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2.75% 동결…美 관세·정치 리스크·내수 부진에 “전례 없는 불확실성”

한국은행이 1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다섯 차례 연속 동결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무겁고 조심스러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결정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은 갑자기 어두운 터널에 들어온 느낌”이라며 “전례 없이 큰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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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충격, 예측 불가능한 시대 열려”

이 총재의 우려는 최근 미국에서 본격화된 고율 관세 정책에서 비롯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을 노리며 추진 중인 강경 무역 정책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글로벌 공급망과 물가 전망에 충격파가 번지고 있다.

그는 “미국의 관세 강도와 주요국의 대응이 매우 급격히 변하고 있어 기본 시나리오 자체를 설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결정에 있어 ‘모델 기반 예측’조차 무력화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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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 요인은 충분…그러나 ‘불확실성’이 발목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물가와 성장 지표만 본다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지만, 자본 유출 가능성, 환율 불안, 가계부채 부담 등을 이유로 ‘당장은 지켜보자’는 결론을 냈다.
유일하게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낸 신성환 위원도 “기술적으로는 더 큰 폭의 인하가 필요하지만, 시장 안정 등을 감안해 0.25%포인트 인하를 주장했다”고 이 총재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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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도 하향 예고…“기존 전망보다 나쁠 것”

이 총재는 조만간 발표될 2024년 경제성장률 수정 전망치도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기존 전망치는 1.5%였지만, “1분기 대규모 산불, 정치적 불확실성, 내수 부진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미국 관세 충격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분기 내수는 “정치 양극화가 극심하고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매우 부진했다”며, 이 영향이 하반기까지 일부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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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은 ‘펀더멘털보다 약세’…관세 변수에 흔들리는 원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근접하는 흐름에 대해 이 총재는 “경제 모델로 보면 현재 환율은 기초체력(fundamentals)보다 절하된 상태”라고 평가했다. 이는 미국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 국내 정치 불안, 달러 강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환율 안정은 관세 정책 방향과 이에 대한 주요국의 대응, 미국의 성장·물가 지표, 한국 정치 상황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당분간 고환율 리스크가 지속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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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의 시험대…다음 회의는 조기 대선 직전

다음 기준금리 결정 시점은 조기 대선 직전으로 예상되는 시기다. 이 총재는 “중립성과 정책 독립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경제 상황보다 정치 일정이 정책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외부 시선에 대한 선제적 차단 메시지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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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불확실성 시대…정책 여력 줄어드는 한은

이번 기준금리 동결은 ‘인하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는 딜레마 속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수출 회복은 더디고, 내수는 침체에 가까우며, 정치·국제 변수는 예측을 무력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방어적인 통화정책 스탠스를 유지하는 이유다.

한 금융시장 전문가는 “관세, 환율, 대선이라는 세 겹의 리스크가 얽힌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예측보다 대응이 더 중요한 국면에 들어섰다”며 “연내 금리 인하 여부도 결국 외생 변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