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유럽의 병자에서 다시 중심국으로…독일, 극한 위기 속 선택한 ‘대전환 실험’

미분류

[커버스토리] 유럽의 병자에서 다시 중심국으로…독일, 극한 위기 속 선택한 ‘대전환 실험’

2025년 독일.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경제 강국이 갑작스레 세계 자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자금이 몰려들며 독일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눈앞에 두고 있고, 군수·인프라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연일 폭등 중이다. 단순한 기술 반등이 아니다. 독일은 지금 수십 년간 유지해온 경제 철학을 뒤집는 ‘패러다임 전환’을 실험 중이다.

침체의 늪, 독일 경제의 현실

독일은 오랫동안 긴축 재정의 상징이었다. ‘부채 브레이크(Schuldenbremse)’라 불리는 헌법 조항은 정부 재정적자를 GDP의 0.35%로 제한해 왔다. 이 원칙은 통일 이후 재정건전성의 모범으로 평가받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재정위기 당시에도 흔들림 없이 고수됐다.

하지만 긴축의 대가는 컸다. 제조업 의존 경제는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대란 속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중국 의존도를 높여온 무역 구조는 미·중 갈등 속에서 독이 되었다. 독일 산업의 상징이던 자동차산업은 전기차 전환과 EU의 급진적 친환경 규제 속에 침체했고, 방산·바이오·혁신 기술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은 투자 부족으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경제는 얼어붙었고, 2년 연속 역성장은 현실이 됐다. 국민은 전기요금 인상, 난민 정책, 복지 비용 부담에 분노했다. 정치적 혼란은 극우 정당의 급부상으로 이어졌고, 독일 정치권의 ‘방화벽(극우 배제 원칙)’은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고, 독일의 결단

변화의 기폭제는 외부에서 왔다. 2025년 초, 미국의 백악관과 안보 회의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이제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러시아의 위협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의 군사 우산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한 독일의 반응은 전례 없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차기 총리는 “유럽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며 ‘부채 브레이크’ 개정을 시사했다. 20년 넘게 이어져 온 재정 균형 원칙을 뒤집는 선언이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고, DAX지수는 급등했다. 방산주 라인메탈, 에너지 기업 지멘스, 인프라 대장주 바스프 등이 이끌었다.

전환의 본질: 군비, 인프라, 국가개입

독일은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대폭 끌어올리는 한편, 향후 10년간 5,000억 유로 규모의 인프라 특별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방비는 추가로 4,000억 유로 이상이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독일 연방정부 연간 예산을 상회하는 수준이며,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국가개입’을 시도하는 전환점이다.

국채 시장도 요동쳤다. 10년물 금리는 단숨에 0.3%포인트 급등했고, 유로화는 달러 대비 1.5% 이상 강세를 보였다. 금융시장은 독일이 재정 확장을 통해 성장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모건스탠리는 이번 조치가 독일 GDP를 2025년 0.2%, 2026년 0.7% 증가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전차군단의 귀환, 그러나 넘어야 할 산

이번 개혁이 실현되려면 독일 헌법 개정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연립정부 내부에서도 반대가 만만치 않다. 녹색당은 특별기금 마련을 위한 헌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협상 여지를 남겼다. 독일 정치의 전통인 ‘합의 정치’가 작동한다면 타협점은 가능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단순한 군비 확장이 아니라, 독일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과 재도약으로 이어지느냐다. 지금까지 독일은 혁신산업 육성에 뒤처졌고, 에너지·복지·안보·노동 등 모든 영역에서 개혁의 시기를 놓쳤다. 지금 이 거대한 ‘대전환 실험’은 경제 전반에 걸쳐 어떤 파급효과를 낳을지 아직 미지수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독일의 실험

독일의 대전환은 결코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또한 제조업 중심의 수출 경제, 미·중 의존, 저출산 고령화, 에너지 위기 등 유사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더구나 정치 양극화, 노동시장 경직성, 투자 위축 등 정치·사회적 환경도 닮았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점은 있다. 독일은 지금 방향을 전환했고, 그 방향은 재정 확대와 전략 산업 육성, 군비 확장과 안보 독립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헌법 개정이라는 대가를 치를 준비까지 하고 있다.

독일의 실험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위기의 순간 어떤 국가가 결단을 내리고 어떻게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지가 미래를 바꾼다는 교훈을 남긴다. 다시 한 번 독일이 ‘병자’로 남을지, ‘엔진’으로 돌아설지는 앞으로 몇 분기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 그 과정을 우리는 지켜볼 뿐만 아니라, 배우고 분석해야 한다. 한국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ack To Top
제호 : 미래다뷰   주소 : 경기 파주시 와동동 1431(운정역HB하우스토리시티) 321호 대표전화 : 070-4792-7720    팩스 : 02-701-0585    등록번호 : 경기,아52805    발행·편집인 : 최창호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주  발행일 : 2017-01-13    등록일 : 2017-01-13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