕괴에 따른 통일 비용은 가장 큰 우발채무로 지목되며, 신용등급 하방요인 중 하나로 제시됐다.
S&P는 한국 신용등급이 상향될 수 있는 조건으로 ▲북한 관련 안보 리스크의 실질적 해소, ▲북한의 급진적인 경제 개방 등을 제시했다. 반면 등급 하향 가능성은 ▲북한과의 긴장 고조로 인한 경제·재정 충격, ▲고소득국 대비 현저히 낮은 성장률 지속 등으로 꼽았다.
정부는 이번 등급 유지를 대외 신인도에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국내 정치 상황과 통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신용등급이 유지된 것은 제도적 안정성과 경제 기초체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반영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제 신용평가사와의 긴밀한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이번 발표에 앞서 지난 3월 최상목 부총리와 S&P 연례협의단 간 면담을 진행했으며, 이후 범정부 차원의 ‘국가신용등급 공동 대응 협의회’를 통해 체계적으로 대응해왔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향후 무디스, 피치 등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들과도 협력해 대외신인도 유지에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