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AI가 바꾼 일의 문법, 인간은 어디에 설 것인가?

속도의 경제가 구조를 다시 짠다

2025년, 세계 AI 산업 규모는 2조 달러를 돌파했다. 2022년 9300억 달러에서 불과 3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AI 투자의 중심이 기술개발에서 ‘업무자동화’로 옮겨가면서 산업 구조 자체가 속도 중심으로 재편됐다”고 분석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AI 활용 기업 비중은 2020년 9%에서 2024년 36%로 4배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제조업 신규 일자리는 12.1% 감소했다.

자동화가 새로운 효율을 만들어냈지만, 그만큼 인간의 개입이 배제되는 영역이 늘었다. 회계·법률·고객서비스 등 ‘판단이 필요한 업무’마저 알고리즘이 대신 처리한다. OECD의 「Future of Work 2025」는 “AI가 전체 노동의 27%를 대체할 것으로 보이며, 40%의 근로자는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이해의 결핍’이다. 효율이 높아질수록 사람은 맥락을 잃는다. 서울의 한 회계법인은 결재 프로세스에 챗봇 기반 AI를 도입해 문서 검토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내부 피드백 중 42%가 “책임 주체가 모호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술이 업무를 단순화했지만, 판단의 주체는 오히려 사라졌다.

—주석 | AI 자동화: 인간의 판단 대신 알고리즘이 업무를 처리하는 체계. 이해의 노동: 결과의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는 인지적 활동.


지식 산업의 위기 ‘사고의 외주화’가 시작됐다

AI는 지식 노동을 돕는 조력자가 아니라, 사유의 일부를 외주화하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 언론·법률·교육 분야에서 그 현상은 특히 뚜렷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AI 콘텐츠 산업 실태조사(2025)’에 따르면 국내 미디어 기업의 62%가 기사 초안 작성에 AI를 활용한다. 연구소와 리서치 기관의 58%도 보고서 초안을 생성형 AI로 작성하고 있다.

하버드대 「Cognitive Adaptation 2024」는 “AI를 상시 사용하는 집단은 정보를 판단이 아닌 선택의 수준으로 처리한다”고 밝혔다. 사용자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이미 계산된 가능성 중 하나를 고른다. 사고는 이해에서 탐색으로, 사유는 분석에서 요약으로 바뀐다.

이 흐름은 교육 현장에서도 재현된다. 대학원생의 58%는 “AI 없이 논문을 작성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교사·교수진의 71%는 “AI 결과의 사실 검증 능력 저하”를 우려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금지 대신 ‘활용 투명성’ 정책으로 전환했다. 기술은 이미 일상에 통합되었고, 문제는 사유의 질을 유지할 시스템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석 | 사고의 외주화: 인간의 사고 기능이 기술에 위임되는 현상. 인지 구조: 개인의 정보처리 패턴과 판단 체계.


데이터 봉건주의 기술은 민주적이지만, 소유는 봉건적이다

AI는 인간의 두뇌를 닮았지만, 그 권력 구조는 중세 봉건제와 닮아 있다. 맥킨지의 「Global Data Power 2024」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의 73%가 단 10개 기술기업(구글, MS, 메타, 아마존 등)에 집중돼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를 “정보의 봉건화”라고 표현했다.

AI 모델은 학습을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데이터의 대부분은 개인의 소비, 위치, 감정, 언어 패턴 등 사생활에 가까운 정보다. 문제는 데이터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디지털 자산 리스크 리포트 2025」는 “데이터 불평등은 소득 격차보다 빠르게 확대되는 제2의 불평등”이라고 분석했다.

이 구조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권력의 집중을 의미한다. 기술이 민주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데이터 접근성이 높은 소수 기업이 AI 시장을 통제한다. 시민은 데이터를 생산하면서도 그 가치와 사용처를 알지 못한다. 한국의 AI 스타트업 중 64%는 자체 데이터 없이 빅테크 기업 API를 활용하고 있다. 결국 “AI가 민주화됐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주석 | 데이터 봉건주의: 데이터 소유권이 소수 기업에 집중되는 구조. 정보 비대칭: 기술 접근성은 높지만, 통제권은 소수에 집중된 상태.


산업의 균열 인간의 역할은 ‘해석자’로 돌아온다

AI가 텍스트를 쓰고, 디자인을 그리고, 코드를 짜는 시대지만, 인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산업 구조의 균열 속에서 인간의 역할은 오히려 ‘해석자(Interpreter)’로 재편되고 있다. KDI 「AI 산업 구조 분석 2025」는 “향후 5년 내 AI를 도입한 기업의 63%가 기술력보다 판단력 있는 인재에게 더 높은 보수를 지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는 답을 줄 수 있지만,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모델이 제시한 결과를 ‘왜’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산업의 상층부에 남게 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AI 기반 자동화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관리직 규모는 줄고, 분석·리스크 관리 인력은 증가했다. AI의 판단을 인간이 감시·보정하는 구조로 산업이 재편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제2의 브레인시프트”라 부른다. 인간의 노동은 ‘실행’에서 ‘검증’으로 이동했고, 노동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정확성과 신뢰로 대체되었다. 문제를 푸는 사람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으로 권력이 옮겨가는 변화다.

—주석 | 문제 정의 능력: 문제의 본질을 규정하고 목표를 재설정하는 능력. AI 해석력: 알고리즘 결과의 의미와 리스크를 읽는 능력.


이해의 경제 기술보다 중요한 건 인간의 방향성

AI는 효율의 절정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계산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능의 진보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OECD는 “AI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기술이 아닌 인간의 해석력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이 효율을 극대화할수록 인간은 의미를 복원해야 한다.

자동화가 완성된 사회에서 남는 일은 더 이상 생산이 아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해석’과 ‘판단’이다.
MIT 미디어랩 「Machine Cognition and Human Ethics 2024」는 “AI를 도입한 조직 중 이해기반 의사결정 역량이 높은 기업의 생산성은 평균 19% 높았다”고 밝혔다. 결국, 기술의 성패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이해력’에 달려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알고리즘을 얼마나 잘 쓰느냐가 아니라,
그 결과가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읽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속도는 기계의 언어지만, 방향은 인간의 언어다.
기술의 시대, 문명의 생존력은 더 빠른 계산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주석 | 이해의 경제: 단순 생산이 아닌 해석·의미 기반의 가치창출 구조. 지능의 방향성: 기술을 어떤 사회적 가치 체계에 맞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기준.


참고자료

OECD 「Future of Work 2025」 / Harvard Univ. 「Cognitive Adaptation in AI Era」 / MIT Media Lab 「Machine Cognition 2024」 / McKinsey 「Global Data Power 2024」 / KDI 「AI 산업 구조 분석 2025」 / 금융감독원 「디지털 자산 리스크 리포트 2025」 / 한국정보화진흥원 「AI 노동구조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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