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고용시장이 ‘완전고용’이라는 착시 속에 놓여 있다. 통계 수치상 실업률은 3.5% 안팎으로 OECD 평균보다 낮고, 과거 기준으로 보자면 분명 이상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은행이 자연실업률 추정치를 5년 사이 4%에서 3%로 전면 수정하면서 실업의 의미 자체가 바뀌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완전고용’을 말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어떤 일자리인가’가 핵심이다. 실업률 수치에 드러나지 않는 불완전고용, 저질 일자리 확대, 구조적 미스매치가 고용지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껍데기만 남은 완전고용을 과감히 벗겨내고 고용의 질적 전환이라는 과제를 직면하게 됐다.
▣ 자연실업률 하향 조정, “이제는 3.5%도 완전고용 아니다”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이란 경기순환에 관계없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최소 실업률이다. 이는 대개 기술 변화, 노동시장 유연성, 교육 수준, 복지 인프라 등 장기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자연실업률 추정치를 기존 4~4.1%에서 3~3.2%로 대폭 낮췄다. 이는 지난 5년간 노동시장 구조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여성 경제활동 증가로 인한 노동공급 확대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과거엔 실업률이 4% 수준이라면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제 3.5%로도 고용 상황이 심각할 수 있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 고용의 질, 허수처럼 부풀려진 실업률의 그림자
2019년 대비 2024년 현재까지 고용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과 여성층의 고용 확대가 뚜렷하다. 하지만 이는 청년층 고용 둔화, 비정규직 확대, 단시간 노동 등의 단면을 가리고 있다. 전체 취업자 중 40%가 ‘일은 하고 있지만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현실도 주요 문제다.
왜곡된 고용구조의 대표적 예가 ‘노인 일자리’ 정책이다. 월 30만원 안팎의 노인 공공근로 일자리는 노동 참여율을 높게 만드는 효과가 있으나, 생산성이나 임금 수준을 기준으로 보면 경제적 가치는 낮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실업’(hidden unemployment)이 실질 실업률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고용률이 높다고 모두가 완전고용을 누린다고 느끼지 않는다. 양적인 고용지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직업 안정성, 소득, 숙련 수준 등을 고려해 고용의 질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고용률 상승의 이면, 청년층은 여전히 ‘일자리 소외계층’
2024년 3월 기준,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7.8%로 전체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이들 상당수가 전공과 무관하거나 비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종에 종사하며, 심지어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도 증가 추세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위주의 채용 구조, 임금 격차, 직무 미스매치가 청년 취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워진다.
한 구직자는 “취업공고는 많은데 대부분 저임금 단기계약직이다”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자리에 지원하느니 차라리 자격증 공부나 스펙 강화에 투자하겠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 정책 방향 전환 필요한 시점…실질 소득 향상 중심 고용정책 시급
새 정부의 고용정책 핵심은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 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실업률 수치나 일자리 숫자 확대에 집착하기보단, 생산성 있는 ‘좋은 일자리’ 확충이 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 ▲직무 기반 임금 체계로 전환 ▲직업훈련 확대를 통한 노동이동 효율화 ▲청년층 및 여성을 위한 맞춤형 채용 인센티브 도입 등이 필요하다.
학계에서는 “고용의 질적 향상을 병행하지 않는 한 한국 고용시장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며 “국민 체감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이대로 두면 고용 대란의 서막이 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완전고용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해답”
완전고용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한국의 고용시장은 구조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단순히 실업률이 낮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빠르게 바뀌는 산업 구조, 고령화, 디지털 전환 속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새 정부에게 던져진 숙제는 이제 분명하다. 현란한 숫자 놀음이 아닌, 국민이 진짜 ‘일하고 싶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 고용의 양과 질, 모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과감하고 정직한 정책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