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ETF로 이동하는 자본, 세대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금융의 민주화는 ‘투자 기술’이 아니라 ‘이해력’에서 시작된다

구조가 움직인다

2025년의 한국 금융시장은 조용하지만 거대한 이동을 겪고 있다. 단기 변동에 흔들리는 주식시장의 표면 아래에서, ‘간접투자’라는 새로운 언어가 구조를 바꾸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상장 ETF(상장지수펀드)의 운용자산은 10년 전 21조 원에서 2025년 9월 현재 112조 원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ETF는 특정 종목이 아닌 시장 전체를 복제하는 펀드로, 인간의 감정보다는 지수의 논리를 따르는 구조다. 투자자들은 주가의 일시적 등락보다 시스템이 대신 굴려주는 ‘자동화된 자산운용’의 안정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연금저축펀드와 TDF(타깃데이트펀드)로 대표되는 간접투자 상품군은 이제 한국 가계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OECD가 올해 4월 발표한 「Retirement Savings Outlook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개인연금 가입자 중 38%가 ETF 또는 TDF 상품을 병행 투자 중이며 이는 2022년 대비 거의 두 배의 증가다.

이 변화의 핵심은 상품의 확장이 아니라 투자 행위의 언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개인투자가 ‘손으로 사고파는 행위’였다면, 오늘날의 투자는 ‘시스템과 함께 움직이는 참여’로 변모했다. 자산을 직접 관리하던 시대에서 알고리즘과 지수, 데이터가 대신 굴리는 시대로 넘어가면서 투자라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학습의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다.

—주석
ETF(Exchange Traded Fund): 주식시장에 상장된 펀드로, 특정 주가지수나 자산군(채권·원자재 등)의 수익률을 추종함.
TDF(Target Date Fund):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자산 비중을 자동 조정하는 펀드. ‘2050 TDF’는 2050년 은퇴 목표자용 상품을 의미.
간접투자: 투자자가 직접 주식을 매매하지 않고, 펀드·ETF 등을 통해 전문가 혹은 시스템이 운용하는 구조.


‘알지만 행동하지 않던 세대’의 각성

케임브리지 행동경제연구소(Cambridge Behavioral Research)는 2024년 보고서 「Cognitive Debt in Financial Decision」에서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금융소비자가 유익한 정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OECD의 「Financial Consumer Behavior Report 2024」는 한국인의 이러한 경향을 ‘현재편향(present bias)’으로 정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78%의 응답자가 ‘연금저축 계좌를 개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나 실제 가입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세금 혜택과 구조적 유인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불편을 더 크게 느끼는 전형적인 행동경제학적 패턴이다.

그러나 2023년 이후 20~40대의 ETF 신규계좌 개설이 급증하면서 심리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 젊은 투자자들은 더 이상 주식처럼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일정 주기마다 자동으로 투자하고, 손을 대지 않는 시스템에 신뢰를 둔다. 그들에게 신뢰의 대상은 전문가도, 기관도 아닌 ‘구조 자체’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금융심리는 ‘사람보다 알고리즘을 믿는 신뢰’로 이동하고 있다.

—주석
인지 부채(Cognitive Debt): 정보를 알고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는 상태로, 행동과 지식 간의 괴리를 의미함.
현재편향(Present Bias): 미래 이익보다 현재의 편의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데이터로 분석하는 경제학 분야.


세금 혜택을 넘어 지속성의 설계로

한국의 금융제도는 오랫동안 세제 중심의 단기 유인책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단기적 세금 감면만으로는 장기 투자 문화를 만들기 어렵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2025년 2월 「연금저축펀드 세제 구조 분석」 보고서에서 “세제 혜택은 단기 가입을 유도하지만 장기 유지율을 높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의 연금저축펀드 평균 유지기간은 3.6년에 불과하며, OECD 평균인 8.2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국 ‘세금 유인’이 아니라 ‘지속성의 설계’가 문제인 셈이다.

ETF는 이 공백을 채운다. ETF의 본질은 편의성보다 ‘감정 차단의 제도화’에 있다.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시스템은 투자자의 심리적 오류를 최소화한다. 한국은행이 2025년 1월 발표한 「가계금융리스크 리포트」에 따르면 ETF 비중이 높은 가계는 그렇지 않은 가계보다 변동기 평균 손실률이 18% 낮았다. 이는 ETF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감정의 완충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석
세제 혜택(Tax Benefit): 특정 금융상품 투자 시 세금 공제 또는 납부 연기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
지수추종(Index Tracking): 주가지수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설계된 운용방식.
리스크 완화(Risk Mitigation): 변동성이나 손실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구조적 전략.


