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이미지로 말 걸다…창작의 미래를 흔드는 ‘지브리 모먼트’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최근 챗GPT의 트래픽 폭증 사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GPU가 녹고 있다.” 일견 과장처럼 들리는 이 말은, 생성형 AI가 다시금 ‘혁신의 분기점’에 도달했음을 상징한다.
이번에는 텍스트가 아니라 ‘그림 한 장’으로 말이다.
지난 3월, 챗GPT는 월간 이용자 5억 명을 돌파했다. 수익은 전 분기 대비 30% 급등했고, 기업가치는 5개월 만에 2배 가까이 뛰었다. 이 모든 현상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주문이 있었다.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줘.”
지브리 스타일의 부드러운 색감, 자연친화적인 배경, 감성적인 디테일은 곧바로 소셜미디어를 뒤덮었다. 사용자들이 챗GPT에 이미지를 요청하고, 공유하고, 다시 이를 변형하는 일련의 과정은 텍스트 기반 AI와는 차원이 다른 ‘시각적 확산력’을 보여줬다. 기술은 더 정교해졌고, 사람들은 더 몰입했다.
이른바 ‘지브리 모먼트’다.
AI의 진화, 그림으로 말하다
과거 챗GPT가 텍스트로 혁신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그림으로 다음 단계를 열고 있다. 오픈AI가 공개한 이미지 생성 기능(GPT-4o 기반)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뉴턴의 프리즘 실험’을 정확한 인포그래픽으로 구현하거나, 인물의 시점에서 1인칭 장면을 구성하는 등 전례 없는 수준의 표현력을 보여줬다.
이 기술은 단순한 이미지 생성이 아니라, 언어·지식·시각 인지를 통합하는 멀티모달 학습 방식에 기반한다. 과거엔 5개만 넘으면 혼동했던 이미지 속 객체들도 이제는 15개 이상 정확하게 재현해낼 수 있게 됐다. 심지어 ‘트럼프의 관세전쟁’ 같은 정치적 주제를 주면 4컷 만화로 요약해내는 기능까지 가능하다.
이러한 기술 진화는 사용자의 기대 수준을 다시 끌어올렸다. 실제로 GPT를 활용해 만든 이미지의 퀄리티는 이제 ‘포토리얼리즘’ 수준에 육박한다. 다섯 문장만으로도 고급 화보를 완성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암보다 ‘재미’가 돈 된다
놀라운 점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 소비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수년간 AI가 암 정복을 포함한 인류 난제를 푸는 데 쓰이길 기대했던 사람들도, 정작 지갑을 연 건 ‘지브리풍 내 프로필 사진’이었다.
샘 올트먼은 이를 두고 “10년을 초지능 개발에 쏟았지만, 지브리 그림 하나에 처음으로 사람들의 진짜 관심을 끌었다”고 고백했다. 이른바 ‘엔터테인먼트형 AI’의 가능성이 폭발한 순간이다. 정보형 AI보다 감성적이고 몰입 가능한 콘텐츠가 사용자 경험을 바꾸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중국 딥시크가 저사양 GPU만으로 챗GPT 수준의 모델을 구현하며 ‘AI 반도체 수요 고점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오픈AI의 이번 트래픽 폭주와 연산 수요는 그 우려를 단숨에 지웠다. 다시 말해, ‘진짜 콘텐츠’는 하드웨어의 한계를 넘는 힘을 가진다는 메시지다.
창작의 경계가 흔들린다
하지만 이 ‘성공’은 논란 없이 이루어진 게 아니다. 지브리 스타일의 대유행은 곧바로 저작권 논쟁을 불러왔다. 창립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과거 “AI는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며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가 철저히 배제하고자 했던 기술이, 그의 화풍을 복제하며 수억 명에게 확산되고 있다.
법적으로 ‘화풍’의 저작권 보호는 여전히 회색지대다. 다만, 특정 작가의 작품 수백 점을 기반으로 AI가 유사한 그림을 만들어낸다면 이는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창작자들이 우려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AI가 나보다 나를 더 잘 그리는 세상”에 대한 본질적 위협이다.
실제로 한 일러스트 작가는 “내 그림체를 학습한 AI가, 내가 그릴 법한 그림을 그려냈다”며 창작 의욕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기술이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시대를 열고 있다.
팬덤이 창작자의 유일한 방패
이제 창작자는 단순한 그림 실력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경기대 권동현 교수는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화풍을 가진 작가는 손에 꼽는다”며 “AI 시대에는 뚜렷한 취향과 팬덤이 작가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패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제 창작의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단순한 생성보다 세계관을 구축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셈이다.
다음 챕터는 어디로?
챗GPT는 지금 텍스트, 이미지, 영상으로 뻗어가는 멀티모달 AI의 초입에 서 있다. 그리고 이번 ‘지브리 모먼트’는 기술이 인간과 진짜로 연결되는 방식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지식보다 감성, 정확성보다 공감이 중요한 시대. 그 중심에 AI가 있다.
‘AI가 예술을 침범하는가’라는 논쟁은 어쩌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질문일지 모른다. 중요한 건, 우리가 무엇을 보고 감동하며 어떤 기술에 시간을 쓰고, 비용을 지불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지브리 스타일 그림 한 장’이 그 모든 걸 설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