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배달 과로사 잇따라… 사회적 합의는 왜 지켜지지 않는가
지난해 한 택배 노동자가 배송 물량과 분류작업을 병행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숨진 사건은 한국 사회에 충격을 남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택배사, 노동계는 “분류작업은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택배사는 분류 인력을 따로 투입하고, 노동자들이 배송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현장에서는 이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일부 택배사에서 분류작업을 다시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공문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동계는 “과로사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마저 저버린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배달 노동자들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여름, 한 배달기사가 폭우 속에서 장시간 배달을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플랫폼은 배달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우천 추가 할증’이라는 명목으로 더 많은 배달을 유도했다. 기사들은 생계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누군가의 목숨이 대가로 치러졌다. 이 사건은 “플랫폼이 알고리즘으로 노동자를 위험에 내몰고 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택배 현장의 분류작업 강요 논란과 배달기사의 교통사고 사례는 플랫폼 노동 구조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드러낸다. 법적으로는 이들이 독립계약자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지휘와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택배사는 분류작업을 인력 문제로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배달 플랫폼은 알고리즘으로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통제한다. 노동의 실질은 근로자에 가깝지만, 법적 지위는 독립계약자라는 모순 속에서 산재보험·고용보험 적용 등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는 “플랫폼 기업과 택배사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자영업자 신분이기에 근로기준법 적용은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맞서고 있다.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 입법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속도는 더디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과로와 사고가 반복되고, 새로운 희생이 발생한다.
갈등은 단순히 노사 대립에 그치지 않는다. 택배와 배달은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서비스이기에, 노동자들의 과로와 안전 문제는 곧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이어진다. 사회적 합의가 반복적으로 깨지고, 법적 사각지대가 방치된다면 한국의 플랫폼 노동은 불안정성과 위험을 영속화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플랫폼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니다. 그것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최소한의 장치다. 과로사와 사고가 더 이상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 사회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한국 사회가 이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노동시장 불안정은 심화되고 사회적 균열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