‘빠른 성장, 낮은 내구성’의 한국형 과제

맥킨지(McKinsey)는 2024년 「Asia Retirement Fund Outlook」에서 한국 간접투자 시장을 “빠른 성장, 낮은 내구성”이라 평가했다. 연금 계좌의 수는 급증했지만 5년 내 해지율이 40%를 넘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평균 해지율이 15% 이하인 것과 대비된다. 맥킨지는 이를 ‘금융 교육 인프라의 부재’로 해석했다. 미국에서는 ETF가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니라 금융 문해력(financial literacy) 교육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다. 피델리티와 뱅가드 등 주요 운용사는 공교육 단계에서 모의 ETF 포트폴리오 교육을 지원하고, 국민연금 계좌와 ETF를 연계한 생애 포트폴리오 시스템을 운영한다. OECD의 「Education and Skills 2024」 보고서 또한 “장기 투자 지속률은 금융정보 접근성보다 교육의 질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금융기술을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가 지속성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ETF 투자자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투자 목적의 질적 차이는 여전히 크다. 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ETF 거래의 54%가 3개월 이내 단기 매매로 끝난다. 반면 미국의 ETF 평균 보유기간은 11년, 영국은 8.6년이다. 이는 단순한 소득 격차가 아니라 시장과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한국은 여전히 ETF를 주식의 대체재로 인식하지만, 해외에서는 은퇴까지의 자산 설계 수단으로 본다. 맥킨지는 “한국은 금융기술 도입 속도는 빠르지만 금융 철학의 내면화는 가장 느리다”고 평가했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연금저축펀드 계좌 중 연평균 추가 납입률은 14%에 그친다. 시작은 하지만 지속하지 못하는 구조, 이것이 한국형 간접투자의 내적 리스크다.

—주석
포트폴리오(Portfolio): 여러 자산을 분산 보유하여 위험을 줄이는 투자 구성.
금융문해력(Financial Literacy): 금융상품의 구조와 리스크를 이해하고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능력.
해지율(Lapse Rate): 계약이 유지되지 않고 해지되는 비율. 금융상품의 지속성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


금융의 미래는 이해하는 시민에게 있다

ETF와 TDF, 그리고 연금저축펀드는 모두 개인이 시장의 전체 리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금융의 민주화는 누구나 투자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 자산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뜻한다. OECD는 이를 ‘인지적 포용성(cognitive inclusiveness)’이라 명명한다. 제도가 아무리 개방되어 있어도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실질적으로는 배제된다는 의미다. ETF 열풍은 금융의 대중화이자 동시에 이해력의 시험대다. 한국은행 「2025 금융안정보고서」는 “ETF를 통한 분산 투자가 가계 리스크를 완화하고 있으나, 금융 이해력의 격차가 장기적으로 소득 격차를 재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ETF가 새로운 부의 사다리가 되느냐, 또 하나의 격차 장벽이 되느냐는 시민의 이해력에 달려 있다.

결국 시장을 이기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ETF는 단기적 감정의 속도를 제어하고, 인간을 시장의 평균으로 참여시킨다. 그것은 ‘감정을 제도화한 기술’이자, 인간의 불안을 시간의 논리 속에 통합시키는 장치다. 간접투자는 이제 더 이상 특정 계좌나 상품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이라는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회적 문해력의 문제이며, 그 문해력이 경제적 생존을 결정짓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공포는 언제나 시장을 따라다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시장의 시간을 함께 걸을 수 있다. ETF로 이동하는 자본의 흐름은 돈이 이동하는 경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지금 그 학습의 무대는 이미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펼쳐지고 있다.

—주석
인지적 포용성(Cognitive Inclusiveness): 사회 구성원이 금융·경제 시스템의 원리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인지적 접근성.
분산투자(Diversification): 여러 자산에 투자해 개별 위험을 줄이는 전략.
시장 평균(Mean Reversion): 장기적으로 자산 가격이 평균 수준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의미.


참고자료

Cambridge Behavioral Research (2024), Cognitive Debt in Financial Decision
OECD (2024), Financial Consumer Behavior Report
OECD (2024), Retirement Savings Outlook 2025
McKinsey & Company (2024), Asia Retirement Fund Outlook
한국예탁결제원 (2025.9), ETF 시장통계
한국은행 (2025.1), 가계금융리스크 리포트
KDI (2025.2), 연금저축펀드 세제 구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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