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삼성전자의 반격, ‘아이폰을 넘어 빅테크를 맞이하다’
삼성전자가 위기의 굴레 속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은 SK하이닉스로 넘어갔고, HBM 경쟁에서는 연거푸 품질 테스트에 막히며 존재감을 잃었다. ‘삼성 위기론’은 언론과 시장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삼성은 스마트폰에서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두며 전세를 역전시키고, 파운드리에서도 빅테크 고객을 확보하면서 반격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마트폰, 특히 갤럭시 시리즈의 선전은 상징적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은 올해 2분기 점유율 19%로 애플(16%)을 제치고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일본 시장에서도 출하량을 60%나 늘리며 10%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폰의 무덤’이라 불리던 일본에서조차 갤럭시 Z플립7과 갤럭시 Z폴드7이 판매 1, 2위를 기록하는 장면은 시장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일본 소비자들은 ‘갤럭시’라는 이름조차 외면했다. 이제는 ‘삼성’ 로고를 지우던 시절을 벗어나 진정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갤럭시의 변화는 단순히 판매량 증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소비자층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아재폰, 아이폰=감성폰’이라는 공식이 통했다면, 지금은 2030세대에서 갤럭시 점유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18~29세 응답자의 40%가 현재 갤럭시를 사용 중이라고 답했다. 전년보다 6%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향후 구매 의향에서도 갤럭시(46%)와 아이폰(50%)의 격차는 4%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불과 1년 만에 격차가 20%포인트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갤럭시가 젊어진 배경에는 디자인과 AI 전략이 있다. 삼성은 올해만 6종의 신제품을 내놓으며 ‘차별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갤럭시 S25 시리즈, 엣지, 플립·폴드, 팬에디션, 그리고 곧 출시될 트라이폴드까지 이어지는 라인업은 ‘혁신 피로’에 빠진 애플과 극명히 대비된다. 특히 ‘갤럭시AI’로 불리는 통합형 AI 기능은 젊은 소비자층의 호응을 끌어냈다. 구글 제미나이 기반 음성비서, 사진 편집 ‘포토 어시스트’, 다국어 통번역 기능은 단순 성능 경쟁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에 녹아드는 경험을 제공했다.
반면 애플은 ‘아이폰17’을 공개하며 초슬림 모델 ‘에어’를 내놨지만 혁신은 부족했다. 냉각 성능 개선과 카메라 센서 확대 같은 점진적 변화에 그쳤고, 발표 행사에서 AI 언급은 고작 다섯 번에 불과했다. 그동안 애플의 최대 강점이던 디자인에서도 거대해진 ‘플래토’ 카메라 섬은 소비자들의 호불호를 갈랐다. 시장에서는 ‘삼성이 앞서가고 애플이 따라가는’ 낯선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삼성의 반격은 스마트폰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반도체 파운드리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을 거뒀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50조원을 투자한 텍사스 파운드리 공장에서 테슬라와 22조원 규모의 2나노급 AI 칩 위탁생산 계약을 따냈다. 단일 수주로는 삼성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번 계약은 빙산의 일각이며 2~3년 내 삼성의 역할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삼성의 2나노 공정 수율이 아직 30~40% 수준에 머물러 있어 단기적으로 적자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첨단 공정은 초기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빅테크 고객 실적을 확보해 신뢰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인텔이 경쟁에서 밀려난 상황에서 미국 내 첨단 파운드리를 운영할 수 있는 업체는 TSMC와 삼성뿐이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전략을 감안하면 삼성의 전략적 위치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 메모리 시장에서는 구형 D램과 낸드가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이 지연되는 사이, 서버와 PC용 DDR4 가격은 6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DDR4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처럼 범용 메모리를 대량 공급하는 업체에게 기회로 작용한다. SK하이닉스가 HBM 주도권을 쥔 동안 삼성은 구형 메모리로 현금을 벌어 반격의 자원을 비축하는 셈이다.
다만 삼성의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HBM 품질 테스트 통과, 6세대 HBM 양산 체제 구축, 파운드리 수율 개선 등 기술적 난관을 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부 문화 혁신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위기는 기술이 아닌 의사결정 체계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과거 이건희·권오현 회장 시절처럼 엔지니어와 전문가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문화가 복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관료화된 구조로는 AI·반도체 패러다임 전환에 뒤처질 위험이 크다.
삼성의 반격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에서는 애플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으며, 파운드리에서는 테슬라·애플 같은 빅테크를 고객으로 확보하며 명예회복을 노린다. 메모리에서는 구형 제품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하다. 삼성전자가 진정한 반격을 완성하려면 기술, 조직, 시장 신뢰 모두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아이폰보다 낫다’는 평가가 일시적 반등에 그칠지, 진짜 반전의 시작이 될지는 이제부터가 시험대다.