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다시 관세 전쟁에 시동을 걸자, 월가와 학계가 동시에 반기를 들었다. 10%를 넘는 수입 관세를 확대하겠다는 그의 발언이 증시를 흔들고 경기침체 우려를 키우자, 금융계 거물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연달아 경고장을 날리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라는 기조 아래 관세 인상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제조업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수입품 가격은 급등하고, 이민 억제로 인한 노동력 부족까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른바 ‘트럼플레이션’이 다시 부상하는 가운데, 미국의 금리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올해 안에 경기침체가 시작될 가능성을 65%로 내다봤고, JP모간은 자체 보고서에서 그 확률을 60%까지 끌어올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JP모간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관세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연준의 금리인하 여력마저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며 회복이 어려워진다”며 조속한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경제는 약화되고 있다”며 경기침체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관세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 연준이 금리 인하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금융시장 전반에 유동성 악화가 미칠 충격을 경계했다.
이러한 비판은 단순한 투자자 차원을 넘어서, 트럼프의 ‘경제 팀’에 속하거나 가까웠던 인사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공개적으로 “10%를 초과하는 관세에 반대한다”고 밝혔고, 트럼프를 지지했던 빌 애크먼 역시 “세계경제가 잘못된 수학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전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경제학 입문 교과서와 완전히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관세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금융시장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며, 단기적인 증시 반응조차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실을 지적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반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산정 근거로 삼은 논문의 저자에게서 나왔다. 시카고대의 브렌트 니먼 교수는 트럼프 진영이 자신의 연구를 “전적으로 오해하고 왜곡했다”고 일갈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가 관세 부과 효과를 과장했으며, 수입업자들이 부담하는 실제 비용은 훨씬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니먼 교수는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목표 자체가 경제적 비합리”라고 지적하며, 상호관세정책은 경제학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트럼프 측은 관세 시행을 90일 유예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는 이틀 전만 해도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던 방침이다. 시장의 반발과 전문가들의 총체적 비판에 한발 물러선 셈이지만, 관세정책의 근본적 방향이 수정될지는 미지수다.
관세는 단순히 수출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물가, 금리, 성장률, 글로벌 신뢰도까지 파급력을 갖는 복합 변수다. 이 변수를 무리하게 조작했을 때 그 대가는 월가가, 미국 경제가, 그리고 세계가 치르게 될 수 있다. 지금의 시장 혼란은, 그 경고가 결코 이론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